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보고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소수의 상영관에서만 볼 수 있는 데다가, 167분이라는 러닝 타임도 부담이 되어 미루고 있던 차에 쿠팡 플레이에 이 작품이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싸!'하면서 냉큼 구매하고는 편하게 내 집에서 보기로 했다.
물론 전혀 맘 편히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란에서 히잡 관련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내용 등을 예전에 뉴스에서 접하기는 했지만, 중동, 이슬람권의 이 나라들은 워낙 멀게 느껴지고 속사정을 자세히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마흐사 아미니 시위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중간 중간에 실제 시위 장면들을 넣어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고, 몰입감을 높인다.
감독이 거의 목숨 걸고 만든 듯한 이 영화를 보면서 동시대의 여성들이 이 정도로 부자유하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충격을 받았다. 감독은 당국에 들키지 않게 몰래 영화를 찍었고, 이 영화 때문에 실제로 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는 외국으로 망명한 상태라는 기사를 읽었다. 이란에 남아있는 배우들은 현재에도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억압적인 사회에서 자유를 주장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젊은 여성들의 용기,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이 영화에 참여하는 감독과 배우들의 용기...
그들도 당연히 겁나고 두려웠을 것이다.
에어컨으로 시원해진 방에서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다가 괴롭고 부끄러워져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시위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총을 맞아 눈을 크게 다친 딸의 친구를 엄마가 집에서 치료해주고, 눈물을 흘리며 박힌 총알을 빼내는 고통스러운 장면을 영화는 일부러 길게 보여준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우리 나라 역시 잘못된 일에 대해 시위를 하고, 정의를 부르짖었다는 이유로 누구든 잡혀 들어가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하는 나라였다. 앞서 살았던 이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내가 어떤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생각 없이 지내다가 머리가 복잡해지곤 한다. 부채의식에 가까운 감정이다.
후반부에서 영화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실은 독재와 억압,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장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인 '가정'에 조명을 비추는데, 이 부분이 영화적으로도 탁월하게 느껴졌다.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고, 억압을 당하는 피해자가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또다른 가해자가 되는 것 역시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얼마 전 네덜란드 여행 중 MOCO MUSEUM에서 봤던 작품이 떠오른다.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는 이들의 몸짓 하나 하나가 모여 자유를 향한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길 마음 깊이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