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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재능은 저주일까?

그렇다면 나는 마녀, 너도 마녀

by 삼십대 제철 일기

재능이 있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그 수준이 애매하다면? 그건 저주일까 축복일까.


언젠가 사람들과 예체능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자녀가 공부가 아닌 예체능을 전공으로 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쉽게 답하는 이가 없는 와중에 누군가 말했다.


"누가 봐도 천재성을 가졌다면 시켜야지. 근데 애매하면 바로 스톱."


예체능은 가지고 태어난 '재능'이 중요하다. 그리고 돈과 시간도 쏟아야 한다. 그러니 될 성 부른 잎인지 빨리 알아보고, 안 될 것 같으면 포기하게끔 하는 게 아이한테도 부모한테도 좋은 일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은 듯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면 여러 번의 시도가 용납된다. 길을 잘못 들어도 얼마든지 다른 길을 뚫어줄 비용이 있고,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줄 시간도 있겠지. 하지만 서민들은 한 길만 파서 피니쉬라인에 도착하기도 버겁다.


그러니 재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타고난 신체 능력도 재능이고, 한 번 듣고 따라 연주하는 것도 재능이고, 섬세한 글솜씨도 재능이다.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갖고 있는 능력이 바로 재능 아닐까.


잘 생각해 보면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예체능으로 예를 들었을 뿐, 그 외 영역에서도 재능은 드러난다. 남들보다 뛰어난 기억력,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요리 실력, 사람의 표정만 봐도 기분을 읽는 눈치 등등.


먹고사는 일을 대입해 보면 어떨까. 내가 가진 재능으로 돈까지 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잘하는 일'은 완벽히 일치하기 힘들다. 나의 짧은 경험상 재능은 재능대로, 일은 일대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글을 쓴다. 에세이 말고도 다양한 글을 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짓는 걸 좋아했고, 다 커서도 상상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넘나들곤 했다. 창작은 즐겁고 짜릿하다.


늘 무언가를 쓰고, 읽고, 상상하며 살았다. 그게 나였고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먹고사는 일이 급급해지고부터는 아무것도 창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인생은 변하지 않았다. 쓰고, 읽고, 상상하기. 그게 내 삶이었다.


꿈을 잘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구겨버리기도 하고 그 채로 빨래를 돌리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잃어버리거나 버리진 않았다. 잠시 잊어버려도 다시 기억해 냈고, 언젠가는 꺼내서 쫙쫙 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그걸 작년에 겨우 꺼냈다.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숨이 막혀서 꺼냈다. 꿈이라도 있어야 살겠다 싶어서 그곳으로 도망쳤다. 퇴사를 하고 나서는 꿈을 다림질하기 시작했다. 잘 펴서 바짝 말린 다음에 멋진 모양으로 접고 싶다.


글을 조금 썼을 때는 내가 제일가는 이야기꾼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글을 조금 더 쓰고 나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형편없는 작가가 될 것만 같다. 그리고 조금 더 쓰면 '영점'의 상태에 머문다. 어디로든 무게를 실을 수 있는 그런 상태로.


나는 아직도 내가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재능이 있다면 그게 애매한지,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애매한 재능이라면 포기해야 하고, 충분한 재능이라면 계속해야 하는 걸까?


그럴 순 없지!


누군가는 애매한 재능을 '저주받은 재능'이라고 했다. 뭐, 저주받은 김에 마녀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빗자루 타고 날아도 보고, 마법의 약도 만들어 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의 주술이 먹히는 날이 오겠지. 그러니까 일단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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