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공부계획이든 어떤 활동이든 아이들과 상의해서 결정했던 내가 강력하게 내 의견을 주장해서 아이들이 참여하도록 이끌었던 것은 운동이었다.
세 아이 다 운동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운동선수 스타일도 아니었기에 공부와 운동 중에 양자택일하라고 하면 우리 아이들은 공부를 더 하는 쪽을 선택하는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준이는 농구를 시작할 때 많이 고민하는 눈치였다.
우리 가족이 3년 동안 살았던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 힐은 웬만한 크기의 집에는 다 집에 농구 골대가 있을 정도로 농구에 빠져있는 도시다. 미국 최대 스포츠 라이벌전이 뉴욕 양키즈와 보스턴 레드삭스 간의 메이저리그 경기라면 두 번째는 UNC와 Duke 간의 NCAA(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대학농구 전이다.
UNC(University of North Carolina, Chapel Hill)는 남부라는 지리적인 위치와 한국인 학생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학교순위에 비해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학교이다. 우리가 잘 아는 농구천재 마이클 조던의 모교라고 얘기하면 그때야 그곳의 농구열기를 이해한다. UNC는 여자축구로도 유명해서 채플 힐에서는 초등생들의 축구리그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채플 힐 지역은 다양한 단체에서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자원봉사자가 주체가 되어서 이끌고 있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간 해 겨울에 준이가 참여했던 농구리그는 park & recreation center에서 참가자를 모집했다. 농구리그는 신청한 또래들로 임의로 팀을 짜서 몇 번의 연습 후 리그전을 통해 경기한 후 나중에 순위를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농구를 배우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다른 애들에 비해 잘할 자신이 전혀 없어서 준이는 많이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좋은 것을 경험하자는 소신을 갖고 있기에 농구로 유명한 도시에서 현지 아이들과 같이 농구를 해 보는 것은 아주 멋진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평생 운동을 하는 것이 좋고 특히 청소년기에는 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강력하게 준이를 설득했고 결국 농구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사실 농구리그에 준이를 참여시키는 것은 재현이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여러 실내 체육관에서 열리는 연습과 경기의 장소를 확인하고 낯선 미국도로를 운전해 가는 것은 무섭기도 했다. 거기다 아직 집에 혼자 있을 수 없는 쌍둥이를 같이 태우고 가서 경기장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일도 내 몫이었다.
첫 번 째 연습이 있던 날 초행길을 천천히 운전해서 농구 경기장에 가 보니 백인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까지 온갖 인종이 다 섞여 있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 근육이 보이는 소년들 사이에 마른 몸의 동양 남자아이가 그 속에 끼어 있으니 안쓰러워 보였다.
준이가 속한 팀에서는 아주 탄탄한 체격의 머리가 곱슬곱슬한 백인 소년이 독보적으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키 크고 날렵한 체격의 흑인 소년도 날쌔게 코트를 누볐다.
백인 소년은 늘 자신감 있는 웃는 얼굴로 경기에 임하며 다른 소년들을 주도해서 경기를 이끌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마르고 빠르지 않은 준이는 다른 애들에 비해서 기량이 처지는 것이 눈에 확연하게 보였다.
다른 사람보다 더 못한다는 걸 느낀다는 건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이겠지만 유독 지기 싫어하는 성품의 준이에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연습하고 온 첫날밤 저녁을 대충 먹은 준이는 자신은 후보선수가 될 처지임을 바로 직감했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벤치워머의 운명을 벗어나고자 준이는 집에서 혼자 농구공으로 드리블연습을 하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농구 잘하는 법을 검색해 열심히 읽어보았다. 체력을 키운다고 팔 굽혀 펴기를 매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잘하는 아이들은 걸음마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어린 나이부터 거의 매일 농구에 빠져 살았는데 조금 연습하고 방법을 글로 읽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팀 내 위치가 달라지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구경기가 있는 날마다 준이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한 일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첫날부터 자신이 못 한다는 걸 알고도 계속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눈에 띄게 처지는 실력이었지만 자원봉사자 젊은 코치는 신기하게도 매 경기 재현이가 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경기가 접전일 때는 뛰라고 해도 부담스러웠지만, 같이 뛰는 다른 아이들, 라이드 와서 구경하고 있는 학부모 중 겉으로 싫은 내색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리그가 막바지로 가고 여러 경기를 소화했는데도 준이는 단 한 골도 득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를 치르러 가는 차 안에서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했다. 서로 논의해서 결정한 것은 결과와 관계없이 끝까지 한다는 원칙을 지금까지 지켜왔었다. 하지만 만일 한 골도 득점하지 못하고 팀에서 제일 못하는 선수였다는 기억만 갖고 이 리그를 끝낸다면 농구가 준이에게 큰 상처로 남을까 봐 두려웠다. 나의 원칙이 너무 융통성이 없어서 준이가 평생 농구에 트라우마를 가지면 어쩌나 스스로를 자책했다.
마지막 경기, 오늘도 코치는 준이에게 기회를 주었다. 원래 몸싸움을 싫어하는 데도 다른 아이들보다 여린 몸으로 나름으로 열심히 코트를 누비는 모습에 코 끝이 찡해왔다.
‘제발 한 골이라도 득점하게 해 주세요’
마음속으로 기도를 계속했다. 팀의 에이스인 크리스가 준이에게 공을 패스했다. 준이는 왼쪽 옆에서 가볍게 점프해 슛했고 놀랍게도 마침내 그 공은 네트를 통과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일어난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라이드 하며 같이 경기를 봐 왔던 우리 팀의 다른 학부모들도 모두 일어나 Jun을 연호하고 있었다.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른 부모들도 잘하지 못해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가해서 이 악물고 뛰고 있는 준이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팀 전체를 위해서, 또 뒤처지는 아이를 위해서 같은 마음으로 응원해 준 피부도 언어도 다른 부모들이 가슴 뭉클하게 고마웠다. 이렇게 서로 응원하고 같이 성장하는 것을 한마음으로 돕는다면 이 세상이 좀 더 멋진 곳으로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승패에만 집착하는 분위기였다면 준이는 계속 벤치워머로만 남아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