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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l 06. 2024

진상과 불친절 그 사이

가시 돋친 너와 나, 우리

닭이 먼저일까? 알이 먼저일까? 진상이 먼저일까? 불친절이 먼저일까?


지난주, 은행 대출 업무를 보기 위해 하루 휴가를 냈다. 아침 일찍부터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은행으로 향했다. 나는 금융 업무에 있어 은행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같은 업무도 은행원에 따라 다르게 처리되는 경험을 해봤기에..!


나는 사람이 하는 업무는 사람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매뉴얼과 원칙이 있다고 해도 결국에 그걸 수행하는 건 사람이니까. 그래서 대면 업무를 볼 때면 속으로 항상 기도한다. (무교지만..) '제발 친절한 사람이 걸리게 해 주세요!'


내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연차나 나이와 상관없이 나는 누군가에게 '매너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굳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고, 나 역시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다. 그리고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기를 응당 바란다.


하지만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기분이 태도가 되거나, 하나를 주면 열을 달라고 당당히 손 벌리는 사람도 많이 겪는다. 그래서 난 이걸 '뽑기 운'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운이 좋았다'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 뽑았네' 하고 털어버리려 한다.


아쉽게도 이날 만난 은행원은 후자였다.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아 계속 되물어야 했다. 추가로 필요한 서류를 가져오라고 안내해 주길래, 바로 출력해 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은 아주 작게 '11시 30분부터 점심시간이긴 한데'라고 말했다.


11시 30분을 피해서 오라는 뜻인 것 같긴 한데…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을 함께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명확히 말해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되묻는데 지쳐서 더 묻지 않았다. 일단 추가 서류를 떼러 인근의 주민센터로 향했다. 주민센터는 아주 한산하고 조용했다.


바로 내 차례가 왔고 나는 내가 뽑은 번호표의 번호를 가리키는 창구 앞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돌아오는 인사는 없었다. 창구 공무원은 무언가 업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내가 필요한 서류를 말하려고 했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상대편이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과 민원인 사이엔 투명 아크릴판이 세워져 있는데, 그 판에 각종 안내 서류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아 직원의 자리 대부분을 가려놓았다.


결국 난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들 사이로 요리조리 시선을 옮겨가며 직원에게 말을 건네야 했다. 서로 보이지 않게 돼 있다면 마이크라도 썼으면 좋겠는데, 직원의 말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았다. 내가 몇 번을 되물어도 그분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대꾸할 뿐이었다.


'와, 되게 기형적이다'


나는 이 상황이 이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대면 업무를 처리하면서 사실상 대면이 어렵게 해 놓은 환경이나, 아주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힘겹게 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불편하고 아이러니했다. 건조하고 지쳐 보이는 직원을 보면서 '혹시 진상 민원인이 많은가?'라는 생각에 빠졌다.


진상 민원인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방어를 해놓은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부리거나, 위협적으로 호통을 친다면 지긋지긋할 수도 있겠다. 차라리 서로 안 보고 업무만 딱딱하면 되니까. 이 생각까지 도달하자 의아했다.


서로 안 보고 업무만 처리하면 되는 일이라면 굳이 사람이 앉아 있을 필요가 없고, '업무만 딱딱' 처리하기 위해선 마이크라도 써서 의사소통은 원활하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총 3개의 서류를 요청했는데 직원분은 서류 한 통에 얼마인지도 안내해주지 않은 채 내 카드를 가져가 결제했다.


나는 다시 은행으로 돌아갔다. 아까 은행원이 말한 점심시간이었다. 그분이 공석이었기에 나는 그 옆자리에 앉은 다른 은행원에게 업무를 봤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떤 부분이 필요하실까요?"


할렐루야. 이날 내 인사를 처음으로 받아준 그분은 친절히 맞아주고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물어봐 주었다. 서로 눈을 맞추고 확실히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되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친절.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편해졌고 나 또한 더 친절히 대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직원분은 업무 처리가 조금 길어지자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얼마나 반가운지. 스몰토크가 이어지면서 나중엔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즐거운 분위기에서 업무를 마쳤다. 나는 여러 번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은행 밖으로 나오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대면 업무를 보는 직업이란 어려운 일이다. 늘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언제 내게 화살을 겨눌지 모르는 불안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몸에 가시를 세우는 수밖에.


비상식적이고 위험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래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업종의 종사자들은 감정적으로도 많이 지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경험 때문에 선량하고 악의 없는 사람들조차 불편을 겪는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적어도 대화다운 대화는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사를 주고받고 스몰토크를 하는 식의 대화는 '옵션'이지만, 서로 마주해서 정확히 묻고 답하고 일을 처리하는 건 '필수' 아닌가!


물론 이건 나의 아주 단편적인 경험을 쓴 것일 뿐, 특정 직업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하든 간에 서로를 좀 더 배려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 아주 조금이라도, 그리고 나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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