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반년 정도의 짧은 투병기간 동안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진 엄마를 황망하게 떠나보낸 후 친정에서의 명절은 썰렁해져서 모여서 음식도 만들지 않게 되었다. 엄마가 살아 계신 동안은 내가 외국생활한 3년을 빼고는 매년 추석마다 집에서 함께 모여 송편을 만들어 먹었다.
몇 주전 네이버가 가끔 보내 주는 'n 년 전 오늘'이 5년 전 엄마와 세 딸과 며느리 손주들까지 모여 만들었던 송편 사진을 보내주었다.
기억이 있는 한 매년 엄마와 송편을 만들었던 엄마의 딸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만든 경력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 솜씨를 닮아서인지 다들 예쁘게 송편을 만들었다. 6명의 손자와 4명의 손녀를 둔 엄마의 손주들은 송편 만들기를 재밌어하기는 하지만 조금만 힘들면 만들다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
음식솜씨도 좋으시고 손도 크시고 샘도 많으셔서 남들 하는 것보다 뭐든 잘하고 싶어 하셨던 엄마는 추석 준비를 한참 전부터 시작하셨다. 질 좋은 쑥을 미리 사고 단호박에 햅쌀, 소로 넣을 참깨, 팥, 햇밤에 바닥에 깔고 솔잎까지 준비하셨다. 전통방식 그대로 엿기름으로 만든 식혜는 여분으로 집에 있는 대형밥통에서 몇 번이나 만드셔서 자식들이 집에 오기 전 냉장고에 차게 보관해 두셨다.
라이언 송편은 내 딸 선이가 카카오 캐릭터처럼 만들어 달라고 할머니에게 얘기하면서 시작되었다.
"할머니, 다 똑같은 모양 말고 이렇게 만들어 주실 수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그까이 거 다 할 수 있다"
단호박 반죽으로 얼굴을 만들고 쑥반죽으로 눈, 눈썹, 코를 만든 뒤 흰 반죽으로 입?을 만드니 그럴듯한 라이언 송편이 완성되었다. 예쁘게 만든 송편이 잘 쪄져서 나오자 겨우 대여섯 개 만들고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던 조카들까지 다 몰려와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느라 난리가 났었다.
모이면 왁자지껄 까불고 놀던 초등시절이 지나고 명절이나 어버이날 모여도 식사시간 빼고는 집 여기저기 구석에 박혀 휴대폰만 보고 있던 우리 엄마의 사춘기 손주들이 제일 활기를 찾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의 금손을 칭송하는 손주들의 칭찬과 탄성에 뜨거운 송편을 쪄내느라 땀을 흘리시면서도 엄청 뿌듯해하셨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는 엄마도 안 계시고 다 커버린 조카들과 한꺼번에 모이기는 갈수록 쉽지 않을 것 같다.
명절에 일거리는 줄었지만 고단하고 시끌벅적했던 명절이 올해는 유독 더 그립다.
손 큰 엄마가 준비한 어마어마한 양의 재료에 어깨가 빠질 것 같을 때까지 만들 때는 그냥 이런 거 사 먹어도 될 걸 하고 속으로 투덜거렸던 적도 있었지만.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신 아빠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실려가신 것만 일 년 반 사이 여섯 번.
나이는 들었어도 아직 단단하지 못한 나는 엄마의 투병, 돌아가시기 한 두 달 전쯤부터 본 엄마의 고통스러워하시던 모습등 여러 가지로 버거워 엄마를 많이 그리워하고 떠올리며 살지 못했다.
네이버가 보내 준 추억의 사진들을 보며 음식솜씨 좋고 부지런하며 열정적이었던 엄마를 추억한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든 음식들을 이웃들에게 돌리며 칭찬받고 뿌듯했던 생기 넘치던 나도 기억이 난다.
엄마랑 같이 떡방앗간에 가서 쌀가루를 만들어 오던 일,
송편소로 쓰인 깨소의 고소한 냄새,
찜솥에서 피어나던 뭉게구름 같은 하얀 김,
다 쪄진 송편에 기름을 바르며 뜨거웠던 손의 느낌까지 모두 생생하다.
작년부터 떡집에서 산 송편을 추석 때 먹게 되었는데 투박하고 두꺼운 송편이 썩 입에 맞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도 모여서 만들었던 할머니표 송편이 그립다고 한 입에 쏙 들어오는 크기며 그 보드라운 맛이 생각난다고 한다.
추석이 오면, 아니 떡집에 진열된 송편만 봐도 엄마의 송편과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던 건강한 엄마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