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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Aug 19. 2023

가구, 저는 이런 생각으로 삽니다 (2)

지독하게 고쳐 쓰지만 플렉스도 합니다

"오늘날 어떤 산업 분야도 고쳐 쓰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새로운 걸 사 버리는 게 낫다는 현상을 만들어 버렸죠. 우리는 풍요로움 속의 비문화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너무 많이 남아도는 불필요한 것들만으로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강요하는 것보다 개선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리엔지니어링’이라는 단어를 선호합니다."

<디터 람스> 다큐 중 그의 인터뷰 발췌


디터 람스의 제품은 기능과 디자인이 모두 다르더라도 한 데 모아 놓으면 어울린다. 디자인이 미니멀한 이유가 가장 크겠다. 그래서 다른 물건과 함께 했을 때에도 과하지 않고 세련된 느낌을 간직한다. 촌스럽지 않다. 기존 제품을 버릴 필요가 없다.


그의 제품이 모듈 형태인 것도 중요한 특성이다. 덕분에 다른 쓰임을 고민할 수 있다. 가령, 2인용 소파의 경우 다른 모듈을 구입하면 3~4인용으로 확장 가능하다. 버리지 않고 덧대어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다. 시대가 지나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췄다. 지속가능성 대해 고민한 답일 것이다.


모아놓으면 가족같이 어울리는 디터 람스표 선반, 소파, 테이블 (Vitsœ)



디터 람스의 생각처럼 고쳐서 애착을 가지는 편이 내 취향이다. 가구를 사보니 알겠다. 독립 이후 이사를 한번 했지만 나는 버린 물건이 없다. 노란색 암막 커튼도 고쳐서 썼다. 보통 원룸 창틀은 집별로 크기가 달라 커튼을 새로 맞추는 경우가 많다. 전 세입자가 두고 가는 경우도 꽤 있다. 내 커튼도 새로 이사한 집에 길이도, 커튼 고리도 맞지 않았다. 그래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가진 물건들과 어울리도록 고심해서 고른 노란색이었고 천도 도톰해서 버리기엔 아까웠다. 이대로 멀쩡하고 거대한 쓰레기로 둔갑시키기엔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 상황에서는 노란색 말고 답이 없었다. 똑같은 제품을 또 살 바에야 고치기로 결심했다.


길이도 고리도 맞지 않는 커튼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 머리를 굴려야 했다. 길이는 줄인다 쳐도 고리는 어떡할 것인가. 예전에 살던 집은 집주인이 커튼레일을 해놓지 않았다. 그래서 안뚫어고리와 커튼봉을 이용했다. 그런데 이사한 집에는 레일이 있었다. 핀을 이용해야 했다. 커튼봉 구멍은 핀에 비해 터무니없이 컸다. 커튼을 위아래 거꾸로 뒤집어 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구멍라인을 접으면 길이가 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느질로 줄이자니 수선을 맡겨야 했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다이소에 수선테이프라는 것이 있었다. 마치 양면테이프처럼 생긴 수선테이프는 붙이고 다림질을 하면 열에 의해 접착테이프가 녹았다. 그러면서 천끼리 붙었다. 곧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자취생에게는 다리미가 없었다. 또 머리를 굴리니 갖고 있는 고데기를 활용하면 될 것 같았다. 순차적으로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전개에 신이 났다.


수선을 해결하고 나니 커튼핀을 구해야 했다. 구하는 건 쉬울 것 같았는데 꽂는 게 걸렸다. 자로 잰 듯 간격을 맞추는 건 자신이 없었다. 핀을 뺐다 다시 꽂는 것은 신경도, 에너지도 많이 쓰일 것 같아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오늘의 집’ 스토어를 뒤져 보니 집게용 커튼핀이라는 것이 있었다. 집게다 보니 간격을 수정하기도 간편했다. 그렇게 어설프지만 커튼핀까지 완성이 됐다. 번거로운 과정이었지만 이렇게 커튼을 버리지 않고 고쳐쓸 수 있었다.


문제의 노란 커튼,, 커튼봉 구멍을 접어 수선테이프로 수선, 집게 커튼핀으로 거는 데 성공!



열거된 이 과정이 읽는 것조차 피곤할 것 같고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할 것 같다. 이 글의 초고를 가져간 글쓰기 모임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네 명 중 두 명은 본인은 싼 거 사서 버리고 새로 사는 편, 왜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를 더 풀어써야 한다 등 원성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었다. 그냥 이게 나인데! ㅎㅎ 새로운 색과 디자인을 고민하고 선택하고 찾는 수고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변명해 보자면 처음부터 원하는 물건, 오래 쓸 물건을 까다롭게 골라서 샀기 때문일 테다. 어떤 색이 어울릴지, 어떤 소재가 어울릴지 하루종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일상을 짬 내어 몇 달간 이따금씩 생각했었다. 커튼과 커튼을 걸 방법을 고르느라 몇 달 동안 커튼 없이 지냈던 것도 재미있는 기억이다. 해가 뜨면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햇빛에 강제로 눈 떠지는 삶을 산 시간들이 있었다. 놀러 온 친구들에게는 자연인처럼 살고 있다며 웃픈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안 뚫고 커튼을 걸 수 있다는 안뚫어고리를 큰 창틀 양쪽에 의자를 두고 까치발로 올라서 고정시켰던 그 순간들도 생각난다. 돌이켜보니 추억이 되었다.


커튼 외에도 3인용 모듈 소파를 산 점도 이사 갈 것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큰 집으로 이사 가게 된다면 1인용 소파나 리클라이너, 스툴을 더해 다른 쓰임을 생각해 볼 요량이었다. 그릇도, 수저도, 다과용 포크도 세트로 샀다. 보통 자취생들은 다이소에서 낱개 그릇을 산다고 들었다. 친구들은 혼수도 아닌데 혼자 살면서 무슨 그릇을 세트로 사냐고 했지만 나는 통일감 있으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그릇을 사고 싶었다. 세트로 사서 버리지 않고 이후 새로운 좋은 그릇을 만나면 그때 그때 꾸준히 소량으로 모으며 레이어링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립은 결정할 것이 참 많은 어려운 것이었다.


최근에도 가구를 하나 샀다. 고쳐 쓰고 버리지 않을 생각으로 플렉스를 해버렸다. 수납공간이 부족해 트롤리를 샀다. 배송비까지 약 70만 원이었다. B-Line의 보비 트롤리다. 트롤리계의 양대산맥인 보비와 마지스 컨테이너 중 좀 더 키치해서 내 취향인 보비 트롤리를 사기로 했다.


좌측은 B-Line의 보비 트롤리, 우측은 마지스의 360 컨테이너 72 트롤리, 사진 속 제품 외에도 색상이 다양하다.


이 제품들은 가품이 엄청 많다. 가품은 10만 원 내외면 살 수 있었다. 10만 원도 싼 가격은 아니지만 가품은 오래 간직하고 고쳐 쓰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을 넣어놓을 예정이기에 매일 내 손을 탈 물건인데 가품을 사고 매일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평생 쓸 생각으로 큰마음먹고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긴 정품 트롤리를 구매했다. 색상도 우리 집에 부족한 흰색으로 골랐다. 쨍한 하얀색은 싫어서 빈티지 화이트 색상으로 구매했다. 이 제품도 고장 나면 고쳐 쓰고 오래 쓸 생각이다. 빈티지로 남기고 싶다. 앞으로도 고심해서 고른 내 취향의 물건을 고쳐 쓰면서 내 삶을 채우고 싶다. 지속가능한 삶과 취향을 늘 생각하면서.




재즈에 맞춰 몸을 흔드는 디터 람스 선생님,, 저도 재즈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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