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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n 22. 2024

내가 요리하는 이유

살려고 먹는다? 아니, 맛있어서 먹는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나온 대사다. 나는 2015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한 번도 일을 그만둔 적이 없기 때문에 '밖은 지옥'이라는 부분은 아직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충분히 예상은 가능함) 하지만 앞에 것은 확실히 알겠다. 회사는 전쟁터다.


직장에서 성과를 인정받기 위한 여정은 멀고도 험하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함은 육체적 피로함에 견줄 수가 없다. 사내 정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공통 미션이고, '연봉 협상'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연봉 통보'는 사기를 뚝뚝 꺾는다.


연차가 쌓일수록 요령이 생겨서 모든 일에서 여유가 좀 생기나 싶었지만, 그러려면 연차를 한 50년 정도 쌓아야 되지 않을까 싶은 10년 차 직장인이다. 나는 여전히 매일 밤 하루 끝을 억지로 부여잡고 최대한 출근을 미루고 싶어 한다.


그렇고 그런 직장인의 삶 속에서 내가 한숨 돌리는 시간은 바로 저녁 식사 시간이다. 잦은 야근과 회식 탓에 평일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은 이틀 정도. 이 날은 내가 요리사! 너무 피곤해서 음식을 포장해 오거나 배달시켜 먹을 때도 있지만, 너무 피곤해서 일부러 요리를 하는 날도 있다.


요즘은 '유 선생'만 있으면 요리 레시피 뚝딱이다. 유 선생이 누구냐고? 유튜브! 먹고 싶은 요리가 있거나,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처리하고 싶을 땐 유튜브에 검색해 가장 간단한 레시피를 찾는다. 나는 어디 가서 요리를 잘한다고 할만한 실력이나 지식은 없지만, 손이 빠르고 적당히 비슷하게 만들 순 있다.


쨍하니 더운 날엔 메밀면을 삶고 쯔유로 국물을 낸 다음 얼음을 동동 띄워 메밀소바를 만들어 먹고, 눈이 오는 날엔 김치와 고추장으로 얼큰하게 낸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어 넣은 김치고추장수제비를 끓인다.  

닭갈비, 동치미, 연어장 3콤보는 모두 내 요리. 잡채는 엄마 협찬❤️

비가 오면 나무젓가락에 어묵을 말아 끼운 뒤 우려낸 국물에 함께 끓여내 어묵탕을 만들고,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날엔 밥 위에 버터에 구워낸 명란젓을 올린 다음 녹찻물과 쯔유를 섞은 물을 부어 먹는다.


가끔 손님이 올 때는 나름대로 고급진 요리도 도전한다. 차돌박이에 팽이버섯, 부추, 파프리카, 오이를 넣고 돌돌 만 뒤 간장 양념장을 입힌 소고기돌돌말이는 언제나 인기가 많다.


배추, 깻잎, 숙주, 소고기 등을 겹겹이 쌓아 잎사귀 모양을 만든 뒤 끓여 먹는 밀푀유나베도 정성이 한가득 들어간다. 큼지막한 새우를 넣고 만드는 크림리소토나 미나리 가득 들어간 김밥도 꼭 칭찬을 듣곤 한다.


나는 이런 요리들을 하기 위해 전쟁터를 벗어나자마자 발걸음을 재촉한다. 집에 도착하면 곧바로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재료 손질부터 한다. 그리고는 유튜브 레시피 영상을 틀고 소스를 만들고 순서를 따라간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유튜브는 언제나 '일시 정지'로 기다릴 준비가 돼 있으니..!


한바탕 요리를 하고 나면 테이블 매트를 깔고 수저도 짝을 맞춰 올려둔다. 정성껏 만든 요리를 예쁜 접시에 담는 것으로 나의 노고를 스스로 치하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볼 영상까지 틀어 놓으면 준비 완료. 그때부턴 아주 맛있고 여유롭게 잔뜩 풀어져서 식사를 즐기면 되는 거다.


내가 한 요리는 정말 맛있다. 서툴고 투박하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재료도 아주 풍성하게 들어간다. 만들자마자 먹으니 더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식사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조미료는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드는 남편의 호들갑. 이 시간이 바로 휴전이다. 피스-.

내가 정말 자주 해먹는 음식 best 3 중 원톱은 바로 '김밥'. 재료 준비에 손이 많이 가지만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맛이 재밌다. 그리고 너무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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