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더 이상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역시였네. 이번에도 2주 동안 축구하지 않았어. 아, 아니구나. 설 전주 일요일에 잠깐 하긴 했잖아.' 매주 축구를 한다고 했지만, 센터 수업이 쉴 때가 있다. 한 달 수업은 4회가 기준이기 때문에 1월처럼 금요일이 다섯 번 있는 경우에는 한 번 쉰다. 이런 날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2주 만에 공을 차러 간다.
한 달 스케줄을 계획하면서 마지막 주에 쉬는 걸 미리 알게 된다. 그러면 주말에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2주 만에 훈련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 숨이 차기 때문이다. 특히 미니 경기 때. 일주일 중에 운동이라고는 축구 하나밖에 없어서 10분의 미니 경기를 하면 초반에 3분만 몸이 마음처럼 움직인다. 이후에는 숨이 차서 발이 나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 주를 쉬어버리면, 미니 경기 시간이 두렵기만 하다. 아무래도 중간에 운동을 하면 덜 힘들다. 둘, 패스나 컨트롤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발로 공을 차 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부위를 맞힌다거나, 올바른 자세를 하는 게 쉽지 않다. 매일 꾸준히 공을 차다가도 쉬었다 다시 차면 정확성이 떨어지는데 내 실력을 보면 사람들이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1년 넘게 배웠다고 하는데 저 실력이면 나도 하겠다는 그런 마음이 생길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공을 한 번이라도 찬다면, 말이 조금 달라진다. 횟수를 늘리면 쉰 지도 모를 정도이겠지. 물론 여기서 내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아니다. 쉬기 전의 실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이다. 셋, 어떤 동작을 하든 어설프다. 이런 이유로 중간에 한 번은 축구를 하려 한다. 자전거 배우는 일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초반에 페달 밟아서 균형 유지해서 탈 수 있는 정도라면 중간에 해야겠다는 생각, 하지 않을 것이다. 축구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최소 한 번은 공을 차 보려고 한다. 마음은 주말에도 한 번씩 차고 싶다. 그러면 총 세 번인데, 이번에는 설 연휴가 있어서 딱 한 번만 공을 차고 왔다. 설 연휴 다음 날 휴가를 써서 긴 연휴를 보냈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축구를 배우는 나는 수업이 없는 날이면 연습하지 않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금요일 저녁 시간, 나를 위해 비워둔 날임에도 불구하고, 남편도 이날은 일찍 오는데도 불구하고 이번과 같이 센터가 쉬는 날이면 운동하지 않는다. 축구 연습할 곳이 없다는 핑계도 대본다. 그러면 다른 운동을 해도 되는데 이런 날에는 놀 생각을 한다. 대구에 가서 지인을 만나 불금을 보낼까, 오랜만에 금요일에 남편과 술 한잔할까, 이런 놀 궁리를. 그 이유를 나는 축구를 연습하겠다는 생각에서부터 이지 않을까 싶다. 연습하려고 하니 마땅한 장소를 모를뿐더러, 혼자 연습하면 아무래도 적절한 피드백을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리 유튜브에 영상을 보고 따라 한다고 하더라도 수업 때처럼 코치님의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 그러면 수업 시간에 배운 걸 복습해도 되는데 그럴 때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어디서 하지? 할 곳이 없네.'라며 장소 핑계를 찾는다. 축구 연습을 할 마음 그리고 오늘 놀고 주말에 가족과 함께 축구하러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축구 연습을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설에 마음이 찝찝한 상태로 보냈다. 머릿속에는 축구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공도 챙겨 왔고 가족 모두 풋살화도 준비해 왔다. 어디 가서 공을 찰지는 모르면서 원주에서 대구까지 가지고 가자고 한 건 나였다. 차지도 않을 걸 괜히 짐만 더 늘렸다 싶다. 꼭 준비를 안 해온 날 밖에서 공 찰 일이 생겨서 만반의 준비를 해 왔는데 말이다. 축구하기에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은 있으니, '내일은'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은 설을 보냈다.
설을 보내고 축구 수업을 가기 전까지 마음이 여전히 불편했다. 2주 만에 가는 축구라 힘든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꼭 후회를 한다. 넷째, 다섯째 날에는 시간 조금이라도 됐었는데, 그때라도 할걸, 원주로 온 다음 날, 오랜만에 해서 몸이 꽤 무겁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짐을 해서 마음이 무거운 게 아니다. 후회로 가득 차서 센터까지 가는 발걸음마저도 무겁다.
축구만 이렇게 쉴 때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미루는 것일까 하며 내 삶을 돌아봤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는 글을 쓰면 마음이 좀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그 글은 다른 사람에서 찾아 쓰는 게 아니라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쓰고 있다.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미루는 일은 바로 방학 숙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일인데 지금도 이렇게 자꾸 미루는 걸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방학이니까 신나게 놀다가, 방학 중반부에 들어서면 숙제 걱정을 했었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는 밤을 새워가며 숙제를 했다. 특히 일기 쓰기를. 이때도 방학 전에는 매일 일기를 쓰고, 탐구 생활도 일주일에 세 개씩은 하자는 계획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탐구 생활은 계속 미뤘다.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두껍게 만들어 오는 친구들이 있던데 그 친구들만큼 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놀고 싶은 마음이 하고 싶은 마음보다 컸고. 그다음 시험을 치르는 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시험공부가 그랬다. 시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평소에 복습하지 않고 놀았다. 그러다 2주 앞두고 벼락치기를 한다. 요즘에는 운동 계획을 세운다. 축구, 유산소, 근력. 운동도 계획이 다 있다. 날이 추워 밖에 못 나간다는 이유로 주 1회 축구만 하고 있다. 정리도 마찬가지다. 이사할 때면 집 정리하기 힘드니 평소에 짐을 줄이려 한다. 다짐은 6개월마다 물건을 비우자고 했다. 이사하고 1년이 지난 이 시점이면 두 번을 정리해야 하는데 아이들 장난감 위주로 한 번만 버렸다. 덜 비우고 계속 사니 짐은 계속 는다. 강의 준비도 비슷하다. 두 달 전에 일정이 잡히는 경우가 있다. 미루고 미루다가 닥쳐야 강의 자료를 만든다. 이쯤 되니, 나란 사람은 자기 계발한다고 책도 읽고 돈도 썼는데 변한 건 없어 보인다.
미소를 살짝 지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투자를 했지만 달라진 모습은 없는 나를 돌아봤는데 왜 미소를 지었을까? 모든 걸 다 놀고 싶어 하고 미루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읽기와 쓰기 만큼은 달랐다. 최소 한 줄은 읽고 쓰고 있다. 독서는 평소에 읽는 책을 펼친다. 독서 모임의 책, 자기 계발의 책 위주로 고른다. 좀 더 책을 많이 읽게 되는 날이면 마케팅 또는 에세이 책 등 평소에 읽지 않는 분야나 관심 가는 책을 선택해 읽는다. 쓰기, 글쓰기 연습을 하거나 일기를 쓴다. 매일 몇 시간씩 글을 쓰자는 규칙을 정한 건 아니다. 써야 하는 분량을 정하지도 않았다.
어떤 날은 글 한 편 쓰기도 하고, 후기를 남기기 위한 목적의 글을 남기기도 한다. 글쓰기 위해서 메모도 적고 있다. 다른 작가의 글을 보며 나는 어떤 글을 쓸지, 내가 이 문장을 쓴다면 어떻게 각색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한다. 무엇보다도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최소 한 줄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딱 그만큼만 적은 날은 없다. 힘든 날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는 날에 한 줄만 쓰자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다섯 줄은 금방 채웠다. 여기까지는 글을 쓴 행위에 포함한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실제로 글을 쓰지는 않는 경우다. 보고 들은 걸 바탕으로 어떤 글을 쓸지, 어떤 메시지를 잡고 글을 쓸지에 대해서 생각도 해본다. 사람들과 대화한 경우, 나는 어떤 입장인지 찬성과 반대의 주장과 그 이유에 대해서도 떠올려 본다. 이런 고민을 평소에도 하고 있다.
뭘 자꾸 미루는 일들과 차이는 무엇일까? 미루는 일 역시도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무엇을 고민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하지 않는 일은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반면, 한 일에 대해서는 그 질문이 다르다. 무엇을 하든 내 생각과 의견에 대해 나에게 묻고 대답한다. 이는 곧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는 고민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러면 나는 축구 쉬는 날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지금의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미루지 않고 하는 일을 토대로 결론을 내려보려 한다. 우선, 축구 경기를 보며 나는 어디에 패스를 줄지, 어느 공간으로 갈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슈팅 스타>, <뭉쳐야 찬다>와 같이 매주 경기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다시 보기로도 가능하니 주말이면 이 둘 중 하나는 보는 편인데 아무 생각 없이 보지 말고 내가 축구할 때를 그려가며 보는 것이다. 또 단순히 기술, 공간 이동만 보는 게 아니라 정신력도 배울만하다. 이런 점도 어떻게 내 신념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또 하나는 머릿속으로 동작을 해보는 것이다. 팬텀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 수업에서 배운 대로 하나, 둘, 셋을 하며 천천히 했을 때에 그 동작이 나온다. 조금이라도 빨리하면 발이 엉켰다. 머리로 그 동작을 미리 떠올려보면 실제로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운동은 직접 해야 실력이 는다. 나가서, 공원에 가서 공 차려고 하다가 못 하고 안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럴 때 해야 한다는 찝찝한 마음이 늘 남아 있었다. 다시 축구하러 가서 잘 안되고 몸이 안 따라주는 상황을 느껴야 후회하는 마음도 든다. 이제, 축구에 대한 궁리를 통해 마음의 부담을 좀 내려놓을 수 있겠다 싶다. 우선은 직접 하는 일에 더 중요성을 두겠지만, 이는 결국 하지 않는 날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집에 있는 도구를 활용하면 좋겠다. 집에서 볼 훈련하려고 산 탱탱볼이 있다. 실내에서만 사용하려고 구입했다. 발목 강화 운동을 위해 산 바운스 매트도 있다. 어떤 동작이든 내가 뛰면 쿵쿵 소리가 나서 오래 하기가 힘드니, 매트 위에서 볼 간수할 수 있는 능력, 공을 좀 더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같이 키워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직접 해야만 한 거라고 믿고 살아왔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하고 또 실패했다는 좌절감 느끼지 않으려면 '그 일을 하기 위한 궁리'라도 해봐야겠다. 언제, 어디서, 방법이 아니라 '나라면 누구한테 패스를 주지?' '이 내용으로 글 메시지 어떤 걸 만들 수 있을까?' '지난번에 정리하면서 버리기 아까워서 못 버린 물건은 뭐지?' 이런 식이다.
수업 한 주 쉰 덕분에 배웠다. 해야 할 일이 뭔지, 그 일을 안 했을 때 어떤 마음인지 확인했다. 또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축구를 배우고 있는 덕분에 좌절감 느끼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