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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ngbelle Mar 16. 2021

슬픈 눈물까지도 방수해드립니다

008.Coldplay - Fix you


한국인의 팝송 취향을 분류해 둥그런 광장에 늘어놓는다면 직선 거리로 가장 먼 거리의 끝에 블랙 뮤직을 좋아하는 사람과 브리티쉬 락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굳이 정하자면 내 취향은 블랙 뮤직 쪽에 가깝지만, 사실 대학교 1학년 때 밴드 동아리에서 노래를 했었다. 축제 무대에 딱 한 번 서 보고 서둘러 관두긴 했지만. 방음벽으로 꼭꼭 둘러쌓여 먼지 가득한 지하 합주실의 공기와 노래방에서 빼돌린 마이크 덮개를 씌우고 앰프와 악기를 점검하는 선배들을 기다리던 시간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짧은 경험이 밴드 음악 사랑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주변에는 오아시스, 뮤즈, 라디오헤드, 트레비스, 콜드플레이 등으로 대표되는 브릿락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항상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콜드플레이의 <fix you>는 영혼을 달래주는 힐링송으로 많이 추천된다. 2005년 발매된 이 곡은 보컬 크리스 마틴의 전 부인인 배우 기네스 펠트로가 그녀의 아버지를 병으로 보내고 슬퍼할 때 크리스 마틴이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다. 제목과 가사 그대로 fix you, 너를 고쳐 줄게, 너를 아프지 않게 해 줄게 라는 위로의 손길로 가득한 노래다. 그렇다면 한국의 밀레니얼들은 언제 이 노래를 제일 많이 듣고 위로받았을까? 시기상 그들이 중,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이던 때였을 것이다. 사방이 어둡고 조용한 독서실에서 문제집 넘기는 소리와 연필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256MB 용량의 MP3나 인강을 들으라고 부모님이 사주신 PMP, 용돈을 모아 산 CDP등으로 이 곡과 처음 연결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fix you>는 K-학창시절의 자습실 감성 끝판왕같다는 생각이 든다.


2:30초 이후 보컬이 빠지고 기타 솔로 연주가 점점 고조되면서 마치 종교적 제의 같은 구간으로 넘어간다. 이 부분을 들을 때면 멈췄다가 다시 뛰는 심장소리처럼 힘찬 드럼이 터지기 직전까지 마음 속으로 호흡을 고른다. 음원에서도 그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데 수만명이 함께하는 공연장에서는 현장감이 더해져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올지 상상만으로도 벅찬 마음이다. 콜드플레이의 지난 내한공연은 2017년 4월 15~16일 올림픽공원 주경기장에서 펼쳐졌다. 영국에서 날아온 콜드플레이는 이틀간 무려 10만명의 한국 관중에게 잊지 못할 시간을 선물하고 갔다. 특히 공연 마지막날은 2017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3주기였다. 이 날 콜드플레이는 세트리스트의 <Yellow>를 연주하던 중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전원 묵념의 시간을 유도하기도 했다. 당시 공연에 다녀온 이들은 한동안 단체로 테라피라도 받고 온 듯 생기를 띄었다. 물론 그 테라피의 화룡정점은 인증샷 아래 붙은 #콜플 이었다.


최근 어느 누수 공사 전문 업체 트럭에 붙은 '슬픈 눈물까지도 방수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SNS상에서 화제였다. 사장님의 유머가 빛나는 홍보 방법에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사실은 다들 어딘가 조금씩 고장나 있는데도, 모르고 지나쳐 버리거나 알면서도 돌보지 않고 하루를 그냥 보낼 때가 있다. 이럴 때 플레이리스트에 <fix you>같은 곡을 하나 씩 심어두면 어떨까. 혹시나 나도 모르는 내 아픔을 찾아 고쳐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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