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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l 01. 2024

아빠 탐구생활(하)

아부지..자랑은 조금만 해주세요

"귀염둥이! 밥 먹었어?"


내 나이 30대, 아직도 아빠에겐 귀염둥이로 불린다. 큭. 고등학생 때도 귀염둥이로 불리는 게 부끄러워서 '나 이제 너무 컸어!'라고 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애칭이 이렇게 오래 불릴지는 몰랐다. 어쨌든 아빠에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귀여운 막내딸이라는 것.


아빠는 내가 어떤 상황이어도 나를 응원해 주셨다. 공부를 못할 때도, 살이 찌고 못나졌을 때도, 자꾸만 무언가를 실패할 때도 '우리 딸이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내가 한없이 못났을 때 그런 말을 들으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빠의 말과 지금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대비됐기 때문에.


아빠는 남들은 보지 못한 '틈'을 보셨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는데, 대신 시험을 볼 때면 등교를 제일 먼저 했다. 그냥 의지를 다지기 위한 일종의 의식 같은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공부는 안 해 놓고 학교만 일찍 가면 뭐 하나. 하지만 아빠는 성적과 별개로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한 나의 자세를 칭찬해 주셨다.


나는 체중이 워낙 고무줄이라 한 번 살이 찌면 무섭게 찐다. 누구나 그렇듯 살이 찌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해지기 마련. 그럴 때면 주위 사람에게 '나 살쪘어?'라는 불편한 질문을 하며 들들 볶곤 한다. 거짓말을 못하는 아빠는 그 질문에 'no'를 외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답하신다.


"찌긴 쪘는데, 살이 쪄도 너처럼 이쁜 사람은 못 봤어. 진짜로."


어쩜. 아빠는 이렇게 뭐라도 칭찬할 거리를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정말로 칭찬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냐고? 난리가 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요즘 나의 고민거리다.


나는 좋은 일이 생기면 가족에게 가장 먼저 자랑을 한다. 언니에게 카톡으로 알리고, 엄마에겐 전화를 해서 몇 시간이고 대화를 한다. 엄마한테 말하면 자동으로 아빠가 알게 되니까 아빠한테는 따로 연락을 하지 않는데 (아빠는 평소에 바쁘시니까!), 소식을 가장 늦게 알게 되는 아빠가 가장 빨리 소문을 내신다. 하하..


그 속도가 정말 놀라울 정도다. 나는 이번 주 월요일에 어느 상 하나를 받았다. 나에겐 의미 있는 상이었지만, 남들은 모를 상이었기 때문에 가족과 친한 지인한테만 조용히 알렸다. 그런데 웬걸! 수요일이 되자 친척들에게 축하한다며 줄줄이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아빠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연신 고맙다고 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졌다. 친척 동생은 내게 꽃다발을 보냈고 친척 언니는 퇴근하자마자 내게 전화를 걸어 잔뜩 축하해 주었다. 누가 보면 대통령상 정도는 받은 줄 알겠다 싶어 민망해진 나는 아빠에게 따지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아빠, 친척들한테 뭐라고 한 거야? 대단한 상 받은 것도 아닌데 너무 부끄러워!
-그게 왜 대단한 상이 아니야? 내가 찾아봤는데 상당히 좋은 상이던데.
-아니.. 주위에 다 알릴 정도는 아니라구요 흑흑.
-왜? 좋은 일이 있으면 알리고 서로 축하하고 그래야지.


나는 아빠를 말리려다가 아빠한테 살짝 혼이 난 느낌으로 전화를 끊어야 했다. 아빠는 너무나도 확고했다. 아빠는 주위에서 좋은 일이 생긴 사람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건네는 사람이다. 그러니 딸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도 주위에서 축하를 받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난 정말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빠의 자랑이라는 게 기뻤다. 아빠는 분명 내가 상을 받지 않아도, 눈에 띄는 어떤 성과가 없어도, 그저 내 밥벌이를 하면서 남편과 즐겁게 사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였겠지만.


아빠는 정말 극 'E'(외향적) 성향이다. 내 결혼식날도 거의 '파티의 왕' 개츠비나 다름없었다. 막내딸의 결혼식이라 아쉬워할 줄 알았는데, 그건 경기도 오산. 아빠는 결혼식에 온 하객들을 맞이하면서 마치 파티의 주인공이 된 듯 즐거워하셨다. 정말 이렇게 외향적일 수가 없다.


그러니 아빠가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좋은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내가 감초 역할을 해드릴 수밖에! 더 신나게 자랑하고, 칭찬하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도록 좋은 소식을 많이 가져다 드려야지. 오늘도 아빠 덕분에 열심히 살기 위한 동력을 얻는다. 아빠 땡큐! 근데 자랑은 조금만 줄여주시길..ㅜㅜ

아빠는 매년 6월이면 텃밭에 심어 놓은 앵두를 잔뜩 따서 내가 오길 기다리신다. 내가 앵두 킬러기 때문에. 앵두를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 난다. 경험해봐서 안 지식이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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