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이를 바라보는 관점
2 대 1 레슨 받았다. 수강생 중 두 명은 미리 참석하지 않는다고 연락했다고 한다. 센터에서는 오늘 수업을 세 명 예상했다. 실제로는 두 명만 참가했다. 시작하기 전부터 오늘 수업은 힘들겠다고 말했다. 스텝을 해도 차례가 빨리 돌아와 숨 고를 시간이 없다. 미니 경기에서는 더더욱 없다. 제대로 훈련하기 전부터 호흡을 걱정한다. 게다가 2주 만에 수업이다. 설날에 음식을 많이 먹었고 좀 더 무거워진 몸으로 왔으니 힘든 건 당연한 일이다.
목요일 오후부터 눈이 내렸다. 순식간에 쌓였다.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러 잠깐 밖에 나가 노는 동안, 눈 잡는 순간에 알았다. 세 시간 동안 적어도 5센티미터는 쌓였다. 다음 날 아침, 도로에는 제설차가 다니지 않았다. 원주에 이사 온 이후 이번 겨울에 제설차를 자주 못 본 것도 처음이다. 출근하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나갈 일이 있냐고 묻는다. 마트와 둘째 아이 학원 등, 하원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남편이 오후에 나올 수 있다며 나보고는 집에 있으라 한다. 내심 기대했다. 오늘 공 차러 못 가겠구나. 나처럼 이런 마음으로 안 오려는 사람도 있겠지. 결석자가 더 많으면 휴강할 수도 있겠다. 이번 주에 잠도 많이 자지 못했는데 다행이었다. 저녁이 다 되어서 남편에게 말하니 이제 도로에는 눈을 다 치웠다고 한다. 이런 날에 더 배우러 가야 한다며 내가 나갔으면 하는 그였다. 하긴, 나 이번 주도 빠지면 다음 주는 3주 만에 가는 건데 그러면 더 힘들 거 같아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온 몸이었다.
"2 대 1 레슨인데요?" 같이 배우는 수강생의 말이다. 특별한 일 없으면 안 빠지는 우리 둘이 나왔다. 평소에는 세 명 이상 수업한다. 그때도 레슨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중 한 명이 오지 않았을 뿐인데 더욱 고급 과외 느낌이 난다. 기분이 달라졌다. 학원 수업의 수강료를 내는데 소수 정예 과외를 받고 있는 듯해서. 이 한 마디로 힘든 건 사라졌다. 그 이후론 다 좋게 느껴졌다.
우선 둘이서 하니 내 차례가 빨리 오는 건 맞다. 이게 좋다기보다는 내 앞사람의 동작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나보다 그녀의 실력이 좀 더 낫다. 나는 동작 하나를 하더라도 뚝뚝 끊기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수강생이 많을 때는 그녀의 자세를 보지 못한다. 연이어 출발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대부분 보았다. 코치님의 동작을 따라 해야 맞지만, 설명을 듣고도 일단 먼저 몸으로 해볼 때, 그녀의 동작, 방향, 자세는 도움이 된다. 레슨도 받고 같이 하는 사람의 자세를 보며 배우니 일석이조다.
어떤 일이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명 수업이네, 괜히 왔어. 세 명인 줄 알고 왔는데 한 명이 결석을 할 거면 미리 얘기 좀 해주지. 두 명이라서 오늘 미니 경기까지 뛰고 나면 숨이 차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과외다. 이런 날에 나한테 피드백 좀 더 해 줄 수 있다. 언제 전문가에게 2 대 1로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괜히 왔다가 아니라 잘 온 거라고 생각하니 수업이 힘들지 않았다. 2 대 1로 주고받는 패스 연습한다고 뛰어다니면서도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실패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나를 좌절하게 하고 살아갈 의욕을 꺾게 만드는 게 아니다. '나는 못 하고, 안 되는 인간이야.' ' 나 같은 게'라는 생각보다 못하고 안 되는 벽에 부딪힌 일을 바탕으로 무엇을 배웠고, 부족한 점은 무엇이며, 보완해야 하는 건 어떤 게 있는지 정리하는 시간이 중요해 보인다.
불행하게도, 나는 실패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일이 있었음에도 그 일은 다 지나왔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는 이유도 있을 테다. 꼭 인생이 고꾸라질 만큼의 아픔, 고통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완만한 둘레길같이 조금 벅찬 순간과 평탄한 산책을 걸어왔으리라. 이런 작은 일을 잊고 지낸 게 첫 번째 이유이며, 여기서 배움을 찾지 못한 게 두 번째 이유라고 본다.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내고, 내 삶에 적용하여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잊고 살았다. 실패를 그냥 넘겼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겠다. 세 번째는 그만큼의 도전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꼭 실패가 아니라 도전해서 성공한 일도 있을 건데 둘 다를 떠올리기가 쉽지가 않다. 그 말은 성공 경험, 실패 경험이 극히 드물다는 말이고 이는 곧 도전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안타까운 일은,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이는 역시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크다. 젊었을 때는 돈과 건강 모두 기회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 돈이 곧 가족의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도전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나이가 찼을 때 한 실패는 자신감도 떨어지지만 체력이 떨어지고 덜 움직이게 한다. 이는 곧 건강까지도 위협하게 된다. 재면서 덜 위험한 방법을 찾지만 이는 결국 도전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에게도 장, 단점이 있듯이 새로운 일은 늘 도전과 실패가 있기 마련이다. 마흔이 지났다. 내 나이, 아직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는 나이이다. 지인은 주부로 지내다가 독서 교육 강사를 도전해서 학교와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부모를 대상으로 수업한다. 그때 처음 도전했던 그녀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해도 되고, 그게 반드시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아도 된다. 처음 하는데 실패하지 않는다면, 나는 자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히려 실패를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겠다.
나이가 들어 경험이, 지혜가, 노하우가 쌓인 만큼 도전의 용기도 채워졌으면 좋겠다.
나이 먹을수록 의미 없는 인간관계가 정리되듯 실패가 곧 배움이라는 걸 심플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려 하지 말고 이제는 내가 그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축구하면서 말 한마디로 인해 생각 하나가 바뀌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걸 배운다. 도전에 대한 관점마저도 이 기회로 달라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