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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지 Aug 29. 2021

어서 오세요, 나의 집에.

웹진 취향껏 17호


밑바닥까지 보일 수 있다는 믿음이 안정과 연결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안을 느껴야만 했나 헤아렸다. 외부에서 시작된 불안이 무리를 지어 집 한복판에 자리 잡으면 나는 혼자 덩그러니 방구석에 고였다. 수많은 과정과 감정이 공간을 침범하는 건 탓할 수도 없는 누군가에게 손 쓸 세도 없이 망가져가는 일이었다. 상황을 잠재우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각자에게 나만큼의 사정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이른 나이에 깨달았을 뿐이었다.



평온한 집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불안을 현관 앞에 두는 일이 가장 먼저였고 남은 감정을 따듯한 물로 씻어내는 게  다음 일이었다. 하지만 잔량의 생각은 어찌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집에서 쉬는 동안 떠올릴 만한 생각은 아니었다. 줄 지은 불필요한 생각을 뒤로하고 창밖을 보았다. 흔들리는 나무를 보았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공간이 주는 안정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게 된 첫 시작이었다. 



높게 솟은 나무가 큰 창을 가득 매운 채 품어내는 포용력이 좋았다. 전셋집을 구할 때에 큰 창과 울창한 나무를 상위조건에 둔 이유였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삶은 감당할 수 없는 것들로 메워있지만 창밖은 자연의 여유로 가득차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침체된 온 집안에 스며드는 동시에 환기된 생각은 하루를 온전히 살게 했다.



사는 동안 맞이한 창으로 많은 것들을 이겨냈다. 정말 창밖에 있는 나무가 이겨내게끔 도왔을 것 같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과도한 생각과 감정을 잠시 멈추는 것만큼 좋은 해결방법은 없다고, 분노에 가려진 감정이 무엇인지 헤아려보는 시간을 갖는 것에 창밖을 가득 메운 나무가 도움을 줬다면 이겨내게끔 도운 것도 맞지 않을까.



형체도 없는 것들이 온몸을 흔들어 깨워 지친 사람이 있다면 나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 원하는 온도의 커피를 예쁜 잔에 담아 반은 하늘, 반은 나무인 창밖을 내내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다. 대치되는 모든 것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순간, 나의 집이 당신에게 그런 순간을 선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Photo by Daria Ro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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