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1회 채식 체험기, 고기없는 월요일
나는 채식주의자다. 이 문장을 보고 당신은 지난 회식을 떠올린다. 글쓴이가 먹은 양꼬치와 꿔바로우가 생각난다. 많이도 먹은 것 같다. 하지만 난 여전히 채식주의자다. 정확히는 주 1회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된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은 붉은 고기를 제외하고 유제품과 생선까지 먹는 채식주의자다.
일주일에 한번만 고기없이 산다는 아이디어는 괴상하다. 그러나 나름대로 가오가 있다. 무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제안한 캠페인이다. 이름하여 '고기 없는 월요일'. 나는 이를 플렉서블하게 적용하고 있는 중이다. 주변에 채식을 시작한 인구들이 몇 보이기에 나도 부담 없이 주1회만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은 곧 부담이 됐다. 식당을 고를 때마다 나는 수많은 퀴즈에 봉착했다. 퀴즈1. 'OO정식'이나 '짬뽕'에 고기가 포함됐을까? 고민이 거추장스러워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은 비빔밥을 택했다. 그러나 나온 음식을 노려보며 퀴즈는 계속된다. 퀴즈2. 계란은 먹어도 될까? 볶음 고추장 같은데 고기가 들어갔을까? 식후에도 퀴즈는 계속된다. 퀴즈 3. 라떼는 먹어도 될까? 우유는 고기가 아니잖아? 그런데 고기인 소에서 나왔으니까 먹으면 안 되는 걸까?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퀴즈에 나는 매순간 머리를 쥐어뜯는다.
음식 앞 퀴즈 때문에 생각할 거리가 배로 늘었다.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좋아했지만 먹지 못하게 된 고기였다. 채식주의자의 눈으로 메뉴판을 보니 고기가 불필요하게 많았다. 회사 구내 식당의 식단 A, B, C 메뉴에도 고기는 매 끼니마다 있었다. 고기가 내 식탁에 매번 있어야 할 이유와 필요성을 곰곰이 생각했다. 지구상에 있는 식재료들의 가짓수을 떠올려보니 고기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많은 음식들이 있었다.
고기가 우리 일상에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후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무조건적으로 고기를 먹고 있지는 않았을까. 메뉴에 많아서 좋아한 것이었나. 내가 진짜 고기를 좋아했던 것이 맞았는지부터 흔들렸다. 그렇다고 고기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쳐버린 균형에 대해 생각할 뿐이었다.
채식을 즐기려고 노력하다보니 그동안 지나쳤던 많은 것을 알아차리려 노력하게 됐다. 나물 맛을 좀 더 구별해야 했다. 까끌까끌한 풀을 씹고 있자니 어쩐지 야채와 친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오래 씹으니 맛과 씹는 질감이 다 다르게 느껴졌다. 엽기떡볶이와 또래오래 핫양념치킨을 먹을 때에는 하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혀에 닿은 뜨거운 매운맛과 바삭한 튀김옷에 쌀과 떡과 닭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나는 각각의 다른 재료로 구성된 음식을 단지 '먹을 것'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퉁치고 있었구나. 그렇게 나는 재료 본연의 맛에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당연하게 달려온 포장도로를 벗겨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 포장을 벗겨내니 원래 가지고 있던 도로의 민낯이 드러났다. 울퉁불퉁해서 나아가기도 쉽지 않고 불편했다. 그러나 본연의 흙바닥이 감춰져있던 자기의 색을 자랑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처음 만난 가지각색의 색깔을 구경하기 바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불편함이 또 다른 행복을 마주하게 하기도 했다. 어쩌다 먹은 고기 한 점, 구운 버섯 한입, 진한 플랫 화이트의 맛이 더욱 분명해졌다. 분명해서 새로웠다. 내 일상에서 전혀 겪지 않았던 행복들이 행복으로 인식되는 순간들이다. 당연한 것에 문제제기를 하며 생긴 보상이었을까. 굴곡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것들이 퀴즈가 되면서 내 인생은 완성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