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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Jun 13. 2021

건강한 한 끼와 함께 오는 것들



마음이 답답하면 건강한 음식을 먹으러 나온다. 보통은 샐러드다. 그래서 자주 방문하는 샐러드 가게가 있다. '크리스피 프레시'다. 동원에서 하는 곳인데 수경재배로 흙이 묻지 않아 더 청결하고 건강한 샐러드를 제공한다고 한다. 그런 설명 덕분인지는 몰라도 풀때기가 좀 더 깨끗해 보인다. 오늘은 치킨 플레이트 샐러드와 맥주를 하나 시켰다. 샐러드는 13000원 병맥주는 4000원이다. 자취생 한 끼로는 싸지 않다.


집에 먹을 게 없어서 나온 것은 아니다. 비비고가 냉동실 가득, 찬장 가득 쌓여 있다. 할인된 가격으로 헐값에 간편식을 사들였다. 감자탕, 차돌 된장찌개 등의 국물류부터 차돌 우렁 강된장 덮밥소스, 청국장 덮밥소스, 단호박죽, 흑임자죽, 햇반 현미밥까지 간편하면서도 나름대로 건강해 보이는 것을 주문했다.


어제는 청국장 덮밥을 올린 현미 햇반에 감자탕을 아침밥으로 먹었다. 봉지의 입구를 뜯어 냄비에 부어 데우거나 전자레인지에 2분 돌리면 끝난다. 비비고는 확실히 싸고 간편하고 빠르다. 그리고 맛있다. 그런데 이런 간편식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오히려 우울해진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평소에 감정 기복이 거의 없이 무난한 편인데 (물론 사람인지라 맨날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비비고가 그 조금의 우울감을 크게 부풀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싸고 간편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을까. 배달음식을 먹고난 뒤에도 동일한 찝찝함이 남는다. 나를 위한 건강한 한 끼를 고민하지 않은 탓일지 모르겠다. 건강한 메뉴를 정하고 가공이 되지 않은 자연에 가까운 야채나 생선을 사서 그것을 흐르는 물에 씻는 번거로운 행동, 그리고 칼로 껍질을 벗겨내고 잘게 잘라내고 불에 볶고 졸이는 일련의 과정이 당연히 없다. 나를 아껴주고 나를 위해 고민한 시간은 생략됐다.


나를 돌보는 일에 조금 소홀해졌다는 증거인 것일까.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만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하기가 매번 조심스러운데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도 시간이 없다는 것과 같다고 쳐주면 좋겠다. 좋은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없다면 사서 먹을 정도의 경제력은 항상 갖추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에게 있어 끼니는 이렇게나 행복과 가깝게 연결돼 있다. 먹보라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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