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서둘러 집을 나와 캠핑 사이트까지 가는 드라이브길에 본 하늘은 청신호였다. 한국의 가을하늘보다 조금 은은하게 파란 전형적인 파스텔톤 캐롤라이나 블루 스카이.
남부특유의 습기를 머금은 열기가 지나가고 바람이 고슬고슬해졌지만 여전히 햇살은 따스한 날씨가 아까워 금요일 오후 즉흥적으로 캠핑을 가기로 했다. 텐트와 의자 등 캠핑 장비를 챙기고 냉장고를 털어 아이스박스를 채웠다. 한국인답게 전기밥통과 쌀을 같이 싣고 가까운 조던레이크로 향했다.
차콜로 고기를 굽고 캠핑사이트마다 있는 전기콘센트에 밥통을 연결해 밥을 지었다. 막 한 따끈한 밥에 고기와 김치로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하면서부터 뭔가 검은 기운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비 올 것을 대비해 짐을 모두 텐트 안에 집어넣고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캠핑장 입구에서 구입한 장작을 공기가 통하게 켜켜이 쌓고 주변의 마른 나뭇가지와 마른 솔방울, 낙엽을 같이 넣은 뒤 불을 붙였다.
나무 타는 냄새가 주변을 감싸면서 해가 진 뒤 불쑥 찾아오곤 하는 왠지 모를 쓸쓸함을 모닥불빛이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엄마 아빠가 불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세 아이들은 마시멜로우를 꼬치에 꽤느라 바쁘다. 불이 안정적으로 타기 시작하면 앞다투어 불 앞에서 마시멜로우를 굽는다. 너무 멀면 익지 않고 조금만 가깝게 댔다가는
순식간에 부풀러 올랐다가 새까맣게 타버린다.
숯덩이가 돼버린 마시멜로우를 보고 속상한 탄식을 내뱉기도 하지만 브라운색으로 적당히 잘 부풀어 익은 것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쁜 얼굴이 된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뒤늦은 유학생 신분으로 최저생계비 수준의 생활을 해야 했기에 근사한 캠핑카 대신
할인할 때 산 얇은 텐트가 전부였지만 등이 배기는 좁은 텐트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모닥불의 온기를 쬐며 고요히 앉아 불빛에 비친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바깥세상의 걱정이 저 멀리 달아나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날 밤 텐트 안에서 자고 있는데 역시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크레셴도로 점점 세차게 내리더니
그리 튼튼하게 보이지 않는 텐트가 뚫릴 듯한 굵은 빗줄기를 퍼부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온갖 야생동물들이 사방에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가수이름으로만 알았던 미국에 많이 산다는 코요테 소리가 밤새 들렸다.(우리나라의 고라니처럼 미국전역에 많이 산다고 한다)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품에 꼭 끌어안고 혹시 텐트에 물이 샐까 봐 걱정하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개구리도 가까이서 본 적 없는 서울토박이인 내가 이런 야생동물을 느끼며 밤을 보내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서움에 몸을 움츠리면서도 아이들은 그림책에서 본 코요테, 여우, 오소리 등 어떤 동물의 소리일까를 추측해 보고 그들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나 상상해 보다가 엄마 아빠 품에서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해가 뜨기 조금 전에 비는 그쳤고 다행히도 물은 새지 않아서 무사히 그 밤을 잘 넘겼다.
다행스럽게도 얇은 텐트는 굵은 빗줄기를 잘 막아서 우리 가족을 지켜주었다. 무서웠지만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밤이었다.
늘 북적이는 서울에서는 인파에 시달리는 것이 힘들었을 때가 많았는데 호숫가 캠핑 때는 인적이 느껴지지 않아 무섭게 느껴져 사람이 그리운 밤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대학을 다닌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에 살던 때 우리 가족은 시간 날 때면 가까운 호숫가로 캠핑을 자주 갔었다.
우리가 살던 집에서 30분 정도 운전해서 가면 거의 바다처럼 보일 정도로 커다란 조던레이크라는 인공호수가 있다. 그곳에는 캠핑사이트가 많이 있는데 사이트 간 간격이 넓어 옆 사람의 텐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곳이었다.
캠핑장에 도착하면 큰 애 준이와 아빠는 텐트를 치고 나와 쌍둥이들은 밴에서 무겁지 않은 짐들을 날랐다.
캠핑의 가장 큰 장점은 식구들이 각자 자기 몫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열 살도 안 된 어린 쌍둥이들도 다 자기 몫을 씩씩하게 해냈다.
아빠와 준이는 처음에는 그 많은 부품을 연결해서 텐트의 뼈대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진땀을 흘렸었지만
캠핑 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단시간에 우리의 잠자리를 척척 만들어 냈다.
그때의 젊은 엄마는 초등학생인 준이가 어리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투덜거리지 않고 묵묵하게 아빠를 도와 텐트를 완성했던 게 얼마나 기특했는지 요즘 새삼 깨닫게 된다. 어린 동생을 둘이나 두었기에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가 다 큰 것처럼 보였었다.
고맙게도 그때의 준이는 쌍둥이 동생을 둔 장남으로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집안에서 도움이 되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존감을 키웠던 것 같다.
캠핑을 처음 간 날 기본 텐트를 완성하고 그 위에 비바람을 막는 그늘막 천을 덮은 후 고정하는 큰 핀을 낑낑대며 바닥에 박고 난 뒤 다 완성되었을 때 준이의 얼굴에서 번지던 미소에 보인 뿌듯함이 기억난다.
캠핑에 가면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은데 아이들은 집에서와는 달리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운 수돗가에서 야채와 과일을 작은 손으로 씻어오고 물을 떠 오기도 하면서 식사준비를 도왔다. 야외테이블에 비닐식탁보를 깔고 캠핑용 식기를 차리면서 다람쥐같이 종종거리며 다니던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그마한 몸을 왔다 갔다 하며 심부름을 하고 나니 밖에서 먹는 밥은 아이들에게 꿀맛인 모양이었다. 나를 닮아 그다지 식욕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캠핑에 가면 놀랄 정도로 맛있게 밥을 많이 먹었다.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할 때도 우리 가족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함께했다. 테이블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모아 놓고 설거지를 하고 식기들을 정리하는 일들을.
야외에서는 누구도 그냥 방관자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쏟아져 내릴 듯한 별빛 속에 잠겨 동요를 부르기도 하고 북두칠성같이 찾기 쉬운 별자리를 찾으며 밤하늘을 한참 올려다보기도 했다.
어떤 생각도 걱정도 없이 대자연 속에 잠겨서 온전히 가족들만 있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아이들은 자전거로 텐트 주변을 크게 돌았다. 책을 좋아하는 준이는 조용히 독서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숲의 향기를 맡으며 깨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배드민턴을 치고 놀고 나는 접이식 의자에 앉아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을 마셨다
더운 날에는 인공비치에 가서 수영도 했다. 텐트 근처의 호숫가에서는 물수제비를 만들며 놀았다.
아이들은 동남아사람으로 오해를 살 정도로 새까맣게 탔지만 쌍둥이들은 영구치로 치아 갈이를 하느라 듬성듬성 빠진 이를 내보이며 자주 웃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니던 때를 생각해 보면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같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캠핑, 길 가다 우연히 들른 슬라이드와 핫도그 밖에 없던 수영장에서 더 많이 웃고 즐거워했던 것 같다.
잘 익은 마시멜로우 하나로 그렇게 소리 내어 눈을 반짝이며 웃기에 아이들은 이제 너무 커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쉽게 웃을 일보다 신경 쓰이는 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잘 익은 마시멜로우 하나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느꼈던 그 기쁨을,
고요함 중에 퍼지던 나무내음 숲내음을,
밤의 한기를 몰아내주던 모닥불의 따스함을
마음속 한편에 간직하고 있다가 언제든 그 기억 한 조각으로 슬며시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