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책을 뒤적였다.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 있었지만,
불안은 나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
책장을 넘기는 손은 공부를 한다기보다
“나 이렇게라도 하고 있어” 스스로에게 말하는 행위였다.
불안을 달래기 위한 몸짓이었다.
우리는 불안을 무서워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두려워한다.
불안은 살아남고 싶다는 몸의 외침이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하듯,
불안은 곧 생존의 문제다.
그래서 철학과 심리학은
불안을 인간의 조건으로 말했다.
불안은 나약한 감정이 아니라,
나를 지키고 살아남게 하는 오래된 장치다.
불안은 오래된 센서와 같다.
위험 앞에서 교감신경을 깨워
싸우거나 도망가게 한다.
작은 토끼도, 거대한 영양 무리도,
그리고 우리 인간도
모두 이 반응으로 덕분에 살아남았다.
불안은 완벽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더 나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과해지면 경보기가 고장 나듯,
번아웃과 공황장애가 찾아온다.
마치 화재 경보기가 작은 연기에도 계속 울리면
짜증이 나 꺼버리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불안은 없앨 수 없다.
불안은 없애려 하면 더 거세진다.
그저 오래된 센서일 뿐,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을 알려주는,
내 안의 나침반이다
불안을 끄는 대신, 그 소리가 무엇을 알려주려 하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내 삶을 안내하는 불안이라는 오래된 목소리를 듣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