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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절망하지 않는 이유

by 벨리따

“지금까지 배운 게 축구의 기본 동작입니다.”

어려워서 난이도가 있는 동작인 줄 알았다. 지금 수강생들 중에서 처음 배운 사람은 25년 4월이면 2년이 된다. 풋살 클럽에도 속해서 주 1회 더 공을 차는 사람이다. 코치님 수업 이전부터 들었던 수강생 중에서 가장 짧은 기간 배웠던 사람도 이제 1년이 넘었다. 이 정도 정보는 듣고 왔을 텐데, 그래서 우리한테 좀 더 어려운 동작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기본 동작이라니.

오늘로 13개월째 축구를 배우고 있다. 23년 7월부터, 발목 부상으로 6개월 쉰 기간을 제외하면 13개월 동안 배웠다. 보통 1년을 배웠다고 하면 기본에서 벗어나지 않나? 그런데도 난 아직 기초를 다지고 있는 중이다.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다.

집에 오는 길에, 또 집에 와서 생각해 봤다.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즐겁기 때문이다. 즐거운 이유도 세 가지가 있다.

하나, 불금 저녁에 나간다. 다른 요일도 아니고 금요일 저녁에 내 시간 가지는 일부터 신난다. 여기에 가족 두고 혼자 나간다. 다른 상황은 내가 가족을 배웅해 준다. 아침에 남편 출근과 아이들 등교할 때 인사한다. 축구 배우러 가는 날은 다르다. 아이들이 현관문을 향해 바라보고 나한테 인사를 한다. 둘, 축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남편 직장 발령으로 가족은 원주로 이사를 왔다. 3년 사이, 남편은 아는 직장 동료가 많아졌으며 아이들 역시 학교와 학원 친구들이 생겨났다. 나는 가족들 통해서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나 남편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를 배우러 나간다. 내가 가서 만나는 사람들이란 점에서 의미 있다. 축구할 때 말고 따로 연락하지도 않는 사람들이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통한 만남이 아기기 때문에 꽤 좋다.

셋, 축구는 팀워크를 발휘하는 운동이다. 혼자 해도 가능한 운동을 배웠다면 사람들에게 축구가 재미있다고 말하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서로에게 의지도 하고 도움도 주는 운동을 하고 있어 이 시간이 즐거운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불금에 축구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팀워크를 다지는 운동을 하기 때문에 축구 수업을 가는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둘째, 배워야 하는 시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13개월 배웠다고 했다. 주 1회 간다. 결석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56번이다. 습관은 최소 66일 연속으로 해야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주 1회 운동하기 때문에 기대 자체가 크지 않다. 운동했을 때의 어떤 변화보다 배우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아들은 주 4회 축구를 배운다. 나보다 세 번은 더 간다. 센터에서 배우는 시기가 비슷한데 배우는 횟수가 다르니 실력 차이가 금방 났다. 만약 아들이 다니지 않고 나만 수업을 들은 상태에서 기본기라는 말을 들었다면 나는 분명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13개월째인데 아직 기본기라니. 다른 곳을 알아보거나 종목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같은 센터에 주 4회 다니는 아들 덕분에 중심 잡고 있다.

여기에 축구는 하면 할수록 복잡한 운동이라는 걸 느낀다. 수비수, 우리 팀 동료 위치, 나의 위치에 따라 드리블하는 속도, 방향, 방법이 다르다. 이런 축구를 배우고 있으니 초보인 나는 배울 게 여전히 많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기본기, 고급 기술을 떠나 언제부터인가 축구를 한다는 건 평생 배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인 건 분명하다. <나 혼자 산다>에서 황희찬 선수 편을 보면서 느꼈다. 프로 선수도 팀 훈련 후 개인 보충 훈련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이뿐만 아니라 축구이지만 풋살의 기술을 배워(물론 나는 축구와 풋살의 기술 차이를 모른다) 축구에 적용한다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도 있다. 현역을 뛰는 축구 선수들도 계속 배우고 훈련하는데 초보인 나 역시 끊임없이 습득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차피 배우는 거 마음 급하게 먹을 필요가 없다.

셋째, 기초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같다.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초반에 속도가 나더라도 바탕을 두텁게 만들지 않으면 일정 수준 이후에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성장이 더디면 결국 포기하거나 다시 기본기로 돌아가서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상황으로 가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기본기가 탄탄한 편은 아니다. 기본 동작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중급 수준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즐겁게 배우고 축구는 계속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기초 동작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게 기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마음일까?

첫째,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걸 힘들어한다. 어떤 일이든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바로 시간과 노력이다. 일정 수준에 도달한다는 말은 능숙해진다는 말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두 가지를 들여야 한다.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고 조금 나아지고 잘 된다 싶어 했는데 전날보다 덜 나와서 조금 속상하는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만 살펴봐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결국 조금 더 나아지고 숙달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를 알면서도 실천이 안 된다. 조금 하다가 그만둔다. 이런 사람들이 기본 동작을 배우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13개월이라는 시간이 떠오른다. 사실 그 이전에 그만두는 게 다반사이긴 하다.

여전히 실력이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들이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기록하고 이를 보며 피드백하는 것이다. 축구 영상을 본다고 해서 축구 실력이 나아지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오직 행동했을 때 기록해야 하고, 그렇다면 좀 더 나의 시간과 노력에 대해서 따져볼 수 있다.

둘째, 타인과의 비교이다. 나와 비슷하게 시작한 사람들과 비교한다. 또 같은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과도 비교한다. 여기서 ‘그는 저만큼이나 하는데, 나는 이 정도밖에 못했어.’라는 생각이 들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자존감도 낮아지고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심리 상태에서 기본을 배운다는 말을 들으면 이 역시 기분이 좋지 않다.

우리가 비교하는 사람은 이전에 어떤 환경을 지내왔고, 현재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는지 다 알지 못한다. 굳이 타인과 비교할 필요 없다. 적어도 한 번은 들어봤을 말이지만, 중요한 말이기도 하다. 나와 비교하면 된다. 축구 배우기 전의 나, 6개월 이전의 나와 지금을 놓고 비교하면 된다. 타인과 비교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지만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최소 자신감은 쌓을 수 있다. 단, 과거보다 실력이 떨어졌다고 판단이 된다면 이때는 방법을 바꾸거나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거나 환경을 변경해야 하겠다.

셋째,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쉽게 이룰 수 있는 건 없다. 그렇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성공하고 부자인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의 태도, 마인드를 배우려 한다. 그들은 쉬운 일은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어렵다는 걸 알고 시작하면 조금 마음이 가볍다. 요즘은 영상 탓인지 잘되지 않으면 금세 포기하고 만다. 어렵지만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쉬운 방법을 찾는 사람은 수준이 금방 나타나기를 바란다. 이런 사람들이 기본을 배우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흥미가 떨어지고 곧 다른 분야를 찾는다.

이 모든 걸 정리해 보면 여섯 가지로 나열할 수 있다. 즐겁게 한다. 평생 배운다는 생각을 갖는다. 어떤 일이든 기초가 중요하다. 잘하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과거의 나와 비교한다. 뭐든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내 마음속에 이 여섯 가지가 있으니까 기본 수준이라는 말을 들어도 힘이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어려운 데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다행스럽게도, 난 어렸을 때부터 이런 태도로 살지 않았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만들고 다듬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 도중에 축구를 배웠고, 하다 보니 인생의 태도가 축구에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위의 여섯 가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바뀔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또한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위의 여섯 가지 외에 여러 가지가 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찾아낸다면 본인만의 마인드셋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다.

축구를 배우며 삶의 태도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축구를 통해 삶의 태도도 살펴보지만, 과거보다 좋게 달라진 내 모습에 뿌듯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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