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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 일기 Nov 04. 2020

(#064) 2018. 8. 21.

중학생 때 우연히 어떤 책을 읽었다. 벌써 십 년도 훨씬 지난 일이라 저자는 누구고 제목은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책 속에서 누군가는 먼 나라에 있는 순례자의 길로 떠났다. 장장 700 킬로미터가 넘는 그 길을 한 달도 넘게 꼬박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따위가 적혀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다. 훗날 내게도 기회가 찾아오면 그리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 건. 버킷리스트라는 말조차 지금처럼 쓰지 않았을 무렵, 나는 막연히 그런 꿈을 꾸었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품었던 특별하고 반짝이던 것들이 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만큼 평범했고 길을 잃어버려 좌절한 곳도 실은  길 위라는 것을 깨닫자 일단 저지르기로 했다.


출발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을 적 길게 고민할 것 없이 항공권부터 끊었다. 첫날 머무를 숙소며 길의 출발지까지 가는 기차표도 금세 찾았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약간의 체력단련과 짐을 준비하며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제주에서 돌아와 이주 남짓 외삼촌 직장에서 번 용돈과 부모님 찬조를 받아 경비를 충당했다. 이런 순간이 살면서 언제 또 찾아올까 싶어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오랫동안 미뤘던  꿈을 찾으러 간다.

의류와 신발, 세면도구와 세탁용품, 자외선 차단제, 상비약, 침낭, 선글라스, 손톱깎이, 호신용 스프레이 등. 70여 개의 물건이 담긴 가방은 7kg쯤이 되었다. ©밀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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