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 정도로 한 번에 올 줄은 몰랐지
1. 예전에 썼던 이직에 관한 이야기다.
첫 서류 접수가 완료 됐다고 회신을 받은 건 4월 셋째 주였다. 최종 결과를 받아 들기까지 4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구글도 한 사람 채용에 3개월 이상 쓰지 않는다. 오래도 걸렸다.
절차는 길기만 한 게 아니었다. 첫 서류 전형, 조직 적합성 검사(온라인), 1차 실무진 면접, 2차 임원진 면접, 3차 조직장(CIO) 면접, 4차 CIO 밑의 실무 팀리더 줌미팅. 중간마다 있었던 영어 면접 등, 미국에 있다는 면접관들의 스케줄 조정으로 지쳐갔다. 덕분에 지원하는 회사에 대한 리서치와 내 지난 커리어에서의 장단점 파악은 확실하게 끝냈다. 주식을 사도 괜찮을 회사다.
지난주, 저장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AI는 번호 옆에 '업무에 관련한 사람'이라고 알려줬다. 지원한 회사의 인사팀 담당자란다.
4개월이라는 채용 절차, 시가총액 10대 그룹 안에 들어가는 한 회사의 CIO 대면, 사실상 상견례 느낌이 낭랑했던 마지막 줌미팅까지.. 구체적인 입사 시기와 처우 협의만 조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처우에서도 많이 양보해야겠다고 내심 선심(?)까지 썼었다. 모든 정황은 현 회사에 마음을 떼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담당자는 혀가 길었다. '선발되지 않았음'을 알렸다. 최종 한 명의 누군가가 선발되었고, 필자의 평가가 얼마나 좋았는지.. 조직장도 아쉬워한다느니.. 추후 충원의 여지가 있을 때 연락을 드리겠다는... 소리들을 해대며.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공식 메일을 드리기 전에 유선으로 말씀을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나에게 사죄한다. 그 사람이 뭔 잘못이 있다고..
아쉽다고,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고객과의 점심이 있어 회사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10초 정도 멍을 때렸다. '이제 어떡하지..'
아내를 포함한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만약 이 이직이 잘 안 되면 내상이 클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하고 싶었던 직무, 배우고 싶었던 섹터, 부수적인 설명이 필요 없는 회사, 그리고 고향에 있는 근무지까지! 앞서 말한 '선심'을 위한 이유가 많았다. 현 회사와 관리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극에 달해 있었다. (이건 물론 지금도 변함없다)
'아내에게 말해줘야지.. 미안하네..' 하며 핸드폰을 켰다. 마침 택시가 도착했다.
네비대로 가달라고 하며 핸드폰을 봤다. 아버지에게 카톡이 와있다. 인사 담당자와 통화 중에 온 것이리라.
2. 예전 글에 썼던 아버지의 암에 관한 이야기다.
나이에 비해 건장하고 기력이 넘치셨던 아버지의 암(바터 팽대부) 소식이 있었다. 70이 넘은 고령의 사람이 급격하게 체중 감소가 있다면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급한 입원과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의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지혈이 안된다느니.. 조직이 연해 접합이 어렵다느니.. 개복을 해야 할 것 같다느니..(아버지는 복강경으로 로봇수술을 진행했다)
장장 7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암세포를 깔끔하게 도려내는 데 성공했다. 수술 과정을 들으며 든 생각. '의사들은 돈 더 벌어야 한다.'
깔끔하게 도려낸 이후 가족들의 회복 간호가 뒤따랐다. 회복도 남들보다 빠르고, 식욕도 돌아오는 아버지를 보며 온 가족이 한시름 놨다. 퇴원 날짜를 조율하고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전이 상황, 애초에 이 암을 발견하고 수술할 수 있는 환자 비율이 30%라는 사실 등, 대학병원 특유의 냄새 속에서 아버지의 면회실만 긍정적인 공기가 돌았다.
조직 검사를 했다. 전이가 발견 됐단다. 그쪽으로만 발견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던 의사의 말이 무색하게, 림프절에 전이된 것이다. 항암치료가 불가피하다.
아버지는 집도의와 상담 내용을 녹취 파일로 보내주셨다. 림프절로 전이 됐다는 건, 보이지 않는 길로 암세포가 돌아다녔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대화 속 아버지는 항암치료를 통한 기대 수명을 물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힘들게 몇 년 더 사느니 그냥 편하게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 뉘앙스다.
억장이 무너진다. 희망과 다행스러움이라는 감정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 반전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녹취 속 의사는 항암을 추천했다. 퇴원 후 통원하며 약물치료로 시작하자고. 환자의 상태를 보고 항암을 견딜 수 있는지 여부를 의사가 판단한단다. 수술 후 회복 속도나 아버지의 체력을 보고 판단한 결과다. 항암치료가 필수적이다. 아무렇지 않게 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있다고 위로한다.
항암을 하기로 했다. 온전하지 않은 어머니의 상태와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본인뿐이라는 한 사람의 책임감에서 의지가 샘솟는다. 고통을 끊어내고 싶지만,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본인에게는 있는 것이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쇠했다. 젊었을 적 날카로움은 없어진 지 오래지만, 건강한 기운마저 암이 앗아갔다. 내면의 설명하기 어려운 사명감과 의지만이 성대를 울리고 있다고 느꼈다.
아버지의 퇴원날에 모시러 가기로 했다.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생각한다.
아내에게 연락해야 한다.
이직에 대한 결과와 아버지의 소식. 설명하기 전에 내 생각부터 정리해야 했다. 택시는 마포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