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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n 15. 2024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하)

멀고도 험한 파라다이스

'첫인상은 3초 안에 결정된다.'


나는 이 말이 이성적 끌림을 뜻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생활 10년 차, 이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어디서나 통한다고 생각한다. '3초'라는 극단적인 시간만 뺀다면. 물론 알면 알수록 진국인 사람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스며드는 관계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대부분 첫인상은 끝인상과 같았다.

 

나의 브런치를 보고 출판을 제안했던 출판사 담당자가 그랬다. 첫 미팅 날이었다. 그는 본인 회사 근처 카페에서의 만남을 제안했다. 그는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앉은 채로 대충 아는 척만 하고는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명함 교환도, 음료 주문의 과정도 없었다.


정말 당황스러웠던 순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땐 서로 일어나서 명함 교환을 하며 자신을 소개하고, 내가 먼저 미팅을 제안했을 땐 상대방에게 음료 정도는 제공하는 게 당연했기에! 그는 미리 주문한 자신의 음료를 마시고 있었고, 내게 음료를 주문하고 오라고 했다.


내가 결제를 하고 와서 돌아와 앉자마자 그는 바로 업무 이야기를 시작했다. 혼란스러웠지만 워낙 작고 영세한 출판사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합리화했다. 더군다나 출판 업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찝찝한 출발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때는 몰랐기에!


담당자와 막상 대화를 해보니 기획 의도나 출판 방향, 마감 기한 등이 내가 원하는 바와 잘 맞았다. 계약금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첫 출판이기에 돈에 대한 욕심은 내려놨다. 애초에 '남의집살이'를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쓴 책이었기에 그저 빨리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정말 성실히 임했고 기한 내 완전 원고를 보냈다. 그러나 담당자는 퇴사 당일 이메일로 퇴사 소식을 알리며 앞으로 연락할 새로운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를 써서 보냈다. 이때부터 나는 확실히 감이 왔다.


똥 밟았다.


나는 새로운 담당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고, 결국 출판사 대표와 연락을 하게 됐다. 대표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회사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내 책의 출간이 오래전 취소된 상태였다. 하지만 담당자가 작가(나)에게 알리지 않았고, 회사에선 당연히 작가와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담당자가 퇴사를 통보하듯 해버렸기에 인수인계도 전혀 안 된 상태라고도 덧붙였다.

혼란하다 혼란해..

나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말로 화가 났다. 대표의 말대로라면 내가 원고 마감을 몇 번이나 하는 사이에도 이미 내 책의 출간은 취소돼 있었다. 왜 담당자는 그 사실을 내게 알리지 않을 걸까. 나는 그가 차기 담당자와 연결도 해주지 않고, 그저 퇴사한다는 메일만 보내왔을 때도 답메일로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며 행운을 빌어줬었다.


아이고, 이런 호구.


그 뒤로는 마음고생의 연속이었다. 나는 내가 허비한 시간과 창작물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변호사 상담을 받았다. 결국 통상 신인 작가 계약금인 100만 원을 손해배상금으로 책정해 요구했다. 대표는 모든 책임을 이미 퇴사한 담당자의 탓으로 돌리더니, 사정이 어렵다며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대표는 내가 소송을 걸겠다고 하자 2주 뒤에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잠수를 탔다. 결국 지급명령신청에 들어갔다. 그 과정이 정말 서글펐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싸우게 되면서 쓴 에세이인데, 이젠 에세이를 쓰다가 뒤통수를 맞고 출판사와 싸우는구나. 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러지?!


스스로를 갉아먹는 시간이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소송에 따로 공부하고 실행하기까지 너무나도 피로하고 고생스러웠다. 대표는 지급명령신청이 확정되고 출석 기한이 다가와서야 문자로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내용을 구구절절 써서 보냈다. 도무지 '사과'로 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리곤 내 계좌에 임의로 지연 이자 등을 계산해 돈을 넣었다. 금액이 틀렸지만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이 사람은 어차피 내게 미안하지 않을 테고, 작금의 사태는 이러나저러나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마음의 상처가 크게 났다. 주위에선 완성한 원고가 아깝다며 다른 출판사를 통해 도전해 보라고 했지만, 한동안 출판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원고는 꽁꽁 숨겨놨다. 새로운 에세이와 소설을 쓰며 공모전에 도전하고, 그러다가 또 지쳐서 브런치에 마음을 터놓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나는 여전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날이 올까? 그건 마치 파라다이스. 내가 파라다이스에 도달할 날이 올 지 모르겠다. 그래도 잘 준비하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또 기회가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안 좋은 기억은 잊고 노력하고 좋아하는 걸 잃지 않으려 애를 써본다. 언젠가 만날 나의 파라다이스를 위하여!

지급명령신청은 셀프로도 가능. 비교적 손 쉽게 빠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오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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