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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n 16. 2024

서른셋인데요, 서른다섯입니다

그래서 친구 할 겨? 말겨?

나는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고민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바로 나이를 말할 때! 누군가 내게 나이를 물어보면 한국 나이와 만 나이가 어떻게 다른 지부터 설명을 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영어 실력이 짧아도 한참 짧은 나는 그냥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제일 어린 나이로 답했다. 어리면 좋지 뭐.


나는 '빠른 년생'이다. 1월에 태어나 초등학교를 7세(만 6세)에 입학했다.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린 데다 키도 작다 보니 별명은 항상 '꼬맹이' 계열이었다. 땅꼬마, 땅콩, 어린이 등등의―귀엽지만 그때는 자존심 상하는 별명들. 친구들은 시비를 걸 때면 항상,


"야 땅꼬마! 오빠라고 불러봐"


라고 우쭐댔고, 그럼 나는 어김없이 '너 죽었어!'라면서 달려드는 거다. 그렇게 파이팅 넘치는 땅꼬마 시절을 거치고 나서 머리가 좀 크니 그다지 키가 이슈가 되지 않았다. 여중, 여고를 다니며 늘 반에서 작은 걸로는 톱 5에 들었지만 그땐 이미 키나 빠른 년생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학생 때도 '학번'에 맞춰 지냈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종종 귀찮은 상황이 벌어졌다. 생각보다 '몇 살이냐?'는 질문 보다 '몇 년생이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빠른 91이요' 라며 마치 '호(號)'처럼 출생연도 앞에 '빠른'을 붙였다. (빠른 00 이올시다.)


사회에서 빠른 년생으로 살다 보면 이런저런 질타를 받기 쉽다. 나는 91년생 1월생으로서 91년생이라고 말해도, 90년생이라고 말해도 종종 한 소리를 들었다.


-에이, 사회에서 빠른이 어딨어. 그냥 91년생이지. 언니 대접받고 싶어서 그래?
-09학번? 그럼 90년생이지. 어려 보이려고 수 쓰네!


아주 애매하기가 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빠른 년생은 처음부터 줏대 있게 자기 나이를 자기가 정해야 한다. 나는 친구들이 90년생이기 때문에 나도 90년생 나이를 쓰면서 정말 마음에 드는 91년생(굉장히 예외인 경우) 하고만 친구를 했다. 아무래도 언니, 동생으로 나누는 것보다 친구일 때가 더 편하니까!


그러다 보니 웬만큼 정리가 됐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나이보다 연차로 따지게 됐고, 30대가 넘어가니 한 두 살 차이에 크게 민감하지도 않다 보니 난감한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나이 이슈가 생긴 건 '윤석열 나이'가 도입되면 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6월부터 세계적인 기준인 '만 나이'를 공식 도입했다. 사실 기존의 한국식 나이가 좀 불편하긴 했다. 태어나자마자 '1살'이 돼 버리니 계산 방법이 애매했다.


가령 2024년 새해가 밝았다고 치자. 1995년 2월 1일 빠른 년생(13학번)이라면 만 나이로는 28세, 연 나이로는 29세, 한국 나이로는 30세다.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나이가 3개이자, 20 대일수도 30 대일수도 있는 셈이다.


물론 빠른 년생이기 때문에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친구들이 30살이 됐을 때도 나는 여전히 20대였고, 만 나이를 쓰는 병원에 가면 28세였다. 나이를 번 느낌이기도 했다. 가끔 한 해의 계획을 망쳤거나 되돌리고 싶을 때면 '난 남들보다 1년 더 있으니까' 라며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만 나이까지 도입되고 나니 더 복잡해졌다. 만 나이를 써 버리면 두 살이나 어려지니까. 그래서 이젠 마치 상품의 제조연도를 말하듯 '몇 살'인지를 물어도 출생 연도를 말하곤 하는데… 이럴 때면 또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그게 몇 살인데?"


아이고 정말. 이 나이에 민감한 사회 같으니라고. 그래서 나는 한동안 "30대 중반이요!"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얼마 전부터는 그냥 "서른다섯이요"라고 답하기 시작했다.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인사치레도 나쁘지 않고, 그래서 구력이 있구나 하며 칭찬하는 말을 듣는 것도 좋다.


한 살이라도 아끼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이젠 그냥 이만큼 자란 내가 좋다. 그래서 확실히 정했다. 나는, 서른다섯이다. 30대의 한가운데 서서 외친다. 인생은 서른다섯부터!

그래요 나는 서른 다섯이에요~ (응칠 시원이 버전 크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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