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에 대한 단상
브런치 크리에이터 제도가 생겼습니다.
브런치에 ‘크리에이터 제도’가 생겼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작가 이름 옆에 에세이, 건강, 자기 계발, IT, 커리어, 여행, 맛집, 스타일, 가족, 연애 등 각종 분야의 크리에이터라는 네임택이 붙은 것이었다. 새로운 것이기에 궁금해서 어떤 제도인지 찾아봤다. 찾아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의와 선정 조건을 보니 크리에이터는 한 분야의 전문가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 크리에이터란?
브런치스토리와 티스토리에서 뚜렷한 주제로 우수한 창작 활동을 펼치는 창작자입니다. 전문성・영향력・활동성・공신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정합니다.
■ 선정 조건 체크리스트
- 전문성: 분명한 주제로 전달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나요?
- 영향력: 구독자 수가 100명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나요?
- 활동성: 최근 3개월 동안 12개 이상의 글을 발행했나요?
- 공신력: 대표 창작 분야에서 공적인 신뢰를 얻고 있나요?
전문가란 누구일까?
브런치의 크리에이터 제도를 보고 인스타그램의 파란 인증마크가 생각났다. SNS플랫폼이 특정 계정에 대해 인정해 준 동일한 케이스로 인식돼 직관적으로 생각난 것 같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의 표식이 인물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에 그친다면 브런치는 ‘전문가’라는 가치 기반의 표식을 부여한 것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브런치에서의 명명은 인스타그램과 다르고 무게감이 있어 보였다. 솔직히 조금 위험한 일이 되는 경우도 있겠다 싶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최근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브런치의 크리에이터 표식을 지니면서, 브런치 내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수상을 여러 번 하신 분을 사내에 특강 강사로 초빙했다. 물론 브런치에서 많은 인증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초빙한 것은 아니다. 다른 이력과 경력사항을 참고했다. 분야에서 박사까지 한 분이었고 주변에 그분과 작업한 분도 있었다. 지인에게 후기를 들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지속해서 레퍼런스를 쌓아오신 분이기에 초빙하기로 마음먹었다. 팀장님께 해당 강사를 초빙해야 하는 이유를 말할 때 브런치 활동 내역도 말씀드렸다. 그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셨고 그 결과 그분을 모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의 강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나 또한 팀장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강의가 기대에 못 미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다. 가장 큰 이유는 좀 더 꼼꼼히 살피지 못한 내 잘못이다. 사실 그분의 브런치 내용을 봤을 때 명성에 비해 작성하신 글의 내용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전혀 와닿지 않은 것은 아니고 애매했다는 게 정확하겠다. 그러나 나는 원래 마음에 드는 게 많지 않은 사람이기에 내 잣대만을 들이댔다가는 한도 끝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연락을 오래 하지 않았던 지인에게 오랜만에 연락해서 이를 물어보기도 조심스러웠다. 솔직히 브런치에서 크리에이터로 인정해 주었으니 브런치의 판단을 좀 더 신뢰한 까닭도 있었다. 크리에이터의 첫 번째 조건이 전문성 아니었던가. 그래서 더 고민해야 하는 과정을 중간에서 그쳤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브런치가 사람이라면 그분을 강사로 불렀을 때 만족했을까? 내가 아닌 브런치를 충족시킨 분이니까 궁금해졌다.
인터넷상에서 만나는 전문가에 실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문가라고 소개받았지만 전문성이 내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일에 익숙하기까지 하다. 이런 일은 브런치에서도 있었고 다른 플랫폼도 있었다. ’이 정도로 콘텐츠를 만든다고?’, ‘구독자 수가 이만큼이라고?’, ‘본인을 스스로 전문가라고 부른다고?’ 두 번 세 번 놀란 경험이 많다. 전문가이기에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의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다 보니 그저 전문가라고 불리는 일이 너무 많은 탓이다. 전문가라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나. 실망에 익숙해져 피로해진다.
이렇게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고, 내가 무언가를 좋다고 말하는 데 까다로운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둘 다 진실이라는 점이다. 그 말은 이렇게나 다양한 관점이 있는 세상이라는 것 또한 가장 확실한 진실임을 증명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기업 중 하나의 상품(플랫폼)인 브런치에서 전문가 표식을 부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브런치 크리에이터 조건은 전문성, 영향력, 활동성, 공신력 네 가지였다. ‘전문성’이 가장 첫 번째로 있었고 눈에 띄는 항목이었다.
전문성은 어떤 것일까. 최근 ‘전문가라고 믿어볼까’ 했던 사람에게 실망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요즘 식단 관리로 살이 좀 빠진 탓에 갖고 있던 옷들의 핏이 영 이상해졌다. 기본템 재정비가 필요했다. 평소 옷에 크게 관심 있는 편은 아니라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가장 쉬운 접근으로 패션 유튜버 순위를 검색해서 높은 사람들부터 들어갔다. 한 패션 유튜버가 체형별 어울리는 기본템 분석 콘텐츠를 올려놓았다. 구독자수는 50만 명,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60만이었다. 영상의 길이는 20분 정도였는데 실망스러웠다. 세상의 모든 기본템에 대한 단순 정보, 많은 이들이 아는 사실을 나열할 뿐이었다. 유튜버는 패션감각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20분을 버린 기분이 들었다. 이 유튜버 외 다른 유튜버의 영상 몇 개를 봐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들 중에서는 스스로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경험이 여러 번 누적되자 전문가란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전문가에게 기대했던 바를 역으로 추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가 브런치 강사님에게, 패션 유튜버에게 기대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당연하게도 정보를 기대했다. 그러나 단순한 정보는 아니고 방대한 정보 중에 선별된 유용한 정보였을 것이다. 정보의 개념을 세상의 모든 것으로 쳤을 때 그 두 분은 선별한 정보를 준 것은 맞다. 그런데 나는 이에 만족을 못했다. 내가 진짜 바란 것은 '신뢰할만한 기준과 관점'으로 큐레이팅한 정보였을 것이다. 전문가 자신만의 관점이 담긴 추천을 기대했는데 그 관점이 내 기준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전문가를 찾는 대부분의 이유는 ‘관점’ 때문이다. 관점은 일종의 큐레이션이다. 시간을 레버리지하게 해 준다. 언젠가부터 시간 레버리지는 내 삶에서 꼭 필요한 요소가 됐다. 어른이 되니 세상에는 알아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일적으로도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에서도 그랬다. 먹는 것, 입는 것, 운동, 부동산, 주식.. 배워야 할 것 투성인데 너무 많은 날것의 정보가 있었다. 그래서 양질의 정보를 추리지 않고서는 수많은 영역을 커버할 수 없었다. 선별된 정보가 필요했다. 그런데 선별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까지도 많은 세상이었다. 그래서 좀 더 잘 선별한 사람, 공인된 기관을 찾는 과정이 필수였다. 그 잘 선별했다는 기준이 적용되면 그제야 양질의 정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최대한 다양한 사람이 추린 정보를 보는 습관이 있다. 진정한 양질의 정보를 한 명 또는 소수의 사람들 것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의심병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책도 하나의 주제에 대해 한 권만 읽지 않고 기본 2권 이상, 많게는 10권도 20권도 본 적도 있다. 강의도 한 개만 듣지 않는다. 여러 개를 듣는다. 돈도 많이 썼다. 단, 이때 정보의 무게는 가볍게 받아들인다. 세상의 정보는 불변하는 이론적 원칙이 아니므로 최대한 많이 접했을 때 스스로 주체적으로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만의 기준이 생겨 근본에 다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관점을 접한 뒤 반드시 실행을 하고 나서야 나만의 주관이 담긴 판단 기준이 생기고 단단해졌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관점을 참고해 도움을 받곤 한다. 직접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태생적으로 호기심이 많아 알고 싶은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알게 된 많은 정보들이 나를 실행시키고 성장시켰다. 친구들은 어떻게 회사에 다니면서 그렇게 많은 일을 하냐고, 과거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단기간에 그렇게 변할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삶을 더 많이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천성이 게으른 나인데 이 정도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전문가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알아야 실행을 하는 성향이기도 해서 많은 양의 정보를 흡수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꼭 필요했다. 많은 전문가의 지식을 레버리지해 매일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가고 성장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쌓이면 나 또한 나만의 관점을 가져 어느 분야에는 전문가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결국 전문가란 해당 분야에 대해 보통 사람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보유하거나 검토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로 인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 사람, 그리고 많은 정보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가려낼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이 의견을 구했을 때 최적의 솔루션을 추천해 줄 수 있고 그것이 객관적 또는 많은 사람의 신뢰 또는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내 생각이 맞는지 마지막 점검을 위해 기존 전통적 전문직에 대입해 보기로 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모두 방대한 지식(정보)에 대한 공부를 한 뒤 어떤 시험에 통과해서 자격증을 얻는 직업들이다. 허들이 있다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국가에서 공인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로 우수한 인재들 사이에서 상대평가를 거치고 전문가가 된다. 그런데 브런치 크리에이터를 포함해 모든 크리에이터는 허들이 거의 없다. 거치는 것은 ‘대중의 픽’ 정도겠다. 브런치는 브런치의 담당자가 허들이 되는 것이겠고. 이런 것들을 신뢰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전문가에게 기대했던 신뢰의 일부 개념이 브런치 크리에이터가 말하는 공신력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브런치 크리에이터의 조건 중 공신력은 가장 마지막에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물론 쓰여있는 순서에 가중치가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순서에서 중요도를 느낄 수밖에 없고, 회사를 다녀봐서 알지만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중 ‘순서’가 있는 것에는 의미가 없지 않음을 많이 경험했다. 전문성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 보고 마지막에 위치한 '공신력'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일련의 경험을 비추어보니 구색 맞추기용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내가 정신을 좀 더 차려 나만의 기준을 공고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 사실 원래부터 그랬어야 하는 건데 시스템이 바뀌면서 한번 더 나를 채근하게 됐다. 나 또한 크리에이터와 전문가가 되어 내 힘으로 밥벌이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기에 창작자로서도 앞으로 어떻게 SNS를 꾸려나갈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도 가졌다. 브런치의 운영방향을 크게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구애받지 않으려고 한다. 늘 어떤 것에 대한 불만은 받아들이는 나의 문제였던 적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