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필요한 것
왼발로 터치 후 오른발로 강하게 찼다. 골이다. 두 팔을 벌리고 패스해 준 친구에게 달려갔다. 박지성 선수 같았다. 비록 가슴 트래핑은 하지 않았지만, 한 발씩 써서 골로 연결한 모습이 마치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 전의 박지성 선수가 넣은 골 같았다.
축구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니, 처음 축구를 접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2002년 6월이었다. 그해 고3이었다. 체육시간은 자유롭게 보내는 시간이었다. 교실에 들어가는 것만 빼고는 다 할 수 있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는 친구도 있었고, 벤치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운동장을 걸으며 체력 관리하는 친구도 있었다. 월드컵 전에는 나도 그렇게 보냈다. 월드컵이 열리고 있어서 우리 반 중 몇몇은 축구를 하기로 했다. 우리 반에는 평범하지 않은 친구들이 많이 모였다. 문과 중에서도 예체능으로 진로를 정한 친구들, 직업반을 선택한 친구들을 한 반으로 몰았고, 그게 우리 반이었다. 다른 반 친구들은 적당히 쉬고, 머리를 식히는 시간으로 보내는데 우리 반은 체육 시간마저도 달랐다. 축구를 선택한 것이다. 모이고 모여 9 대 9로 진행한 걸로 기억한다. 그날은 딱 세 가지만 기억이 난다. 하나는 내가 넣은 골이고, 또 하나는 골키퍼인데 손으로 잡지 않아서 골 먹힌 거, 마지막은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는 1층에 있던 3학년 남자 문과생 친구들이 창문을 넘어 운동장으로 나오는 모습이다. 평소에 말도 잘하지 않는데, 여학생 반 중에서 유일하게 축구를 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우리는 가장 가까운 현관을 두고 돌아 들어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포르투갈 전을 보고 난 이후에도 딱히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박지성 선수의 골을 보며 나도 저렇게 넣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해 본 적도 없다. 학창 시절에 딱 한 번, 축구를 배우기 전에 딱 한 번 축구를 해봤다. 그날, 공이 나에게 오는 순간, 포르투갈 전처럼 공중볼로 오면 완전 박지성 선수처럼 넣을 텐데 하며 공 쪽으로 다가갔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왼발이 약하기 때문에 한번 툭 쳐놓고 오른발로 슛을 때렸다. 이 골이 마치 박지성 선수가 넣은 골 같았고, 이 덕분에 축구에 대해 좋은 감정이 생겼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한 번씩이면 생각이 나는 골. 어쩌면 이때의 좋은 감정이 내가 센터에서 '성인(여성반)'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축구를 배우는 데 머뭇거리지 않았던 이유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면, 영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있다. 학원에서 만난 영어 선생님이다. 여자 선생님이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2년 동안 학원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때는 종합학원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수학과 영어를 연이어 들었다. 학원에 결석하고 싶은 날이 있었지만 빠지지 않았다. 영어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 매일 갔다. 엄마한테 핑계를 대더라도, 앞 시간인 수학만 빠지고 영어는 들으러 학원에 갔다. 쉬는 시간에 문 앞에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면 수학 선생님과 만난다. 내가 영어 선생님을 좋아하는 걸 아는 수학 선생님은 수학은 왜 빠지냐며 한 마디씩 하고 갔다.
학원에서 처음 영어를 접했다. 알파벳 발음은 어떻게 나는지, 요즘 말로 파닉스부터 배웠다. 지금의 파닉스 실력은 중1 때 만들어진 실력이다. 문법도 재미있게 배웠다. 첫째 아이에게 영문법을 설명할 일이 있는데, 이 역시 중 1, 2학년 때 배우고 공부한 실력 그대로다. 이 선생님께 배울 때 쓴 영문법 교재가 있다. 시험 때 책 분리해서 공부한다고 일부는 분실했다. 아직 이 책은 가지고 있다. 이제는 누렇게 변한 책이고, 뒷부분이 사라졌기는 하지만 첫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듯이, 영어를 좋아하게 만들어준 영어 선생님을 쉽게 잊을 수는 없다. 열심히 공부했던 교재 또한 안 본다는 이유로 버릴 수는 없었다. 신혼집으로 이사할 때, 남편이 집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 책을 버리려 했다. 영어 선생님인 형님이 옆에 있었던 게 다행이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면 허락받고 버리라 했다고 한다. 이사할 때마다 나와 같이 옮겨 다니고 있는 영문법 교재이다.
아쉽게도 선생님 성함 전부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 꾸미지 않는 모습, 지금 생각해 보면 수업을 재미있게 진행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나의 눈높이에서는 쉽게 설명해 준 선생님 덕분에 처음 배우는 영어가 재미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당사자가 아니고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집에서 공부한다. 25년도인 올해 초4, 초2가 된다. 학교 친구들을 보면 영어와 수학 학원은 기본으로 다니고 여기에 독서, 악기, 운동을 추가한다. 우리 아이들은 교과 과목은 집에서 복습하는 걸로 끝이다. 집에서 공부할 때 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공부 정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때로는 아이들의 모습에 답답하기도 한다. 이럴 때 내 감정을 꾹 누를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나는 애 둘을 보는 것도 힘든데 선생님들은 어떻게 그 감정을 다 받아줄까 싶어 물어봤다. 들려온 대답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저는 일이잖아요." 아이들 공부를 봐줄 때, 이 마인드를 심으려 한다. '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중이다. 엄마가 아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엄마의 기대가 줄어들어서일까.
또 있다. 아이들이 '좋은 공부 정서'를 갖게 하기 위해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나는, 삶의 목표를 물어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너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물어본다. 물어보는 일에만 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방법도 얘기를 나눈다. 그러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아이의 입에서 나온다. 엄마가 심어주는 '공부해야 해!'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 '내 꿈을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위함이다. 또 하나는, 주 6일을 원칙으로 하지만, 힘들어할 때는 양을 줄여준다. 일주일 내내 힘들다고 하거나, 또 무조건 줄이지는 않는다.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양을 줄인다. 대신, 못한 분량만큼은 남은 하루에 채워 넣는 걸 기본 원칙으로 한다. 그 주에 할 일은 다 끝내는 걸 철칙으로 두기 때문에 아이들은 무작정 줄이거나 빼먹을 수 없긴 하다.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 기준이 있는 덕분에 하기 싫은 날에 아이와 감정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은 칭찬과 보상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건 매일 해주면 좋다. 많이 들어왔듯이, 칭찬은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해 줘야 한다. 나도 백 점 맞은 점수보다, 어렵게 푼 문제가 있으면 그걸 더 짚어주며 칭찬한다. 보상은 중간중간 엄카 찬스를 쓴다. 편의점, 다이소, 문구점에 가서 삼천 원 한도 내에서 사는 것이다. 문제집 한 권을 끝냈을 때도 같은 방식을 쓴다. 이때도 노력에 대한 보상을 짚어준다. 최근에는 게임도 보상의 방법으로 제공한다. 게임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었다. 적당히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축구 게임을 주로 한다. 나쁜 내용과 영상이 담긴 게임을 하고 있지 않아서 보상으로 제공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 가지가 아니었으면, 나는 벌써 학원을 보냈을 것이다. 공부와 멀어 보이는 목표를 가질 때도 있고, 주 7일 매일 하게 해보기도 했고, 칭찬에 인색하고 보상도 작게 했을 때가 있었다. 같은 공부를 하더라도 이때보다 지금이 더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 아이들은 내가 좋은 공부 정서 때문에 하는 질문인지, 선물과 칭찬인지는 모른다. 이렇게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기특할 뿐이다.
내가 공부 방법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공부 정서'에 관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서울대 의대, 하버드대에 합격할 수 있는지 그 로드맵을 꿰뚫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엄마가 아무리 많은 정보와 노하우가 있다 하더라도 아이가 공부를 대하는 마음이 하기 싫다는 쪽이라면, 나는 오래가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확실한 로드맵을 모른다. 다만, 나와하는 공부가 즐겁고, 뿌듯하고 도전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이유로, 나와 공부한다고 했지만 집에서 하는 공부는 학교 복습과 연산 문제집이 다다. 최소로 시작해야 일단 학원 대신 나를 찾을 거 같아서. 우리 집에서 공부 정서는 결국, 최소로 하는 게 목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 문단의 처음으로 돌아가, 일하고 있는 나는 이렇게 해야 아이와 공부에서도, 그 외의 생활에서도 자녀와의 관계가 좋아지리라 믿는다.
생각해 보면, '공부 정서'가 좋았으면 하는 것도 엄마의 욕심이고 나의 바람이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내가 끌고 가는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을 위한다며 집에서 복습을 하고 있는데 끌고 간다는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초반에는 엄마(주 양육자)가 잡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초1부터 복습을 한 첫째는 초3 때, 혼자서 시험공부를 준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제 첫째는 내가 점점 코칭의 역할로 빠지면 된다. 그러면서 계속 꿈이 뭔지에 대해 물을 것이다. 주간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관리하고 있는지 점검할 것이며, 보상의 방법도 어떤 게 더 동기부여가 될지 앞으로 더 궁리해 볼 문제이다. 이런 방법이 결국 엄마가 시켜서가 아니라 공부에서 어렵고 힘든 점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엄마가 되게 해 준다고 믿는다.
처음으로 축구 한 날, 박지성처럼 골 넣어서 좋았다. 결국 지금 축구를 신나게 배우고 있다. 이제는 축구 없는 삶을 생각하기도 싫을 지경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하루를 잠과 글쓰기와 독서와 축구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처음 영어를 배울 때 선생님이 자세하고 이해가 쏙쏙 되게 설명해 주신 덕분에 시험 기간이 되면 알아도 또 보는 게 영어책이 되었다.
내 인생에 처음인 순간도 많을 테지만, 좋은 감정으로 계속 유지한 건 몇 개 안 되는 거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하는 공부가 재미있었으면, 흥미 있었으면, 성취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이다. 좋은 감정을 심어주고 싶어서 오늘도 엄마 빼고 선생님이 되어 본다. 좋은 감정을 갖기 위한 궁리를 아이들에게 맞춰 생각하고 적용한다.
여전히 좋으려면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감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첫 축구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