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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n 23. 2024

야한 농담에 대처하는 법

아직 찾는 중입니다만,

※야한 농담을 기대하고 이 글을 클릭했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야한 농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답해야 할지 여전히 난감한 어느 30대의 고민 성토글입니다. 꾸벅.


나이가 들면서 야한 농담을 성희롱으로만 받기 어려워졌다. (물론 수위에 따라서) 나는 성적인 부분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또는 별로 친분이 없는 상대와 스스럼없이 나눌 정도의 오픈 마인드가 되지 못한다. 그 내용에 따라 불쾌한 적도 많았고 기싸움으로 이어지거나 언쟁까지 가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이걸 '유교걸'이라고 정의하는 것도 별로다. 성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어떠한 화제가 재밌을 수도, 지루할 수도, 불편할 수 있는 것뿐. 성적으로 꼭 걸어 잠그고 살겠다는 게 아니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가 아니라는 것.


사회생활을 시작한 건 25살 때였다. '남초' 회사인지라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거부감이 드는 건 단연 야한 농담이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2015년엔 언어적 성희롱에 대해 그리 빡빡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이라 바짝 얼어붙어 있을 때였다. 거의 아빠 뻘이었던 어느 부장이 몸보신을 시켜주겠다며 나와 동기들을 데리고 장어탕 집에 갔다. 장어탕을 좋아하느냐는 부장의 질문에, 오늘이 처음 먹어보는 거라고 답하자 그가 말했다.


"왜? 남자친구가 힘들어하나?"


여지없는 성희롱이었지만 그 당시엔 이 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해서 "네?"라고 반문을 했었다. 어리둥절한 내 표정에 부장은 얼른 화제를 돌렸고 동기 중 한 명이 내 무릎을 쿡 찔렀다. 부장의 성희롱은 이해 못 했지만 동기의 제스처가 무슨 뜻인지는 바로 알아챘다. '그냥 넘어가'


나중에 그 뜻을 알게 되고 나는 상당히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놀라웠다. 사회에서 만나는 '남자 어른'들의 다수가 그런 농담을 스스럼없이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뒤로 나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야한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이 나오면 대꾸하지 않거나 정색을 했다.


그럼 주위에서 내 눈치를 보기도 했고 아랑곳하지 않기도 했고 누군가가 말리기도 했다.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 선에서 나름의 내색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금방 끝내는 편이었다. 원래 대화란 게 그렇다. 받아주는 이가 없으면 핑퐁이 금방 끝났다.


공을 받는 이가 없어도 끊임없이 서브를 넣는 사람도 있고, 받아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나서 화풀이 삼아 여러 개의 공을 와다다다 날리는 사람도 있지만, 곧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곤 했으니… 나는 대부분 그런 태도를 취함으로써 대화를 끝내곤 했다.


다행히도 시간이 좀 지나면서는 상하 관계에서의 언행을 주의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각종 '미투'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적 공분을 사면서 성적인 발언이나 농담에 대한 자체 검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굿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비교적 편한 자리에서도 이런 농담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가령 연차 차이가 적은 선후배 사이라든가. 또래가 비슷한 동료들이라든가. 특히 술자리에서. 내게 불편한 얘기가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얘기일 때는 정말 난감했다.


한 번은 한 두 살 정도 차이 나는 언니, 오빠들과 저녁을 함께 한 적 있다. 유난히 안 따지는 병뚜껑이 있었는데, 그걸 한 오빠가 손쉽게 따서 모두가 '오오오' 하고 감탄을 했다. 그러자 그걸 본 한 언니가,


"올. 보기보다 힘이 센데?
"난 힘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하지."
"아 뭐야 진짜, 확인해 볼 수도 없고."


이런 식. 둘이 썸을 타는 사이일 수도 있고 서로 농담처럼 티키타카를 하고 있기에 나도 웃어넘겼다. 그런데 수위가 슬슬 강해지기 시작했다. 좀 더 적나라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불쾌해하는 내 눈치를 보면서도 '조선시대 선비냐'며 놀리는 게 약이 올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속 마음을 입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말았다.


"아니 대화 내용이 좀 더러워서 같이 못 놀겠네."


그 뒤로는 뭐.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타박이 오갔고 서로 눈치껏 화제를 돌려서 무마했다. 그리곤 다시는 함께 보지 않는다. 하지만 후회도 됐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 후로도 이런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자 '대처하는 법'이 필요해졌다.


30대가 넘어가면서 야한 농담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아니 밥 먹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고 크게 집중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 내가 어리다고 눈치를 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내 반응에 관심도 없었다.


나도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나 개그맨 신동엽 씨의 성적인 농담은 재밌게 보곤 했다. 중요한 건 선을 지키는 것이다. 은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선을 밟은 건데 밟기만 했을 뿐 넘진 않는 것. 정지선이 있다. 앞 범퍼는 나와도 되지만 바퀴가 나와선 안 된다. 그런 느낌이다.


성은 폐쇄적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좀 더 양지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자연스럽고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그런 이야기를 와 나누고 싶지 않을 때가 난감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나는 여전히 야한 농담에 대처하는 법을 찾는 중이다.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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