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20대는 도망치는 삶의 연속

회사에서 도망치고 육아에서 도망치고

by 콩새

2021년 서른. 92년생 나는 친구들과 그토록 얘기하던 서른이 되었다. 10대에 그렸던 나의 서른은 28살에 결혼을 하고 29살에 아이를 낳은 안정적인 모습을 갖춘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어쩌다보니 비스무리하게 되어버렸지만, 내가 꿈꿨던건 이런 느낌의 무언가가 아니었다.


20대를 나름 치열하게 보내고 그로기 상태로 결혼과 출산 육아를 폭풍처럼 몰아치게 하게 되었다. 첫 직장에서의 한번의 이직을 했고 나름 대기업에 입사도 하게 되었다. 분명 내가 꿈꾸던 환경은 맞는데 내 마음가짐과 삶은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고 대기업의 안정적인 삶은 이제 없었다. 오히려 부업 하나를 안하면 뒤처지고, 회사에 남아있는 선배들의 모습은 절대 내가 되고 싶지 않은 모습들 뿐이었다. 드라마처럼 멋있게 일을 하고 가끔 실수도 하며 성장해나가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꿈꿨었다.


사실 나는 중고신입이었다.

첫 회사는 규모는 꽤나 컸지만 벤처기업으로 급성장한 회사였다. 계약직과 파견직과 경력직이 이상하게 섞인 좋게말하면 다양성이 있는 회사였고, 거기서 입사부터 신입 정규직으로 들어간 나에게는 ‘근본없는 회사’ 였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표방하지만 20대 30대 젊은 꼰대들이 넘쳐났고, 이상한 피해의식을 가진 선배들이 많았다.


그래서 2년만에 대기업으로 죽을듯이 도망쳤고 ‘중고신입’이 되었다.


연봉은 첫 회사에 비해 두 배가까이 되었고, 이왕 꼰대들이랑 일할거면 늙은 꼰대들이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도대체 이 일을 왜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는 일 투성이었다. "그냥 해"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내 열정을 깎아먹었다. 내가 좋아하던 분야로 직업을 정했더니 이제 꼴도보기가 싫어졌다. 회의가 들었고 몇번이나 다른 부업을 찾아보거나, 자격증공부를 하거나, 심지어는 정신줄을 놓고 놀아보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도대체 내가 뭐하는지에 대한 '나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배들처럼 그냥 하루를 버텨낼 뿐이었다. 월급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새로운 삶을 찾는건 점점 귀찮아졌다.


다른 길을 찾아봐야지

그로기상태에 빠진 나는 회사에서는 최대한 힘을 뺐고, 열심히 안했다. 끼적끼적 공인중개사 시험도 도전했지만 간절함이 없으니 당연히 탈락. 갑자기 유행이 된 ‘ㅅㅂ비용’ 과 ‘플렉스’를 즐기며, 하지만 괴로워하며 혼돈속에 살았다. 길을 잃었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를 만나 결혼이라는 돌파구를 찾았고, 육아휴직을 하고 다시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복직으로 선택했다. 결국 나는 이런 애였다. 새로운 것에 홀리는게 열심히 살아가는 길이라고만 믿고 있다. 사실 뭐 하나 제대로 해낸건 별로 없는데.


이런 마음가짐으로 복직한 회사가 나와 잘 맞을리가 없었다. 토할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꼰대들의 일상에 또 젖어들어야 했다. 신입사원때는 그나마도 참았던 말들이 이제는 잃을 게 없어진 탓인지 불만이 술술 터져나왔다.


도대체 왜 일을 시키는데 이유는 말해주지 않는걸까.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물어보면 왜 알아서 하라고 하는걸까. 알아서 해가면 왜 또 수정하라고 하는걸까. 이놈의 회사생활에는 왜? 어떻게? 그래서? 따위는 없는 생활인 것 같았다.


Q : 이 일은 어떤 히스토리가 있어서 해야하나요? (왜 해야하나요?)

A : 왜 그걸 나한테 따지니?


Q : 이 일을 하려면 누구와 컨택해야 하고,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A :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Q : 이 일의 목적은 뭔가요?

A : 그것도 니가 찾아야지


물음표가 들어간 문장은 모두 다 화살로 돌아왔다. 나는 어느순간 물음표를 던지지 않기 시작했다.


또 다시 회사를 도망치기 위해 디지털노마드의 삶으로 도망치려고 발버둥치고있다.


회사에서 도망쳐서 다른 회사로

또 다른 회사에서 도망쳐서 결혼, 육아로

육아에서 도망쳐서 다시 회사로

회사를 도망치기위해 또 다른 방법을 찾고


나란애는 정말 도망치는 것 밖에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서른

내가 생각했던 멋진 여성, 멋진 아내, 멋진 엄마의 모습의 서른은 분명 아니다. A가 싫어서 도망쳐 찾은 곳에서의 B에서 또 싫음을 찾아서 C를 찾아가는 찌질한 도망자의 삶을 사는 서른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그렇게 도망치지 않으면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안정감의 늪은 나를 항상 지치게 만들어버리는 걸. 도망이라도 쳐야 뛰기라도 하고 장애물이라도 넘고 즐거움이라도 찾는걸.


도망치는 삶을 한참 증오했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인정해야지. 도망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는 걸.


A가 싫어서 도망치는 걸로 시작했지만

나의 Z는 어떻게 끝날지 아직 모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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