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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성은 자신의 얼굴을 잃는다

018. Reflection(뮬란 OST)

by 비잉벨


나를 봐, 나는 완벽한 신붓감이나 완벽한 딸이 될 수 없을거야.

그게 가능할까. 난 그 역할을 해낼 수 없어.


* Look at me / I will never pass for a perfect bride Or a perfect daughter

Can it be / I'm not meant to play this part


(*영화 삽입용 가사와 엔딩 크레딧 버전의 가사가 조금 다르며, 위의 가사는 영화 삽입 버전을 기준으로 한다.)





세계인이 사랑한 디즈니 프린세스 목소리, 필리핀의 배우 겸 가수 레아 살롱가가 가창한 버전의 <Reflection>은 영화 밖에서도 많이 들렸던 아름다운 곡이다. 주인공이 각성하기 전 깊은 고뇌를 보여주는 장면에 삽입되어 깊은 울림을 준다. 디즈니 최초의 아시안 주인공인 뮬란은 중세 중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여성 인물이다. 좋은 집안에 신붓감으로 선택받기 위해 중매쟁이에게 잘 보여야 하는 날, 천덕꾸러기 뮬란은 테스트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자책하여 집에 돌아와 마당을 거닐며 이 노래를 부른다. 어색하도록 진하게 화장된 얼굴을 집안 곳곳에 비추어 보며 자신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뮬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 안에 분명 있을 힘을 찾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슬프고 외롭게 들리는 익숙한 멜로디를 듣다가 문득 '탈코르셋'과 '비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뮬란이 살던 시대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두 단어지만 뮬란은 사실 이미 어느정도 탈코러였으며, 한번쯤 비혼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When will my reflection show Who I am inside

언제쯤 내 모습이 내가 진정 누구인지 비춰줄 수 있을까



탈코는 결국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대학교 엠티 다음날 메이크업을 안 한 여성 후배에게 '오빠한테 예의 좀 지켜'라며 농담을 건네는 남성 선배들, 오랜만에 안경을 쓰고 출근한 여성 동료에게 '못알아보겠다'며 굳이 군말을 보태는 남성 동료들 사이에서 숨쉬고 살아야 하는 여성은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린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이리저리 끼워 맞추다가 거울을 보면 그 안에 내가 없다. 뮬란처럼. 그런 마음으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머리를 자르고 화장품을 버리며 탈코르셋을 선택한다. 그 방법으로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주변 사람의 결혼에는 늘 기꺼이 축하를 보내지만 스스로는 결혼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비혼주의로 단정지을 용기는 없지만 대신 <비혼 라이프 가시화 팟캐스트 : 비혼세>를 즐겨 듣는다. 비혼세는 비혼을 강요하는 방송이 아니다. 그저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으며 그 중에 하나인 비혼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 커뮤니티일 뿐이다. 난생 처음 받아 본 어색한 신부화장을 하고, 불편한 옷을 입고 모르는 남성에게 간택당하기 위하기만을 기다렸던 뮬란과 우리는 다르다. 뮬란은 아버지의 징집을 막기 위해 남장을 하고 군대에 자원하여 남성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다가 겨우 자신의 모습을 찾지만, 나는 그런 고생이 필요 없다. 나 같은 고민과 생각을 하는 내 세대의 사람들이 분명 있고, 많고, 서로의 연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뮬란과 다르게 우리의 거울에는 자신 그대로의 모습이 담기기를 바란다.




#임진모비켜 #MZ세대한국인의팝송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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