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브라운 Feb 20. 2018

타협하며 빨리 가기 vs. 올곧게 느리게 가기

직장인으로서의 가치관 (2) 부조리와 타협할 것인가?


Question


얼마 전 직장생활을 40년 가까이 하다가 임원으로 퇴임하신 분과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왔다. 비록 그것 때문에 승진은 남들보다 늦었지만 후회는 없다"라는 말씀이 계속 생각나네요. 직장생활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Answer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직업관, 윤리의식, 성공에 대한 정의 등 많은 것을 함께 고민해봐야 할 질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마지막 단어 선택에 주목했습니다. "직장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가요?"가 아니라 "좋을까요?"라고 질문하셨는데요. 이 문장은 "반드시 윤리적으로 올바를 필요는 없지만 직장인으로서 좋은 선택은 무엇일까요?"라고 풀어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답변드리기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특히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51% 정답'은커녕 '10% 정답'마저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질문 주신 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직접적인 답변보다는 함께 생각해봐야 할 사항들을 몇 가지 제시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그전에 잠깐 삼천포로 빠져 보죠. 얼마 전 친구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절친과의 대화


절친: '80년대 군부 독재정권 시절에 많은 지식인들이 군정에 협조했잖아. 그 당시 네가 지금 우리 나이였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본인: 글쎄? 갑자기 어떤 사람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독재를 하기 시작했어. 이 경우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첫 번째 부류는 독재 정권에 편승해서 출세하려고 하는 사람. 두 번째는 "독재 정권 타도"를 외치며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둘의 중간쯤으로 "너는 독재해. 나는 참여하지 않을게"하면서 정권에 편승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사람. 아마 나는 마지막 부류에 속할 것 같은데.


친구: 그렇게 크게 구분하면 아마 나도 마지막 부류에 속하지 않았을까 싶네. 두 번째 부류는 그만큼 자기 신념이 강하다는 얘기인데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그래도 우리 둘 다 첫 번째 부류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매우 소시민적인 저와 제 친구 간의 대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공개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대화 내용이지만... 어쨌든 위의 분류는 회사에도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장님께서 갑자기 독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번 가정해 보겠습니다. 아 참, 사장님께서는 원래 독재하시죠. 그걸 정치권에서는 '독재'라고 표현하지만 기업에서는 '오너 경영'이라고 표현하죠.


가정을 조금 수정해서, 사장님께서 현행법에 위배되거나, 공정하지 못하거나,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주주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거나, 직원들을 착취하거나 하는 등 사회 통념상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지시하셨다고 한 번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이 경우에도 직원들을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번. '적극 참여자' - 사장님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사장님의 지시를 적극 수행하는 사람

2번. '참여 거부자' - 사장님 지시를 정중하게 거부하지만, 사내 투쟁이나 퇴사까지는 하지 않는 사람

3번. '투쟁 운동가' - 사장님 퇴진을 주장하거나, 사장님을 고발하거나, 아니면 본인이 퇴사하는 사람  


아마 1번 > 2번 > 3번 순으로 그 비중이 높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봅니다.


제 경험상으로는 1번 '적극 참여자'가 가장 많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작은 불의에도 부르르 떨면서 비분강개했던 분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유도리'가 지나치게 많아져서 웬만한 불의는 너그럽게 넘어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봤습니다. 심지어는 불의에 편승하여 출세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신 분들도 있죠.


반면 3번 '투쟁 운동가'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70년대와 '80년대에는 이러한 분들이 많았을지 모르나 제가 직장생활을 한 '90년대부터는 회사의 불의에 맞서기 위해서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영진의 퇴진을 주장하신 분들은 극소수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특히 사무직에서는요. 따라서 3번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결국 사장님께서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지시하셨을 때에 직원들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크게 1번 '적극 참여자'와 2번 '참여 거부자'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을 '타협하며 빨리 가기(1번 적극 참여자) vs. 올곧게 느리게 가기(2번 참여 거부자)'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길을 가시겠습니까? 이를 답변하기 위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 지에 대한 제 '51%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걸 같고 고민해.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하면서 이런 글을 쓴 사람은 물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까지 한심하게 생각하시는 분도 분명히 계실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15분 정도 고민해볼 만한 가치는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비윤리적임에도 불구하고 타협해서 빨리 가려고 하는 이유는?


타협해서 빨리 가는 것과 올곧게 느리게 가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윤리적일까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올곧게 느리게 가는 게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습니다. 이처럼 비윤리적인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협해서 빨리 가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남들보다 빨리 출세하기 위해서


빨리 승진해서 출세하기 위해서죠. 어느 조직에서나 말 잘 듣는 사람이 잘 되기 마련입니다. 비록 그 말이 말도 안 되는 말이더라도요.


출세를 위해서 검사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영화 '더킹'의 주인공들. [사진 출처: 영화 '더킹']



2. 직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지만 때로는 승진이고 뭐고 다 떠나서 조직에서 안 잘리고 서바이브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비굴하게 타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정말 많이 봤습니다.


특히 '조직의 힘'이 강한 회사일수록 이런 성향이 높습니다. 직장인 중에는 조직의 힘과 개인의 역량을 혼동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 조직의 후광이 없으면 아무 일을 할 수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조직에서 팽 당하면 명함에 무슨 말을 새겨 넣을지는 그다음 문제이고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죠. 조직을 떠나서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사의 지시라면 물불 안 가리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옥살이까지 대신하시는 분들도 있으니... 또 그것을 미화하는 글을 쓰시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이분들도 모두 어려운 산업 현장에서 서바이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러시는 거겠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둥바둥 거리는 정민철 과장 [사진 출처: JTBC 드라마 '송곳']



3. 높이 올라가야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개중에는 조직 내에서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비굴하게라도 타협해서 높이 올라가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변화는 상향식(bottom-up)으로 하기 어렵습니다. 위에서부터 하향식(top-down)으로 해야지요. 상향식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유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시도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건 계란만 힘들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곧 후회하게 되죠. 물론 바위에 깨진 수많은 이름 모를 계란들 때문에 바위는 좋게 변화하지만... 영화 '변호인'의 명대사처럼 "바위는 강하지만 죽은 것이고, 계란은 약하지만 산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있기 때문에 아픔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결국 회사를 변화시키려면 누군가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그러한 변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본의 아니게 잠시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지만 내가 지향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으니까요.


잠시 옛날 정치 사건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3당 합당을 해서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창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영삼 총재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3당 합당의 명분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께서 이를 비판했죠. 특히 김영삼 총재에 대해서는 "그동안 온갖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고 심지어 초산 테러에도 끄떡 않던 YS가 결국은 변절했다"며 비난이 쇄도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말씀하신 '호랑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권력'을 의미했을 수도 있고 12.12 쿠데타를 일으킨 '하나회 세력'을 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결국은 호랑이를 잡았습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하나회도 숙청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나라를 군부 쿠데타로부터 안전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김영삼 대통령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쿠데타 리스크를 제거한 업적에 대해서만은 지금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처음에는 숭고한 뜻을 품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심하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보시지 않았나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초산테러 후 국회연설 (1969년), 3당합당 선언 (1990년), 그리고 대통령 당선 후 '하나회' 척결 관련 보도 (1994년) (좌부터 우로)



만약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면 어느 선까지 타협을 허용할 것인가?


만약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면, 그래서 비윤리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면, 과연 어느 선까지 허용해야 할까요?


'오십보백보'라는 고사성어가 있듯이 일단 부조리와 타협을 한 이상 그게 어느 정도인지와 관계없이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협한 사람의 입장이라고 가정해서 굳이 변명을 하자면 타협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선 말이죠. 사실 이 세상에 거짓말 안 해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일평생 불의와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고 살아본 사람도 매우 드물 것 같은데요. 우리 한 번 '유도리' 있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1. 남들보다 더 심하게 하지 않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하거나 조금만 덜 하면 괜찮지 않을까?


'적극 참여자'들과 '완전 예스맨'들로만 빵빵하게 차 있는 조직에서는 나 혼자 독야청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조직에서 나 홀로 '참여 거부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자진해서 '왕따'의 무덤을 파는 행동이죠. "자기가 무슨 독립운동가인 줄 아나?", "그래, 참 잘났다"는 얘기 듣기 십상이죠.


'이런 조직에서는 그냥 남들보다 더 심하게 하지 않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어차피 통상적인 기준은 세워져 있고 나는 그 조직의 행동원칙에 따라 조직원답게 행동한 것에 불과하니까요.


이 논리에 따르면 정말 큰 맘먹고 남들보다 조금만 덜 타협하는 것만으로도 칭송을 받아야 마땅하겠네요. 영화 '투캅스'의 안성기 선생님이나 '남자가 사랑할 때'의 황정민 형님 같은 분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안 선생님은 노점상에서 삥을 뜯을 때에 다른 짭새들보다 약간 덜 뜯는다는 이유로, 그리고 황 형님은 시장상인들로부터 일수금을 걷을 때 다른 사채업자들에 비해 행패를 덜 부린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죠. 그래 봤자 한 분은 부패경찰이고 또 한 분은 아치인데...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80년대에는 신호 위반으로 교통경찰에게 걸리면 벌금을 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속칭 '와이로'를 먹이면서 '현장 협상'에 들어갔죠. 이때 정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합의를 하는 경찰은 "그래도 이 분은 참 양심적이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 학창 시절에는 학생들에게 쌍욕 안 하시는 선생님은 존경받았죠. 촌지 안 받으시는 분들은 추앙받았고요. 지금은 어림도 없죠.


남들보다 더하는 건 이 세상을 퇴보시키는 행동이고, 남들만큼 하는 것은 그냥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현상유지만 하는 것도 퇴보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행동이죠. 하지만 조금만 더 수고해서 남들보다 조금만 덜 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것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고요.


하지만 이런 말씀드리면 적극적인 '참여 거부자'들은 섭섭해하시죠. 올바르지 못한 행동은 일절 하지 않는 게 기본일진대, 덜 타협했다고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다고 그 노고를 치하하면... 그분들 입장에서는 가슴 치고 원통해할 일이죠.


수금할 때 다른 분들에 비해서 난동은 덜 부리지만... 패션은 영락없는... [사진 출처: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2. 전체 직장생활을 놓고 봤을 때 플러스가 마이너스보다 더 크면 괜찮지 않을까?


또 다른 관점에서는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비록 어느 정도까지는 타협을 했더라도, 전체 직장생활을 놓고 봤을 때에 기업문화 발전에 대한 기여도 측면에서 플러스가 마이너스보다 훨씬 우세하면 괜찮지 않을까? 즉, '상사가 사회적 통념상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지시했을 때에 이를 충실히 수행해왔지만, 나중에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는 이러한 행위를 근절하는 데에 기여를 했다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죠.


물론 타협을 통해 남들보다 빨리 출세와 영달을 한 뒤 마치 대단한 사람인 양 행동하시는 분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께름칙하다는 생각은 듭니다. 나의 타협 행위 때문에 불가피하게 손해를 보신 많은 분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납득하기가 쉽지 않겠죠.


비록 타협을 했지만 플러스가 마이너스보다 많은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라고. 이 말씀을 들으시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각나실 겁니다. 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후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역사 바로세우기 등 굵직굵직한 업적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집권 기간 대비 업적의 규모로만 본다면 역대 대통령 중 최고 수준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 과정에서 손해를 보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3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향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신 분들은 아마 다르게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그분들 입장에서는 역시 가슴 치고 원통해할 일이죠.


'90년 당시 3당합당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김상현 전 국회의원.(좌) 그는 '69년 공화당이 3선개헌을 통과시키자 울부짖으며 투표함을 던진 일화로도 유명하다.(우)



직장생활에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올곧게 느리게 가야 하는 이유는?


타협하며 빨리 가는 것이 본인의 이익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타협을 거부하는 분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직장생활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올곧게 느리게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이 회사가 내 최종 목표가 아닐 때


이 회사에서의 출세와 영달이 내 인생에서의 최종 목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의 사업을 꿈꾸시거나, 퇴사 후 집필이나 강연을 계획하고 계시거나, 아니면 뭔가 또 다른 목표를 갖고 계신 분이라면 사내 직위보다 본인의 평판이 더 중요할 수 있죠.



2. 자존심과 양심과 신의를 지키고 싶을 때


제 지인인 오팀장 말씀을 드리죠. 오팀장 또한 못난 상사로부터 부조리와의 타협을 강요받은, 보다 정확하게는 지시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때 오팀장에게 든 생각은 두 가지였죠. 하나는 "돈 몇 푼 받는다고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이게 정말로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였습니다.


돈 몇 푼 받는다고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이게 정말로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오팀장은 물론 타협하지 않았고, 그의 팀원들도 모두 타협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돌아온 반응은 "당신들은 도대체 어느 회사 사람이야?"였죠. "지시하신 일을 하는 게 장기적으로 회사에도 좋지 않고 '소탐대실'일뿐"이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막무가내였답니다. 심지어 법무팀에서조차 "왜 우리 회사를 위해서 일하지 않고 남의 회사를 위해서 일하느냐?"라고 했을 때에는 머리가 띵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 회사 법무팀은 '법을 지키기 위한 팀'이 아니라 '회사가 법과 도리를 지키지 않았을 때에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는 팀'이었나 봅니다.


타협하지 않은 결과 오팀장은 올곧게 느리게 간 것이 아니라, 아예 길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이 오팀장 말고도 또 많겠죠?



3. 욜로 (YOLO)


마지막으로 '욜로'를 외치고 싶네요.


You Only Live Once. Live Right and Do The Right Thing!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똑바로 삽시다!


'똑바로 살아라'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Spike Lee 감독의 영화 'Do The Right Thing' [사진 출처: 영화 'Do The Right Thing']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회사에서 사회 통념상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지시할 경우, 타협하며 빨리 갈지 아니면 올곧게 느리게 갈지를 선택해야 한다.

2. 비윤리적임에도 불구하고 타협해서 빨리 가려고 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빨리 출세하기 위해서, 직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또는 높이 올라가야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3. 반면 직장생활에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올곧게 느리게 가야 하는 경우는 이 회사가 내 최종 목표가 아닐 때, 또는 자존심과 양심과 신의를 지키고 싶을 때 등이다. 그것도 아니면 '욜로'를 외쳐라.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똑바로 살자!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감하시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공유 부탁드립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직장인으로서의 가치관 시리즈

(1) 비열하게 싸우느냐 vs. 명예롭게 떠나느냐 - 내 손에 피를 묻힐 것인가?

(2) 타협하며 빨리 가기 vs. 올곧게 느리게 가기 - 부조리와 타협할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비열하게 싸우느냐 vs. 명예롭게 떠나느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