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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젤닥 May 06. 2022

박사학위와 독서

박사공부를 하면 책을 많이 읽게 될까?

대학원 간다고 하면, 특히 사회과학 분야의 박사과정을 한다고 하면 - 나는 정책 분야 전공을 했기 때문에 사회과학으로 분류된다 - 다들  좋아하나 보다,  많이 읽고 싶어서 가나 보다 한다. 적어도 나는 대학원 진학시에 그런 점도 고려가 됐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과연 학위를 따기 위한 과정에서 많은 독서가 가능할까. 나의 경험은 생각과는 전혀 달랐고  다른 점은 박사학위 과정의 본질과도 관련이 있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자체는 서른 후반에 대학원을 가기로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외국계증권사에서 세일즈 하느라 정신없는 중에도,  밝히는(?)  업종 종사자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적어도 아는 주변인의 평가는 그러했다.  진지한 신학자나 사상가들, 그리고 경제학자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해당 분야 고전도 곧잘 집어서 읽곤 하는 편이었다. 예를들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나 앤서니 다운스의 ‘경제이론으로  민주주의같은 책들을 저녁에 야근하고 회식하고  후에, 주말엔 골프치고  후에 꾸역꾸역 읽곤 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독특한 취향의 소유자였다고 생각한다. 쟈크엘룰, 본회퍼 등의 기독교 사상가들 책을 여러  읽고 독서 모임도 하곤 했었다.


특히 경제학의 효용이론을 정치의 영역에 적용해 양당제의 비밀을 풀어낸 앤서니 다운스의 책은 관심사가 다양한 편인 나에게는 큰 자극이 됐다. 합리적선택이론을 시작한 이 책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단한 수학 공식 없이도 개개인이 각각 자기 표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극대화 하다 보면 어떻게 상당수의 민주주의 국가가 양당제로 수렴하는지를 잘 설명해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독서 경험은 왠지 나에게도 영역을 넘나들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역량을 길러 볼 기회가 있을 것 같은 그런 묘한 기대감을 지속적으로 갖게하였고 실제 논문 주제를 정할 때도 항상 머리 한 켠의 메타포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대학원에 가니 다들 생각하는 독서를 하기란 뭐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버렸다. 생각해보면 독서 그 자체만 생각하면 오히려 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학위 과정에 필요한 것은 일반 독서가 아니라 가능한 많은 양의 논문을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선 글에서도 썼듯이 박사학위란 결국 기존에 없던 지식을 연구하여 그 성과를 일정한 형식의 글로 문서화하는 능력을 인정받고 자격증을 따는 것이기 때문에, 관심사를 찾고, 그 관심사에서 내가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으로 만들어야 할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에는 일반 서적 보다는 가능한 한 수준 높은 논문을 많이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 이유는 첫번째와 관련이 있을텐데 무지막지한 양의 학술논문이나 서적을 읽다 보면 쉴 때는 활자를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엄청난 양의 문자를 보고 지내다 보면 일하다가 나름 쉬기 위해 책을 읽던 때 와는 좀 다른 인센티브가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사과정은 기본적으로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한 경험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학위를 기반으로 교수 등의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을 가질 계획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꽤 오래전 한참 투자은행 다니던 시절에 아내와 몇 주 미국 여행하던 중 미국에서 교수하는 한 학교 후배에게 놀러갔을 때, 이런저런 얘기하던 중에 그 친구가 (연구하는) 교수 제대로  하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내가 학위를 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석사를 하고 박사과정 중에 어떤 교수님도 연구를 하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셔서 예전 기억이 났었다. 박사학위 과정은 독서를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 유리할 것이나, 정작 과정에선 단순 독서 보단 학술적 문헌을 읽는 훈련에 집중해야 할 것이고, 이 후에는 둘 다 꾸준히 하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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