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상점가의 오래된 간판 찍먹 여행
나는 때때로 간판을 구경하러 오래된 소도시를 여행간다. 고즈넉한 동네에는 늘 정겹고 귀여운 폰트를 가진 간판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오래된 느낌 나는 레트로한 간판 말이다. 정갈하게 오래된 느낌이나는 간판에서는 진짜의 냄새가 난다. 세월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특유의 고집을 지켜낸 집. 왠지 그런 가게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오리지날리티함이 있을거 같다.
투박한 견고딕체로 쓰여진 오래된 한글 간판을 특히 좋아한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큼지막한 폰트는 재밌다. 여행지에서 간판 수집은 특히나 즐기는 일이다. 포켓몬스터를 잡기 위해 열심히 걷는 지우처럼 간판을 발견하면 냅다 아이폰을 꺼내 폰에 채집한다. 맘에 드는 간판을 몇개 건지면 그날 여행의 잠자리는 대체로 편안하다.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만족스럽다. 나는 오래된 간판 수집에 간헐적으로 중독되어 있다.
간판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설치 미술이 아닐까. 비즈니스와 예술을 적절히 섞어 세계 미술사의 족적을 남긴 앤디워홀 형님도 우리나라의 간판을 보면 신기해 할 것 같다. 오래된 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안에 우주가 있다. 색감과 구도, 글씨체와 여백. 다양한 옵션을 통해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도 누군가의 정성과 귀찮음이 서려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간판은 그래서 재밌다.
간판이 즐비한 오래된 상점가는 마을속의 작은 미술관이다. 언제나 명확하고 직관적인 저마다의 작품 세계를 지니고 있다. 1초만에 독자들에게 가게를 설명하는 간판은 때로 웃음을 주기도 하고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때로는 간판 때문에 그 가게가 매우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곳 저곳의 간판을 구경하다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간다. 여행지에서 최고의 킬링타임이니 조심할 것. 간판만 찾아 다니다가 여행을 마무리 하게 될 수도 있다.
재밌고 정겨운 간판들을 모조리 만나보고 싶다. 한반도 구석구석에 숨은 간판을 전부 만나보고 싶다. 오늘 내가 무심코 지나친 간판은 몇개나 될까?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보면 세상은 무한하다. 버리지 않는 마음을 한번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