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취미를 찾는 중입니다 - 프랑수 자수 4
갈등이 생겼을 때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먼저 주는 것이 방법일수 있다는 것을 배운 날의 기록입니다.
취미로 듣는 프랑스 자수 선생님과 불편한 상황이 자꾸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수강생들도 드러내진 않지만 불편해한다는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다들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프랑스 자수 수업은 흔한 강좌가 아니어서 신청경쟁이 치열합니다. 여러 우여곡절끝에 취소된 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추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수업 첫날에 가벼운 마음으로 지난 분기에 미완성한 것들을 들고 갔습니다. 가서보니 다른 수강생들은 지난 분기 마지막 시간에 미리 예약한 새로운 패키지를 받아들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3개월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완성되지 않은 것들을 먼저 완성하고 새로운 패키지를 시작하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편하게 생각하고 천천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라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고지식하게 제가 편할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유방암치료 부작용인 림프부종으로 바느질을 몇시간하고 나면 팔이 부어오르는 것을 몇 번 경험하고 속도를 천천히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린적이 있었기에 배려를 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다른 수강생들의 눈이었습니다.
“새로운 패키지는 시작 안해요?”
같은 날 자수 수업을 듣기 시작한 옆자리 수강생이 제게 이 질문을 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습니다. 사실 처음 이 수업에 왔을 때 불편했던 점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수강료외에 한 분기에 4개의 패키지를 구입하여 소화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3개월 수강료의 2배이상이 재료비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전 패키지를 완성하기전에 새로운 패키지를 구매하여 시작하는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이전 패키지를 완성하고 그만두려면 새로운 패키지를 완성하지 못하고 그만두어야되는 문제가 수강생 모두에게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묵묵히 감수하고 있는 불합리를 제가 감수하지 않고 단독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불만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라도 그랬을테니까요.
처음 과정을 시작할때는 누구나 그 문제가 불편하게 다가오지만 3개월을 거치면서 그에 대한 불편감이 큰 사람은 그만두고 그보다는 자수활동이 주는 즐거움이 크고 함께하는 분위기가 좋은 사람들은 남게 되는 것 같다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수강생들의 반응때문인지 선생님의 태도도 돌변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해도 알겠다고만 하시고는 다른 수강생들에게 도와줄거 없냐고 물어보며 돌아다니시거나 저에게만 다림질을 직접하라고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다림질은 선생님이 도맡아 해주는 일종의 서비스같은 걸로 보였는데 말이죠. 다림질한 천의 숨구멍으로 속지와 겉지를 뒤집어 꺼내고 공구르기로 마무리를 하고 나서 끈을 끼우기 위한 바느질을 다시 시작하는데 만져보던 선생님이 솔기가 잘 안 갈라져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의 미숙한 다림질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장소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교실 안의 공기가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소외감으로부터 평정심을 찾으려고 이리 저리 생각을 정리해보고 심호흡도 해보고 했지만 이전의 평화롭고 따뜻한 기운을 되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집에 와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만둘지 계속할지에 대한 생각에 멈춰있었습니다. 서로가 처한 상황이 모두 있고 저는 그 분위기가 싫으면 그만둘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는다 -----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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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패키지 고수한다 새 패키지 시작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선생님과 다른 수강생의 입장에 공감해보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저같은 예외 상황이 불편하고 짜증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느질을 많이 하면 왼쪽 팔이 붓는다는 것은 제 사정일 뿐입니다. 딸이 자주하는 말로 ‘알빠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대처도 달라집니다. 사실 저는 프랑스 자수에 조금씩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계속 배워보고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속도를 맞추려니 제 상황에서는 너무 빠르게 느껴져서 부담스럽고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따름이었습니다.
그 둘이 공존하는 방법을 조율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어떤 형태의 조직에 속하되 제 나름대로의 방향과 속도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아있기로 결정한 이상 제 입장을 고수하면서 버틸 것인지 아니면 전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같이 시작한 사람들과 다른 패키지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제 속도대로 나가면 그들도 편안하고 저도 선생님도 편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흐릿하고 어두워서 안보이던 시야의 바깥쪽 영역이 한 뼘정도 확장되면서 시야가 더 넓어지고 선명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다. 이미 그런 시야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제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스스로 조금은 더 단단해졌다고 느끼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타인에게 주라. 그리고 받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제 욕구나 의도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상대방의 욕구와 의도를 존중하는 것이 서로간에 생긴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유용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취미생활속에서 만난 느슨한 관계이기에 조금은 더 가볍게 이런 관계에 대한 실험들과 배움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