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 남겨놓은 감각의 자리
구와 담이에게는 서로가 있었다.
말 대신 숨의 결이 먼저 닿는 관계.
힘든 와중에도 서로의 체온이 작은 방을 채우던 순간들.
구는 말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하지만 담이에게 사랑은 언제나 사라지기 직전의 무언가였다.
손에 잡으면 빠져나가고, 붙잡으면 부서지던 것들.
엄마, 아빠, 할아버지, 노아, 이모…
그녀의 삶은 늘 빈자리들로 울렸다.
그래서 담이는 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의 목숨마져 잃어버린 구를
담이는 먹는다.
따뜻한 살, 식은 숨, 사라진 체온의 찌꺼기까지.
입안에 맴도는 건 고기인지, 기억인지, 아니면 아직 꺼지지 않은 그의 잔광인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자신 안에서 그가 다시 살아 움직이길 바랐다.
이제는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곳에서.
자신의 심장과 피부 아래에서 영원히 머물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상실은 때로 이런 기이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피부 아래까지 스며들어,
뼈와 뼈 사이를 긁고,
숨이 닿는 깊은 곳에서 서늘하게 울린다.
사람은 너무 큰 상실 앞에서 생존을 위해 감각을 닫는다.
심장이 아니라 피부가 먼저 굳어버린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느끼면 이 몸이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아서.
하지만 작가는 이 기괴한 비극의 마지막에,
우리에게 기묘한 진실 하나를 보여준다.
"고통스럽게 나를 뜯어먹는 너를 바라보고 있자니 있고 없음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있든 없든 그건 어디까지나 감각의 영역일텐데. 죽어 몸을 두고 온 자에게 감각이라니 무슨 개소리인가. 하지만 느껴진다. 나는 분명 너를 느끼고 있다" <구의 증명 본문 중>
죽은 구는 담이를 느낀다.
아프게 씹히는 감촉,
자기 살이 누군가의 이 사이에서 사라지는 감각.
죽은 몸으로는 느껴질 리 없는 것들이
어째서인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감각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상실이 아무리 몸을 헤집어도
어딘가에서 미세하게 계속 살아 있고
그 살아 있음이 우리를 다음 순간으로 밀어낸다.
소중한 존재를 잃고 나면
한동안 숨이 허공에 흩어지는 느낌만 남지만,
시간이 지나면 빈 자리의 냉기 속으로
작은 온기 하나가 스며든다.
우리가 다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감각이 먼저 되살아난다.
그렇게 상실의 다음 페이지는
언제나 느끼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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