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의 스트레스 해소법,,
엽기떡볶이를 자주 먹었다. 습관처럼 시켰기에 중독이라고 이름붙일 수도 있겠다. 엽기떡볶이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 모아놓은 음식이었다. 우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떡볶이다. 맵고 달고 짜고 쫄깃한 식감을 좋아한다. 떡볶이 속 간이 잘 밴 어묵도 좋아하는데 비율이 적어 늘 아쉽다. 매운 음식도 워낙 좋아하는데 밥반찬으로 매운 음식은 잘 먹지 않게 된다. 비엔나소시지의 뽀드득한 식감을 좋아하는데 건강하지 못한 맛이라 웬만해서는 따로 사지 않게 된다. 앞에서 열거한 내가 좋아하지만 평소에 잘 먹을 수 없는 모든 것을 집대성한 음식이 바로 엽기떡볶이 엽오반반(떡볶이와 오뎅 반반, 오뎅 비율을 높임)이다. 퇴근 후 엽오반반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다. 입과 눈이 모두 즐거운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금기시했던 음식을 무장해제시켰기에 행복은 배가 됐다. 엽기떡볶이는 나의 힐링푸드였다.
문제는 먹은 이후였다. 매운맛으로 입을 뜨겁게 훑고 지나간 엽오반반은 다음날 내 몸속 구석구석까지 얼얼하게 했다. 몸은 붓고 살이 쪘다. 입은 즐거웠지만 입을 제외한 다른 내 몸은 고통스러웠다. 왜 나는 이 즐겁지만 몸에 해로운 짓을 계속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간헐적으로 고민한 결과 엽기떡볶이가 내 스트레스 해소의 치트키였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았던 날에 좋아하는 음식, 자극의 끝판왕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던 것이다. 고민을 계속 하니 진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게 맞을까 의문도 들었다. 순간적으로는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스트레스가 풀렸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단순 회피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엽기떡볶이 엽오반반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차원이 낮은 스트레스 회피방식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나는 먹는 것으로밖에 스트레스를 풀 수 없는 사람인가? 내 몸까지 즐겁게 할 스트레스 해소법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엽기떡볶이 외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우선 나는 요가할 때 스트레스가 해소됐다는 점을 기억해 냈다. 요가를 새벽에도 해보고 저녁에도 해봤는데 각각 다른 매력이 있었다. 새벽요가는 하루를 깨우고 개운하게 시작하게 한다면 저녁요가는 힐링이 됐다.
저녁의 요가원은 새벽보다 어두웠다. 그 안은 형광등 대신 간접 조명의 은은한 불빛으로 밝혀졌다. 인센스나 아로마 오일의 향기로 꽉 찼지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채워져 있었다. 이 공간에서 몸을 이완하고 숨 쉬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좋았다. 땀이 조금 나는 요가를 하고 마지막 송장 자세(사바아사나) 상태에서 심호흡을 하고 나면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과 정당한 쉼이 공존했기 때문이었을 테다. 지금은 요가원에 다니지 않기에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에는 집에 일찍 들어와 집을 요가원처럼 만든다. 암막 커튼을 치고 조명을 은은하게 셋팅한 뒤 양초나 인센스 스틱을 켜놓는다. 그리고 간단하게 요가를 하고 사바아사나로 마무리한다. 뿌듯한 힐링이다.
요가에서 배운 점은 큰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쉴 때 스트레스가 해소됐다는 점이었다. 이를 응용해 보기로 했다. 요가를 하기 싫은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숨을 쉴 명분이 필요했다. 한 가지는 그냥 사바아사나 음악을 들으면서 숨쉬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사바아사나 음악을 듣는다. 요가 선생님들이 틀어줬던 음악 중 마음에 들었던 것을 유튜브에서 뒤져 어렵게 찾았다. 스트레스가 올라오면 지하철에서도 듣고 길거리에서도 듣는다. 특히 지옥철에서 사람들과 부딪쳐 짜증이 올라올 때 필수다.ㅠ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작은 부딪침에도 짜증이 쉽게 올라온다. 그때 최애 가수 스나탐 카우르 선생님의 플레이리스트를 비상약 찾듯이 꺼낸다. 그리고 에어팟을 귀에 꽂고 눈감고 심호흡을 한다. 그 순간 지하철은 요가원이 된다. 마음도 차분해진다.
https://youtu.be/GfxZKySIako?si=oKQEV76zc2QlS0Jb
다른 하나는 러닝이다. 뛰면 숨이 가빠져 강제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게 된다. 이때 의식적으로 숨을 더 크게 들이마신다. 폐가 터질듯이, 할 수 있는 최대치로 폐에 공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잠시 뒤, 내 몸 안의 안 좋은 기운은 다 뱉어낸다는 듯 할 수 있는 최대치로 크게 숨을 내뱉는다. 주로 한강이나 청계천을 뛰었는데 자연의 공기를 들이마시게 되니 더 좋았을 것이다. 들숨에 자연의 밤공기를 몸에 들이고, 날숨에 사회의 안 좋은 기운을 내보내는 기분이 든다. 뛰고 나면 상쾌해진다.
사실 여기까지는 이상적인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이 모든 것을 하기 싫고 할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럴 때에는 그냥 소파에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거나 유튜브를 본다. 아니면 오후 7시부터 잠을 자기도 한다. 너무 힘들면 굳이 뭘 하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엽기떡볶이와 스트레스의 연결고리를 알아차린 뒤로는 엽기떡볶이를 주문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나를 파괴하는 일은 그만두었다. 요가나 러닝으로 숨을 크게 쉴 환경을 마련해 주거나 건강한 음식을 먹어주는 것이 내게는 진짜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먹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역시 모든 변화의 시작은 ‘인지’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