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완벽한 식단을 내 삶에 들이려던 적이 있었다. 5년 전 처음 PT를 받기 시작했을 때였다. 내게 완벽한 식단이라 함은 다이어트하면 흔히 떠오르는 식단이었다. 닭고야(닭가슴살, 고구마, 야채)가 어우러진 모양새로, 클린하면서 체중감량에 도움이 되는 식단이다. 완벽한 식단을 꿈꾼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에 도전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평생 그 식단을 지킬 수 없다면 시작하지도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다시 돌아갈 텐데!' 금방 질리고 다양하지도 않은 식단이었으니까. 20대 때 다이어트에 몇 번 도전하면서 다이어트의 평생친구는 요요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테다. 운동은 평생 주 2~3회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닭고야를 평생 주식으로 삼는 것은 자신 없었다. 그래서 PT선생님에게 운동은 배웠지만 식단관리는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PT선생님은 속으로 '개꿀!'을 외쳤을 것이다.
이후로도 내 생각은 오랜 기간 변하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않으려는 성향은 다이어트에만 적용되지 않았다. 나의 대부분을 잠식했던 삶의 태도였다. 회사 일도 그랬고, 일상생활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한 것보다는 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생산성은 떨어졌지만 해낸 일들의 퀄리티가 좋았기에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런데 몇 년을 더 살아보니, 완벽하지 않아도 실행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와닿기 시작했다. 힙합의 ‘허슬(hustle)’이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실행력을 처음으로 내 삶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후 다른 자기 계발서 몇 권을 더 읽으며 내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완벽에 집착하지 않는다. 애쓰지 않고 7-80 정도의 퀄리티로 더 많은 일을 하면서 산다. 이것 또한 나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이제는 마음 편하게 나답게 산다.
이렇게 삶의 태도가 바뀌고 난 뒤에도 식단관리는 시작하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팟캐스트, 유튜브, 글쓰기, 랩, 드럼, 요가, 필라테스, 창업 등 많은 것들을 하면서 식단관리까지 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아르마딜로'를 만나게 됐다. 아르마딜로는 내가 수강한 창업부트캠프 동기가 하는 식단 관리 구독 서비스다. 처음에는 내가 진행하고 있던 창업 프로젝트의 마케팅 아이디어를 고민하다가 아르마딜로 대표님께 연락드렸다. 트레이너라는 직업 특성상 일이 12시 넘게 종료되는데 늦은 시간까지 진심을 다해 같이 고민해 주셨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식단관리 서비스를 구독하기로 결정했다. 월 14,900원이라는 가격도 크게 부담은 아니었다. 식단관리는 늘 마음속 한편에 짐이기도 했고,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해 보자는 달라진 삶의 태도도 실행력에 몇 스푼 더했다. 그렇게 카톡 식단관리가 시작됐다.
아르마딜로 식단관리는 오픈채팅방에서 이루어진다. 아름이라는 캐릭터와 1:1 채팅방이 생기고, 아름이에게 매식단을 찍어 보낸다. 사진촬영은 타임스탬프라는 어플을 이용한다. 사진에 먹는 시간이 기록된다. 아름이는 그 사진을 보고 피드백을 준다.
아르마딜로에서 내가 처음 맞닥뜨린 것은 어렴풋한 상식과의 충돌이었다. 평소 탄단지 비율을 맞춰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천할 수는 없었다. 현생에 치여 적절한 비율을 찾아보지 못했고, 어떤 식품이 탄수화물이고 단백질, 지방인지 정확히 알 의지도 없었다. 아르마딜로를 만나고 나서야 정확한 탄단지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가령 계란의 경우 노른자가 지방이 많아서 어떨 때는 적당한 단백질이 아닐 때도 있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클린식을 한다며 계란을 삶아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상황에 따라 좋지 않은 선택일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그릭요거트와 블루베리 조합도 좋아하는데 이 또한 탄수화물이 너무 많아지는 상황이었음을 알았다. 이후 꾸준히 사던 행동을 중단해 보았다. 맛과는 별개로 정말 좋은 식단인지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진 것이다. 무작정 아름이의 말을 듣는 것은 아니다. 충돌사이에서 조금 멈추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영양성분임에도 내가 좋아한다는 판단이 들면 다시 구매해 볼 생각이다. 다른 식품에서 탄수화물을 줄이면 된다는 해법도 얻게 되었으니까.
아르마딜로의 또 다른 좋은 점은 조금씩 천천히 배움이 쌓인다는 점이다. 탄수화물이 어떤 식품인지, 단백질이 어떤 식품인지, 지방이 어떤 식품인지 실생활에서 그것들을 구분해 나갈 수 있게 됐다. 통암기에 쥐약인 나는 이렇게 맥락 사이에서 일어나는 지식의 체화가 잘 맞는다. 가령, 나는 비빔밥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건강한 것들을 한번에 먹을 수 있어서다. 그런데 아름이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니 고추장 또한 탄수화물이고 비빔밥 자체가 과잉 탄수란다. 때문에 밥양을 조금 더 줄여야 한다고 했다. 비빔밥의 배신이었다. 그렇게 탄수화물의 종류 하나를 더 배웠다. 이런 경험을 통해 평소라면 지나쳤을 상황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의문을 갖고 성분 검색을 해보는 경우가 늘어났다. 탄단지 비율도 한번 봤을 때에는 잘 안 외워졌지만 매 끼니 적정영양 탄수 40~60, 단백질 20~30, 지방 20 이하를 주입받으니 자연스레 외워졌다. 이제는 스스로 계산할 수 있다. 나의 지식은 점차 두터워지고 있다.
운동루틴도 점검해 준다는 점에서도 크게 도움받았다. 나는 평소 근력운동을 하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운동한 내용을 보내달라고 하셔서 기록을 하게 되었다. 기록을 하다 보니 자기 객관화가 됐다. 좀 더 효과적인 운동을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더 나은 운동법을 피드백받으니 좀 더 적극적으로 기구운동을 늘리게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근력운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됐다. 요즘은 유산소는 거의 안 하고 근력운동만 하고 있다. 평소 다니던 PT샵에 추가로 집 근처 센터도 등록했다. 운동을 더 자주 나간다. 덕분에 2킬로 정도 빠졌다. 인바디를 해보니 체지방만 빠졌다. 사실 체중도 잘 안 재는데 아름이가 보내달라고 해서 자주 재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루틴을 좀 더 지속해 볼 예정이다. 매일매일 완벽하지 않은 배움이지만 어쨌든 이런 것들이 쌓이니 성과로 나타났다. 기뻤다.
완벽하려고 애쓰지 않고 적당히 힘써서 조금의 성과를 꾸준히 내는 것, 한 달간 아르마딜로에서 내가 얻은 것이다. 내가 지난 몇 년간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을 떨쳐낸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전에는 애쓰고 고민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은 일만이 나를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힘들이지 않고 더 많은 빈도로 하는 일들이 나 자신으로 느껴진다. 정제되지 않은 나로 살아가면서 내가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일, 작은 점을 찍어 만든 선들이 나를 이룬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편해졌고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은 성장이 일어났다. 까탈스럽고 고집스럽던 내가 관대해지기도 했다. 성격이 좀 좋아진 것 같다.(?) 나만의 완벽의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밀며 폄하하거나 끙끙 앓던 것도 크게 줄었다. 나에게 관대해지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대해졌기 때문일 거다. 역시 비운만큼 채워진다.
아르마딜로의 식단관리 구독도 그랬다. 완벽한 식단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 채운다. 아름이에게 식단을 찍어 보내는 너무나도 쉽고 간편한 '실행', 대화를 통해 지식의 충돌과정을 겪으며 '체화', 이런 대화의 반복으로 자연스레 암기되며 '지속'이 이루어진다. 가장 중심에는 나 자신의 실천이 있다. 아르마딜로의 식단관리는 내 지식을 올바른 지식에 비추어가며 조금씩 성장하게 한다. 소소한 배움일지라도, 매일매일 완벽하지 않더라도, 식단과 운동의 지식이 더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생활습관은 점차 개선된다. 나는 지난 한 달간 식단이라는 숙제와 고정관념을 하나 깨부수었다. 이렇게 얻은 것들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르마딜로의 아름이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말해주는 것 같다. 아름이가 곁들이는 병맛 짤들은 팍팍한 삶에 웃음도 짓게 한다. 오늘도 나의 성장은 작고 소란스럽게 일어난다.
* 퇴사하고 카카오 이모티콘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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