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읽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늘 궁금했다. 나 같은 사람이 불행하면 어떤 사람이 행복할까?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무리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잘 따랐다. 공부도 잘했고 상위권 대학에 갔고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취직한 뒤 늘 불행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읽고 불행한 이유를 명쾌하게 알게 됐다. 이 책은 늘 베스트셀러 매대에 놓여 있었지만 전혀 보고 싶지 않았다. 재테크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내가 아빠도 아니고 여자라서 아빠가 될 가능성조차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기피했던 책을 우연히 읽고 고통의 이유를 알았다. 앞으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더듬을 수 있었다.
직장에 다닌 뒤로 늘 시간이 부족했다. 일하고 집에 와서 씻고 밥 먹고 숨돌리면 9시, 10시였다. 책을 읽거나 글 쓸 시간도, 체력도 부족했다. 운동을 하거나 학원을 가려면 칼퇴가 전제되면서 저녁식사를 15분 안에 해치워야 했다. 6시 정각 칼퇴근은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날이 많았다. 15분 안에 한 끼를 해치우려면 김밥 한 줄, 편의점 군고구마 하나, 샌드위치 등으로 허겁지겁 때워야 했다. 일과 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퇴근 후에도 나를 돌볼 시간이 부족했다. 불행했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걸까?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문성이 생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누가 내 자리에 와도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성도 시간도 없는 삶이었다.
돈이 풍족했다면 덜 억울했을 수 있다. 먹고살기도 급급한 월급이 통장을 스치었다. 관리비, 카드값, 보험료가 빠져나가고 저축을 조금 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쓰는 것도 맘껏 쓰지 못했다. 1인 가구인 나는 자연스레 하루 생활비의 금액을 머릿속에 늘 굴렸다. 커피와 식사로 쓸 수 있는 하루 예산을 정했다. 그 이상 쓰면 많이 썼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고 적게 쓰면 뿌듯했다. ‘내일은 아껴 써야지.’ 생각이 절로 났다. 이런 생활에서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영끌해도 가능할까 말까였다. 그렇게 한다고 쳐도 이자를 내면 답이 없었다. 생활을 더 옥죄어올 것이 분명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더 심해질 것이 눈에 선했다. 불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에게는 두 명의 아빠가 있었다. 한 명은 진짜 아빠고 다른 한 명은 제일 친한 친구의 아빠다. 친아빠는 가난했고 친구 아빠는 부자였다. 사실 친아빠는 가난하지 않았다. 하와이의 교육감이었다고 한다. 부자 아빠는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않았지만 사업체를 여러 개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두 아빠는 돈에 대한 관점,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이 정반대였다. 가난한 아빠는 "그런 거 살 돈 없다.", "공부 열심히 해서 전문직이 되어 좋은 직장을 구해야 한다.”, “돈은 늘 안전하게 관리하고 리스크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라고 말했다. 부자 아빠는 같은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그런 걸 살 수 있을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투자 대상을 찾아야 한다." "리스크를 피하지 말고 그것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라."라고 말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부자 아빠에게 돈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부자가 되어 자유를 누리게 된 경험을 책으로 썼다. 정반대 성향의 두 아빠를 보며 돈에 대해 배우지 않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돈에 항상 쫓기듯 사는 것을 뜻했다. 월급에서 공과금, 생활비를 제하면 늘 빠듯한 상황이다. 남일이 아니다. 가난한 아빠를 둔 자녀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가난한 사람의 재정 계획과 사고방식을 갖게 되어 가난해진다. 돈에 대해서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 얘기였다. 부모님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 가서 전문직이 되라고 늘 말씀하셨다. 돈에 대해서는 잘 모르신다. 나도 모른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학교의 비밀이었다. 학교란 좋은 고용주가 아니라 좋은 직원들을 육성하는 곳이었다. 전문지식을 열심히 쌓지만 졸업하면 부자들을 위해 그것을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급여의 큰 부분을 국가에 세금으로 갖다 바친다. 국가 유지에 주요 부품이 되는 길이다. 건축학 교수 유현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인간은 본래 바깥에서 뛰어다니는 존재인데 산업화 이후 학교에서 12년간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훈련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종일 회사에 앉아 있는 연습이다. 학교의 배신이었다.
저자는 일의 의미에 대한 의문도 풀어주었다. 늘 일을 위해 일하고 돈을 위해 일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자는 일을 위해 일하지 말고 배우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회사에 다니며 급여받는 것을 다람쥐가 쳇바퀴 돌리는 것에 비유했다. 전문직도 여기 해당된다. 결국 자기 사업을 하지 않으면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월급쟁이 급여에서 세금을 많이 떼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부자인 사업가에게는 더 조금 떼어가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에서 다양한 직무를 조금씩 배워 자기 사업 밑천을 다지라고 말했다. 현재 나는 같은 일을 10년째 하고 있는데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느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배워서 내 것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하면 덜 불행하거나 행복에 가까워질 것 같았다.
집에 대한 회의감도 해소해 주었다. 재테크의 궁극적 목표는 부동산인데 영끌해서 빚을 갚으며 사는 것이 늘 불합리해 보였다. 지금보다도 더 팍팍한 삶을 살아야 하고 결혼해서 애라도 낳으면 그건 더 큰 수렁이었다. 저자는 빚을 내서 실거주하는 부동산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부는 자산과 부채로 이루어지며, 자산은 수입을, 부채는 지출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실거주 주택은 부채였다. 결국 월세로 현금이 들어오는 부동산이라야 의미가 있었다. 부동산에 대한 나의 허무주의가 일부 해소됐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것이었지만 저자가 근본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돈에 이끌려 그것 때문에 고통받지 말라는 것이다. 돈은 제대로 알면 주체적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의견이다.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 물론 저자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일의 가치를 경시하고 투자만 추구하는 것,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옳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돈에 대해 한 가지 관점만 가지고 있던 내가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복사기 회사 제록스에서 영업마케팅을 배웠다며 책 제목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지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잘못된 제목이라고 본다. 돈, 부자라는 단어나 재테크 열풍에 학을 떼는 사람, 아빠될 일이 없는 사람도 읽고 싶은 책 제목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돈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니까. 이 책은 돈에 이끌려 다니던 내가 돈을 내 페이스대로 다뤄보겠다는 시발점이 됐다. 어떻게 살 것인가? 캄캄했던 미래에 불꽃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