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주민센터에서 등록한 프랑스 자수는 3개월 과정이었습니다. 재등록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별로 생각하지 않은 채 저에게 선택권이 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뿔싸.
역시 인생이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아침에 시간 맞춰 등록페이지로 갔는데 이미 마감입니다.
몇 분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대기접수도 받지 않는다고 하니 내년 1분기에는 수업을 듣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잠깐이지만 혹시 제 지난 글들이 프랑스자수의 매력을 사방에 알리는 역할을 한 건 아닌가 하는 망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수업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져서 전날부터 수업날 새벽까지 밀린 자수를 부랴부랴 완성했습니다.
동전지갑이 될 아이
복주머니 파우치가 될 아이
무언가의 덮개가 될 아이
그런데 역시 마지막 수업도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셋 중 어느 것도 완성은 하지 못한 채 3개월간의 수업이 끝났습니다.
아무래도 나머지는 제가 이리저리 해보다가 정 어려우면 선생님께 개인적으로라도 여쭤보는 식으로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해 주셔서 일단 덥석 그러겠다 했습니다.)
유방암 진단을 12월에 받고 수술과 치료를 시작했기에 매년 12월이 되면 1년에 한 번 있는 검사가 돌아옵니다. 조영제를 넣고 하는 CT 검사와 엎드린 자세에서 30분씩 하는 MRI검사, 약물을 전신에 넣고 3시간 뒤 하는 뼈전이 검사 등등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검사들이 줄지어 이어집니다. 현재 건강하고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어 감사하는 것과는 별개로 12월이 오면 마음 한구석이 착잡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작지만 존재감 있는 두려움이 이리저리 제 마음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이런 시기에 프랑스 자수를 취미로 둔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몇 시간을 형형색색 천과 실들을 들여다보고 수를 놓고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듭니다. 조금 익숙해지니 제 마음대로 실의 색과 디자인을 고를 수 있어 즐거움이 배가 됩니다. 마지막 동전지갑의 경우 딸아이를 주고 싶어 '용기와 지혜'라는 문구를 새겨 넣어보았습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자수를 놓는 것은 또 다른 충만함을 경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과 왼쪽 팔이 부어오르는 것만 뺀다면 제게 참 잘 맞는 취미입니다.
아쉽게도 상황에 따라 잠깐 쉬게 되었지만 꾸준히 시간을 들여가고 싶은 취미를 하나 찾았습니다. 취미를 통해 실용적인 무언가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취향껏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추구하신다면 프랑스 자수를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