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의 어색한 동거
'돈'이라는 글자는 일단 예쁘지가 않다.
돼지고기는 좋아하지만 '돈육'이라는 단어는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벨지야. 돈은 중요하지 않아.
예쁘지도,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 단어가
엄마는 중요하지도 않다고 했다.
엄마는 돈을 만지고 나면 손을 씻었다.
'돈이 더럽기 때문에' 돈을 만지면 꼭 손을 씻으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돈
그래서 여러 가지 세균이 묻어있다는 것이었다.
돈은 더럽다.
돈 자체도 더럽지만,
돈을 불리는 과정도 막연하게 더러울 거라 생각했다.
부와 권력을 향한 탐욕
돈은 탐욕의 결과물일 것만 같았다.
어릴 때부터 일정한 금액을 관리해본 경험이 없다.
꼭 사야하는 물건을 말하고 돈을 받아서 썼다.
경제적으로 어려웠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거다.
돈은 참는 것이다.
나는 의젓한 딸이었기에 순응했다.
특별히 가지고 싶은 물건도,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다.
가질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뭔가를 가져 보고 먹어 봐야 취향이 생기는 법
과거의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았다.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10만원을 지갑에 넣고 지하철을 타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잃어버리지는 않을지, 소매치기가 가져가지는 않을지
불안감이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유럽 여행을 갔을 때는 이런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복대 지갑'을 사서 배에 품고 다니면서도 불안했다.
돈은 불안하다.
이쯤 되면 돈이 나에게 오는게 이상할 지경이다.
돈과 꼭 함께 살아가야 했지만,
나는 돈과 어색한 동거를 이어갈 뿐이었다.
돈과 친해지기로 결심한 나는 투자자가 되었다.
30여 년간 품어온 돈에 대한 감정을 하루 아침에 지우기는 어려웠지만,
지금 나는 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돈이 생기면 행복하다. 모이는 돈이 뿌듯하다.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내 돈으로 원하는 것을 사고 먹을 때 무척 행복하다.
돈을 계획적으로 운용한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노력한다.
써야할 곳과 쓰고 싶은 곳에 쓴다.
큰 금액의 돈을 만지는 것이 막연한 두려움을 주지 않는다.
아직 그릇이 한참 작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참 많이 컸다.
투자자라는 정체성이 나에게 준 선물에 오늘도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