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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l 07. 2024

이렇게 된 이상 빈티지로 간다!

를 외친 이유

나는 무던한 사람이 좋다. 예민하게 이것저것 따져보는 사람도 그 꼼꼼함이 멋있지만, 매사에 널널하게 털털하게 휙휙 페이지를 넘기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인다. 아마 내게 부족한 모습이라 그럴지도.


무던하다; 정도가 어지간하다. 성질이 너그럽고 수더분하다.


내게도 무던한 부분이 있다. 무릇 성격이라는 것은 고유하지 않고 상황 등에 따라 변하기 마련. 나는 어느 부분에선 굉장히 예민하고 겁도 많고 쉽게 불안해한다. 가령 일할 때 그렇다. 혹시라도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까 봐 전전긍긍할 때가 많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개복치다. 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불호'가 거의 없다. 좋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관심이다. 좋아함에 있어서의 기준이 높고, 먼저 다가가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반응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 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부분이 무던하냐고? 고의성이 없는 행동이나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 상황이 어려운 사람에 있어서 무던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물건에 대한 욕심도 크지 않아서 조금 손해 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런 경우엔 주위에서 놀랄 정도로 무던한 편!


올 초 포장 이사를 했을 때였다. 한국인이 두 분 정도, 나머지는 외국인 노동자였는데 우리말이 어눌해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그분들은 신발에 덧신도 씌우지 않은 채 새 집을 돌아다녔고, 주방 짐을 옮기고 정리해 주는 분은 내내 툴툴거렸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옮기며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몇 시간씩 보다 보면 그저 응원하는 마음만 생긴다. 안전하게 별 탈 없이 잘 끝나기를 바라며 간식이나 한아름 준비했다. 그렇게 한참 뒤 이사가 끝났고, 남편과 나는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


방을 정리하던 남편이 깜짝 놀라 나를 불렀다. 피아노 왼쪽 면이 부서져 있었다. 이 정도 부서졌으면 분명 이삿짐 나르는 분들은 알았을 텐데, 말없이 떠난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한 추억이 서린 피아노였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외쳤다.


"이렇게 된 이상 빈티지로 간다!"


나의 말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마무리 정리를 한 뒤 아주 푹 잤다. 무던하게 산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긍정적으로 털어버리고 잘 먹고 잘 자면 된다. 그리고 함께 웃어 주는 이가 있다면 완벽. 뜨거워지는 여름, 한껏 예민 지수가 올라가는 요즘, 나는 수박 한 입 베어 물며 조금 더 무던해지자며 열을 식힌다.


나의 오랜 친구, 아프게 해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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