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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Aug 19. 2023

가구, 저는 이런 생각으로 삽니다 (1)

디터 람스와 가구 생각


가구에 간헐적으로 중독되고 있다. 그 시작은 독립이었다. 강제적으로 가구를 사야 했는데 아무거나 사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내 공간을 내 취향대로 꾸미는 설렘이 있기도 했고 매일 보고 쓰는 것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집 계약을 마친 뒤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 유튜브를 오가며 마음에 드는 가구를 찾아 헤맸다.


가구의 세계에는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이름이 많이 등장했다. 마음에 들었던 콘텐츠에서는 ‘디터 람스’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했다. 디터 람스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로 가전회사 브라운(Braun)의 디자인 수장이었다. 그리고 가구회사 비초에(Vitsœ)에서도 가구 디자인을 했다. 1932년생으로 1950년대부터 1997년까지 활동한 디자이너다.


애플의 디자이너 Jonathan Ive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 주목받기도 했다. 아이팟도, 아이맥도 디터 람스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 디터 람스표 의자, 선반, 턴테이블이 너무 예뻤다. 미니멀하고 세련됐다. 그러면서도 심심하지도, 질리지도 않았다. 취향을 알게 되어 좋았다.


디터람스 스타일 인테리어


좌측은 디터 람스표, 우측은 그에 영향받은 애플 디자인



디터 람스라는 ‘인물의 이름’이 나온 것도 좋았다. 관심 가질 것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인물은 내 취향의 시작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작가주의자다. 영화를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에도 심지어 예능을 볼 때에도 누가 만들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찾아보는 편이다. 창작자에게 매력이 느껴져야 콘텐츠에도 매력을 느낀다. 특징이 확실한 사람과 콘텐츠를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도 스토리보다는 감독 위주로 찾아보는 편이다. 우디 앨런이 좋다면 그의 영화를 모두 섭렵, 음악을 들을 때도 노래 위주로 소비하기보다는 아티스트와 비트메이커, 작곡가, 레이블 위주로 디깅, 옷을 살 때에도 한 브랜드에서 충성도 높게 사는 편이다. 인물 다큐까지 즐겨본다. 스티브 잡스부터 패션디자이너 입생로랑과 홀스턴, 래퍼 칸예 웨스트와 비기, 재즈 뮤지션 쳇베이커, 디바 휘트니 휴스턴 등 모두 챙겨봤다. 인물은 내게 그만큼 흥미롭고 중요하다.


자연스레 디터 람스의 다큐도 찾아보게 됐다. 감독은 그와 3년을 함께 보내며 1시간 남짓의 이 다큐를 그려냈다고 한다. 그의 3년이 담긴 다큐에는 그의 철학과 삶의 태도, 취향도 오롯이 담겨있었다. 영화 속에는 그가 살고 있는 집이 등장했는데 그는 50년 이상 같은 집에서 아내와 둘이 살고 있었다. 다큐를 다 보고 난 뒤 그의 제품이 마음에 든 이유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새로운 것이 너무 많이 생겨나는 세상에서 변치 않을 것을 고민한 사람이었다.


디터 람스의 집, 50년 넘게 이 집에서만 거주




기술은 항상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를 생각해 보세요.
오늘 사도 내일은 이미 구식이 돼버리죠.


디터 람스는 시대의 구루답게 많은 강연에 연사로 초대받았다. 한 강연에서 청중은 그에게 자동차 디자인은 왜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모든 자동차 산업이 본인을 짜증 나게 해서라고 답했다. 더 빠른 것이 불필요하고 과하다고 말하며 더 현명하고 나은 교통체계와 운송수단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변화를 인지하고 있지만 변화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근본을 보려고 했다.


나 또한 새로운 것이 많이 등장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거부감을 느낀 지 오래다. 필요한 것도 있지만 불필요한 것들도 많이 생긴다는 생각이다. 피로하다. 반골기질이 있는 편인 나는 우선 삐딱하게 바라보는 몹쓸 습관이 있다. 새로운 것에도 그런 기질이 발동된다. 진짜로 필요했던 것인지, 필요를 강요하는 건지 모르겠다. 경험상 후자가 많은 것 같다. 배우지 않았는데 사라진 것을 발견했을 때 이를 확신하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가치와 개성이 궁금하고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최근 레트로, 미드센추리모던, 90년대 힙합, 80년대 시티팝, 70년대 락, 바흐, 쇼팽까지 빠져있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써놓고보니 유난인 것 같기도 하지만 ㅎㅎ; 내 무의식이 그렇게 이끈 것이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레전드에서 클래식이 되어버린 것들의 특성을 궁금해한 결과였다. 이런 것들을 근본이라고 믿는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나는 무조건적인 순응은 하고 싶지 않다. 꼭 필요한 것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오래 살아남아 뉴노멀이 된 것을 우선으로 받아들인다. 얼리어답터의 반대를 슬로우어답터라고 부른다는데 나는 그쪽에 가까운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힙해 보이는 얼리어답터가 되고 싶었지만 이제는 꼭 필요한 것, 검증된 것, 근본을 소비하는 슬로우어답터로 살고 있다. 아니, 그러기 위해 정신을 붙들고 있는 중이다.


확신의 T일 것 같은 디터 람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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