“요즘 노래는 들을 게 없어. 따라 부를 수 있어야 노래지!” 1990년대, 1980년대, 심지어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옛날 음악을 뒤적이는 내 모습을 알아차릴 때마다 귓가에 울린다.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에게 많이 듣던 말이다. 뭔가 찝찝하다. ‘나도 이제 늙은 건가?’ 적다고 볼 수 없는 나이, 37살이 되어버린 내가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중이라서 그런 건가? 인정하기 싫다고! 아, 이제 만 나이라 35살이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늙어서 그런건 아닌 것 같다. 엄마와 아빠, 어른들이 찾는 음악은 그들이 젊었을 때 들었던 음악이다. 들으며 옛날을 추억하는 것인데 나는 아니다. 요즘 내가 빠진 옛날 음악은 시티팝, 그리고 비기와 투팍이다. 시티팝은 2018년부터 빠져서 간헐적 중독을 이어오고 있고, 비기와 투팍은 알고 있었지만 빠져든 건 얼마 전이다. 시티팝은 1980년대, 비기와 투팍은 1990년대 초중반 음악인데 그때 나는 그 음악을 듣지 않았다.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2023년에 듣고 있다. 이 음악들에 추억도 없다. 그냥 지금 들었는데 내 취향일 뿐이다.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내가 직면한 이 현상은 레트로가 아니라 뉴트로다. 레트로는 과거에 그 문화를 향유했던 것을 추억하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후대의 세대가 과거에 향유한 적 없는 문화를 추종하는 것이다. 요즘 아이돌들이 90년대 프레피룩이나 Y2K 세기말 패션을 휘감고 다니는 것이 예다.
여전히 “요즘 노래는 들을 게 없어. 따라 부를 수 있어야 노래지!” 말이 찝찝하게 자꾸 귀에 맴돈다. 그래서 더 생각해본다. 이 말은 내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라 옛날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은 틀리다. 나는 시티팝과 비기투팍을 따라 부르지 않는다. 아니, 부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시티팝은 일본어, 비기와 투팍은 영어랩이라 오랜 시간 버벅거리는 굴욕을 이겨내고 목에 피나게 연습해야 한다. 그럴 의지까지는 없다. 랩 학원에서 레슨도 받아봤기에 저런 가사를 절지 않고 부르려면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저 듣기에 좋은 음악들이 분명하다. 물론 하도 많이 들어서 흥얼거릴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따라 부르기엔 역부족이다.
요즘 노래가 들을 게 없다는 말은 맞다. 내 취향을 요즘 노래에서 찾지 못해서 옛날 것을 뒤지다가 좀 더 깊이 파고든 것이 시티팝과 비기다. 나는 나만의 취향이 확고한 탓에 좋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까다롭다. 다행히 못 견디게 싫어하는 것은 없다. 음식도 음악도, 그 어떤 것도 그렇다. 그래서 친구는 있다. 그러나 정말 좋아하는 것을 말하라고 할 때 말하기 어렵다. 거짓말도 못하는 성격이라 좋은 척도 못한다. 그런 탓에 가장 많이 보이는 모습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모습이다. 무반응에 가깝다.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엄청나게 몰입하고 덕질을 하는 편인데 일상생활에서 이런 것들을 자주 마주치지 못해서 아쉽다. 나는 까다롭지 않으면서 까다롭다. 사실은 그 누구보다 까다로운 것이 바로 나다.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적은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의 퀄리티는 높은 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분야에서 크게 인정을 받는 것들이다. 상을 받는다든지 마니아층이 두텁다.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나와 공통점이라곤 거의 없는 내 동생의 반응이 떠오른다. 시티팝의 본고장 일본에 간 기념으로 동생에게 시티팝의 제왕 야마시타 타츠로의 음악을 들려줬다. 80년대에 나온 음악이라고 하니 놀란다. “이게 80년대에 나온 음악이라고? 세련됐는데?” 참고로 동생은 시티팝에 관심이 없고 늘 내 취향이 매번 특이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이런 동생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뿌듯함을 느꼈다. 실제로 일본 시티팝의 퀄리티는 굉장히 높다. 일본 버블경제를 등에 업고 굉장한 자본을 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퀄리티 높은 악기를 사용했고 실력 좋은 해외세션을 동원했다. 역시 비싼 것은 티가 난다.
레트로에 관심을 가지면서 다른 사람들은 왜 레트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찾아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레트로가 인기 있는 이유를 현생이 어려워서 과거의 풍요로운 정서가 담겨있는 콘텐츠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레트로 마니아’라는 책도 예전에 사서 읽어 봤는데 요즘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대한 정서, 저성장시대에서 자란 요즘 세대가 역동적인 시대에 나온 콘텐츠 자체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된 것을 이유로 꼽았다. 콘텐츠에는 시대의 바이브가 담기는 법이니까.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런데 나의 행태는 전문가들의 분석과 다르다. 내가 레트로 콘텐츠를 찾는 이유는 오로지 내 까다로운 취향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만들어지는 콘텐츠에 쉽게 만족을 못하다가 예전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콘텐츠 플랫폼의 시대에는 아무나 창작을 할 수 있다. 나 같이 방구석에서 불평불만하고 있는 사람도 그 불평불만을 브런치에 올리면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양 자체가 많아졌다. 그러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퀄리티가 높지 않은 콘텐츠도 많아졌다. 콘텐츠에 까다롭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으면 좋아요를 누르고 그것이 쌓이면 널리 확산된다. 퀄리티가 높지 않아도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다. 뜨는 신인 아티스트라고 유명해서 들어보면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콘텐츠인 경우도 많이 보았다.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하지만 정말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극강의 소비자인 나는 이러한 시대에서 콘텐츠에 만족하기 어렵다. 누구나 쉽게 창작자가 된다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좋은 일이지만 퀄리티 측면에서는 아쉽다.
결국 내가 과거의 것을 찾게 된 이유는 지금 나오는 것들에 만족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 좋아하는 과거의 것들은 그때 당시 엄청나게 많은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고 레전드로 칭해진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티팝 아티스트 야마시타 타츠로는 당대 최고의 시티팝 아티스트였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음반 ’Ride on time’이나 ‘For you’는 명반 중의 명반으로 인정받았다. 비기는 미국 힙합의 아이콘으로, 뉴욕의 왕으로 불릴 정도로 추앙을 받았던 아티스트다. 야마시타 타츠로와 비기는 지금으로 치면 BTS 정도 되는 걸까. 아무튼 그때 당시에 넘볼 수 없는 실력의 사람들이었다. 지금에 와서 뉴트로에 빠진 이유는 그 음악들이 지금 들어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메가히트를 기록했을 정도로 대중에게 소구포인트도 많았고 퀄리티도 높다.
내가 찾는 옛날 콘텐츠의 공통점은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콘텐츠들이고 당시에 주류였다. 지금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멜론 100 콘텐츠인 셈이다. 아니, 전 세계인이 좋아했던 콘텐츠라 글로벌 멜론 100 쯤 되려나. 당시 글로벌 멜론 100의 의미는 상당하다.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없었던, 아티스트의 장벽이 높은 시대에서 그것도 전 세계인의 지지를 얻었던 콘텐츠의 퀄리티는 얼마나 대단할까. 이런 좋은 콘텐츠를 지금 듣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굳이 옛날 것을 찾아 들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비주류다. 비주류가 된 고퀄리티의 음악. 얼마나 매력적인가.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는 내게 들을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준다. 내가 레트로를 찾는 이유는 퀄리티가 매우 좋으면서 현재는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인 들의 창작물같은 콘텐츠로는 만족을 할 수 없고 내 취향에 맞지도 않아서 옛날의 재능있는 퀄리티 높은 콘텐츠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하지 않는 특별한 일이기에 더 즐겁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청개구리 홍대병은 못 고칠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유튜브에게 새삼 고맙다.
* 퇴사하고 카카오 이모티콘을 만들었습니다.
혹시라도 제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구매와 많은 사용 부탁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 이모티콘 구경하러 가기
https://e.kakao.com/t/cafe-moment?t_ch=share_link_w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