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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n 29. 2024

아빠 탐구생활(상)

나의 디카프리오, 나의 아빠!

나는 살면서 우리 아빠처럼 순수한 사람을 본 적 없다. 단 한 번도. 아빠는 늘 긍정적이고 계산하지 않으며 인류애가 넘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도와야 하고, 불의를 보면 짚고 넘어가는 편이라 우리 가족들은 항상 아빠에게 '남 일에 참견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하곤 했다.


다행히도 가족들의 단속에 아빠의 오지랖은 자라다 말았다. 한때는 아빠의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 성격이 오히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을 서운하게 하기도 했다.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일이다.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았는데, 내가 살고 있던 기숙사는 학기가 끝나면 무조건 방 배정을 다시 해서 이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장염을 너무 심하게 앓아 고열과 몸살로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방을 빼고 본가에 돌아간 상황이기도 했고, 나는 그때 누군가에게 무언가 부탁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결국 내 인생의 , 아빠에게 SOS를 쳤다.


아빠는 내 연락을 받자마자 회사 일을 제쳐두고 단숨에 내가 있는 곳으로 오셨다. 그리고 오자마자 내가 싸놓은 짐들을 옮겨주셨는데… 문제는 그날따라 혼자 짐을 옮기는 여학생이 많았고, 아빠는 그 층에 있는 모든 여학생의 짐을 함께 옮겨주셨다. 또르르.


나는 기력이 없어 얼른 짐만 옮겨놓고 아빠와 함께 본가로 가서 쉬고 싶었지만 웬걸. 아빠가 너무 바빴다. 아빠는 '너 같은 애들이 낑낑대면서 혼자 짐을 나르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안 도와주냐'면서 거의 이삿짐센터 뺨치게 이사를 도왔다. (하필 또 손도 발도 빠른 스타일..)


그때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밤새 끙끙 앓았던 딸은 옆에 두고 다른 집 딸의 짐을 날라주고 있다니! 무슨 아빠가 저래? 나는 아주 섭섭했지만, 어느새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며 아빠를 돕고 있었다. 이래야 내 아빠였고, 나는 그런 아빠를 아주 좋아하니까.  


아빠는 항상 멋졌다. 아주 잘생겼고 (나의 디카프리오)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가뿐히 턱걸이를 할 정도로 운동도 열심히 했다. 늘 에너지가 넘치고 틈만 나면 독서를 한다.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고 불행한 이야기나 험담은 입에도 안 올린다.


이쯤 되니 국민 MC 유재석이 생각난다. 유재석 씨는 늘 배려심 넘치는 행동으로 모두의 호감을 산다. '바른생활' 이미지도 그가 호감을 사는데 한몫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종종 '저렇게 완벽하게 살려면 힘들지 않을까?'라는 시선도 보낸다. 그만큼 본인을 절제해야 하니까.


나는 '우리 집 유재석'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힘들지 않을까. 언제나 새벽같이 출근하고, 좋은 생각과 좋은 말만 하고, 손해 보는 일도 괘념치 않고 나서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냥 모습 그대로가 아빠라는 것을.


그래서 난 어릴 때나 한참 어른이 된 지금이나 '아빠 바라기'다. 특히 어른이 되고부터는 아빠가 더 궁금해진다. 난 고작 사회생활 10년 차에도 세상만사 다 보고 겪은 것처럼 굴면서 이기주의에 빠지곤 한다.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야', '마음을 다 줘선 안 돼. 그랬다간 상처만 받아',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니까', '그냥 모른 척 하자', '이걸 왜 내가 해야 돼?', '너무 잘해주면 무시당하겠지'….


사람을 좋아하던 나도 이렇게 방어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버렸는데, 아빠는 어쩌면 30년 넘게 일하면서 늘 똑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걸까. 사회생활을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악의'가 생기기 마련인데, 아빠는 어쩜 그렇게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체에 걸러낸 것처럼 '선의'만 갖고 있는 걸까.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기 위해 오늘도 나는 반성하고 다짐한다. 착한 어른이 되자고. 그리고 늘 긍정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긍정맨이 되자고! 나… 잘할 수 있을까?

아빠랑 같이 여행가지 못해서 서운했던 초딩의 편지. 아빠가 그리울 것 같아서 애틋한 편지도 남기고 도장도 남기지만, 그렇다고 아끼는 도장을 줄 순 없었던 그때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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