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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리듬

_알아차리면 좋은 것

by 벨리따

나만의 리듬이 그렇게나 중요할까 싶었다. 축구 경기를 보면 달리다가 더 빠르게 드리블하면서 달릴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컷백처럼 역동작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건 원래 리듬으로 가는 건 아니니까. 똑같은 속도로 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코치님과 수업은 오늘이 다섯 번째다. 첫 수업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나만의 리듬을 유지하는 게 중요’였다. 속도를 다르게 해야 할 때가 많으니 수업 시간마다 들었던 말에 크게 와닿지 않았다.

달라진 계기가 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코치님의 수업 스타일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도 이 부분을 파악하려고 했으나 처음에는 경험이 없으니 몰랐다. 총 다섯 번의 수업을 하면서 스텝 훈련부터 기본기 훈련까지 모두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스텝을 배우더라도 아무거나 연습하지 않는다. 다음 기본기 훈련에 할 동작에 필요한 스텝을 연습한다. 차근차근 단계별로 배우는 느낌이 든다. 공 없이 발만 연습하다가, 공 차면서 훈련하다가, 콘 세워놓고 사이사이 통과하며 속도를 높인다. 쉬운 동작부터 시작해 조금씩 강도를 올리는 이 훈련,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꽤나 괜찮다. 특히 초보자에게는. 그러니 이제는 이렇게 훈련하는 방식이 좋다를 넘어서 찬양하게 된다.

남편도 리듬을 강조한 적 있다. 리프팅을 할 때다. 공 간수를 잘하기 위해서는 리프팅이 기본이라고 했다. 그래야 내가 어떤 위치에서 날아오는 공을 받더라도 빼앗기지 않고 원하는 경기를 할 수 있다고 하며 리프팅 연습을 한 적 있다. 무조건 높이 찬다고 해서 잘 차는 리프팅이 아니다. 남편은 가슴과 머리 사이에 공이 오도록 찰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리듬이 필요하다. 일정한 세기로 공을 차야 하고, 그러기 위해 미리 준비 동작도 하고 있어야 한다.

리프팅, 스텝, 스텝을 바탕으로 한 기본 동작은 모두 나의 리듬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건 모두 내가 공을 잘 다룰 수 있기 위함이다. 뺏기지 않고, 우리 팀 선수에게 안정감 있게 공을 주거나 슛을 하기 위해서. 처음에 일정한 리듬이 되어야 속도 조절도 가능하다. 나는 선수들이 뛰는 경기만 보고 리듬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마인드맵 배울 때가 생각났다. 선생님은 큰 종이에 그려봐야 한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는 종이 크기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데 여기는 큰 종이를 굳이 고집한다. A4 용지도 허락하지 않는다. 8절 스케치북 크기는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지만 한 군데로 치우치지 않고 공간이 생겨 안정감이 있다고 했다. 이런 이유라면 작은 종이에 해도 되지 않나 싶었다. 종이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양의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많이 그려보면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처음 마인드맵을 배웠을 때만 해도 무조건 많이 그리라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이 역시 한 번 만에 ‘아하!’하고 깨우친 건 아니다. 초반 5장 중에 한 번은 제법 괜찮게 그린 날이 있었다. 그래서 더 큰 종이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공간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리면서 가지 사이의 간격을 신경 썼다. 의식하고 그리니 잘 안된다.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익숙한 작은 종이에 그려봤지만 이 역시도 비슷했다. 이제까지는 별문제 없이 그렸는데 왜 이럴까 하며 앞에 그린 마인드맵을 봤다. 그제야 공간이 보인다. 무조건 많이 그리고 있을 때에는 공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신경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다시 스케치북에 그린다. 중심 이미지의 위치부터 시작해 첫 번째 그리는 주 가지, 그다음에 그리는 부 가지를 간격에 신경 쓰며 그린다. 이렇게 그리니,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좌우, 상하 균형이 잡혔다. 이게 꼭 축구에서 나만의 리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과 같았다. 왜냐하면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먼저 자리 배치를 대략 구상해 본다. 또, 선 하나 그릴 때마다 미리 그려져 있는 선과 다음에 그릴 선의 위치를 생각하며 그었다. 스텝과 동작을 연습할 때 이미지로 먼저 그려본 후에 몸을 움직였다. 내 발에서 떠난 공과 공 따라 움직인 발, 다음 동작을 위해 남은 발의 동작까지 마인드맵 그릴 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리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니 나의 리듬이 생각이 난다.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면 리듬이다. 얼마나 잤는지가 아니다. 언제 잠을 자는지, 몇 시에 일어나는지에 관한 리듬이다. 체력이 받쳐줄 때만 해도 수면 시간 위주로 관리했다. 하루 다섯 시간 자면 괜찮았다. 젊었을 때는 몇 시간을 자는지로 관리해도 괜찮았다. 일을 시작하며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별도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서부터는 얘기가 달라졌다. 언제 잠드는지가 중요해졌다. 열두 시 전에 잘 때와 열두 시가 지나서 자는 건 일어날 때부터 차이가 있었다. 개운하지가 않았다. 열두 시 넘어서 자리에 누울 때는 대부분 한 시 넘어 잠자리에 들 때가 많았다. 열두 시에 침대에 누워있는지, 그 시간쯤에 잠드는지에 따라 눈 뜰 때 몸이 무겁고 아니고의 차이가 있었다.

취침 시간을 리듬으로 가지고 가면서 좋은 점이 있다.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니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감기가 걸리지 않은 건 아니다. 걸렸을 때를 보면 꼭 잠자는 시간이 들쭉날쭉할 때였다. 다시 침대에 눕는 시간만 일정할 수 있도록 유지해 주면 감기는 걸리지 않았다.

둘, 평일과 주말 리듬이다. 평일에는 내 시간으로 채운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 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지낸 건 아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일주일 내내 가족과 함께였다. 그러다가 내 일을 하고 싶고, 내 시간을 가지고 싶었을 때부터 점차 자기 계발 시간을 가지려 했고 이를 늘려갔다. 요즘 매일 하는 일은 글쓰기, 독서, 다이어리 쓰기, 칼럼 필사이다. 많았을 때는 여덟 개 이상도 했다. 이 모두를 다 하려면 집중해서 하더라도 최소 여섯 시간은 걸린다. 토, 일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가족들보다 조금 늦게 잔다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서 일부는 빼야 한다. 주말이 기다려지지 않아 졌다.

가족들 때문에 내 일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꾸기로 했다. 사실은 남들 때문이 아니었다. 내 욕심으로 인해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올해 11살, 9살인 아이들. 주말에 쉬고, 놀고, 어딘가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내가 나가자고 하지 않으니 경험 횟수가 줄어들었다. 여덟 개에서 줄여 꼭 필요한 일만 하기로 했다. 책도 하루에 두세 권의 책을 읽었는데 주말에는 한 권만 정해 읽고 있다. 길어도 두 시간 반이면 다 끝낼 수 있다.

가족들이 평일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다닌다. 나는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내 시간으로 채운다. 주말이 되면 때로는 같이, 어떤 주는 따로 보내기도 한다. ‘5+2’의 리듬이다. 이틀 덕분에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힐링도 한다. 매일 해야 한다는 점에 집착했다. 그래야 내 성장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성과도 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 가족생활 리듬에 맞게 움직이고 있다. 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행복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셋, 체중이다. 날이 추워지면 집에 있으려 한다. 추운 날에 밖에서 운동하면 더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고 기초 대사량이 올라간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살 빼기가 좀 더 수월하다는 기사를 봤다. 머리로 이해는 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추우면 나가기가 싫어진다.

12월에 원주천에 걸으러 나간 적이 있다. 인도 길이 얼어있다. 야외에서 운동하다가 다치면 안 된다. 하더라도 겨울에는 집에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봄, 여름처럼 집에서 달리기를 할 수 없으니 체중과 체지방은 늘었다. 그러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다시 근육량이 올라간다. 날이 한참 더울 때가 되면 체중까지 줄어든다. 그러다 추석을 기점으로 근육량이 또 올라갔다가 날이 추워지며 야외 운동을 줄이면 체중이 증가한다. 여름에 빠지고 겨울에는 찌는 게 내 리듬이다.

이걸 알고 나서 좋은 점이 있다. 쪄도 더 이상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운동 안 해서 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온도가 따뜻해지면 좀 더 많이 운동하자고 마음을 먹는다. 내 리듬은 마치 페디큐어를 하고 난 다음에 발가락 사이에 끼우는 보조 장치 같다. 일정 범위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이제는 괜찮다. 운동하는 목적이 살 빼기 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에 영향이 없다.

해낼 때도 있고, 달성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일이 잘 풀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계속 꼬이는 하루가 계속되는 날도 있다. 오늘 하루 중에 웃는 시간도 있고 마음이 좀 속상한 때도 있다. 살펴보면 나의 리듬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에도 리듬이 있다. 이러한 패턴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일정한 리듬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축구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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