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끝나나..
<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택시는 마포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앞의 두 가지 뉴스로 정신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또 하나의 이슈가 마음속 어디선가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예전에 썼던 경찰 조사와 관련된 이야기다.
6월 중순,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클라이언트와 미팅이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자료를 펼칠만한 큰 테이블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통유리창 앞에 있는 자리는 메인 홀과 조금은 떨어져 있어 그나마 조용했다.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앞 좌석 의자에서 지갑을 발견했다. 애타게 주인을 기다리는 모양새로 가지런히 놓아져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갑을 들었다. 오피스 밀집 지역 한가운데 있는 카페다. 지갑엔 주인의 명함이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인 줄 아시오~' 하며 명함을 찾았다. 왠 걸. 명함 없음. 들어있는 건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로 보이는 몇 개. 현금도 물론 없었다. 애초에 카드지갑이다.
클라이언트를 기다리며 아내와 실시간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지갑을 주웠는데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경찰서에 갖다 주면 착불로 보내준다고 인터넷에 나와있다' 등.. 잠깐의 이야기를 마치자 클라이언트가 카페 문을 들어섰다.
지갑을 테이블 구석에 올려놓은 채로 한 시간가량의 미팅을 마쳤다. 만약 주인이 찾으러 오면 클라이언트 미팅 중에라도 건네줄 수 있었다. 클라이언트와 인사를 하고 나도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카페 점원에게 지갑을 맡기는 것이다.
왜 그토록 간단한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근처에 있는 지구대 위치를 알고 있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세상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찬 필자는, 그 순간엔 지갑을 내가 직접 찾아주면 분실자는 고마워하겠지?, 오랜만에 착한 일 좀 해볼까? 하는 알량한 우월감(?) 등.. 다른 의미의 브레인포그(brain fog)를 만든 것 같다.
카페에 있던 시간은 총 한 시간 반 가량 정도다.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갑을 재킷 주머니에 넣고 카페를 나섰다. 회사로 복귀하는 길을 조금만 우회하면 지구대가 있다.
쉬지 않고 울려대는 전화기를 붙잡고 통화를 하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미팅 자료들을 가방에서 꺼내고, 자켓을 벗으며 깨달았다. 지구대에 들리는 걸 잊었다. 지갑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놨다.
대수롭지 않았다. 지갑을 책상 서랍에 넣으며 내일이나 천천히 지구대 갖다 줘야지, 생각했다. 옆 자리의 후배에게 사연을 말한 건 덤이다. "xx야, 나 지갑 주웠다? 어쩌구 저쩌구.."
3주가 지났다. 쏟아지는 미팅과 업무를 쳐내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미팅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수신 거절 메시지를 보냈다. 문자 회신이 왔다. 'XX 경찰서 형사 5팀 ooo형사입니다. 회의 종료 후 빠른 연락 바랍니다'
'요즘 보이스피싱 애들도 열심히 하네. 정우성도 열심히 살고, 사기 치는 놈들도 열심히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정도가 첫 리액션이었다. 친구들에게는 "야, 요즘엔 보이스 피싱도 이런 식이다. 이건 텍스트 피싱 정도 되겠네. 대담한 놈들이야.." 하며 현 상황에 대해 회의적이며 개탄스러워했다.
모두에게 다정하게 살지는 않을지언정, 범죄를 저지를만한 일은 해본 적 없다. 특히나 형사사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녀석에게 쪽(?)을 선사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경찰청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민원실에 전화해서 해당 형사의 이름을 물어보고, 그런 사람 없다는 확인을 받은 뒤.. 열심히 사는 텍스트피싱범(?)을 역으로 혼내줄 생각이었다. 점심시간의 민원실은 연결이 어려웠다. 수십 초의 기다림 끝에 민원실과 연결 됐다.
"xxx 형사님이라고 계신가요?"
"무슨 일이시죠?"
"xxx 형사님인데 연락을 달라고 해서요. 보이스피싱으로 의심되는데 확인 한 번 하려고요."
"...잠시만요. (잠시 뒤) xxx 형사님 계십니다. 통화하시는 분 성함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네?? 와~ 요즘 보이스피싱 정말 철저하네요~ 껄껄. 이름은 OOO, 주민번호는 ~ .."
"..선생님. 선생님 앞으로 계류 중인 사건이 있습니다. 형사님께 연락해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예??? 무슨 죄명으로요?"
"수사 중인 사항에 대해 말씀 드릴 수 없구요. 자세한 건 형사님하고 통화 해보시는 게 좋습니다. 서둘러서 연락드려보세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상황 파악을 할 겨를도 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형사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이 무슨 밀당이지? 내 앞으로 배당된 사건이 있다고? 내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고?
그나마 의심할만한 건은 내가 모르게 했을 불법유턴이나 신호 위반 정도겠지.. 하며 진정 됐다가도, 아니 불법 유턴으로 형사과에서 연락이 온다고? 연이은 상황 파악 실패에 마음이 급급했다.
전화가 왔다. 형사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XXX 형사입니다. OOO씨 되시죠?"
"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3주 전에 xxx동 소재 스타벅스에서 지갑 습득하신 적 있죠? 시간 되실 때 경찰서 좀 나오셔서 조사를 받으셔야겠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