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밸런스

_부부 사이에 필요한 태도는 존중

by 벨리따

오늘은 밸런스 볼이다. 원을 반 자르고 평평한 면을 바닥에 향하게 한다. 윗부분은 고무로 되어 있다. 밸런스 볼 제품은 시중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 용품이다. '나 혼자 산다' 황희찬 선수 편을 보면서 축구 선수도 밸런스 훈련을 한다는 걸 알았다. 그는 한 발로 그 위에서 균형 잡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한 발로 서서 공중으로 날아오는 공을 패스 주거나, 터치 후에 패스를 했다. 중심이 무너질 것 같은데 발로 땅을 딛지 않았다. 중심 잡으려 버텼고, 그렇게 하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저게 저렇게 어려운 건가 싶기도 했다. 그가 수월하게 하니까 그런 거겠지만.

오늘은 훈련의 첫 시간인 스텝 연습 때 밸런스 볼이 있었다. 출발선에. 쉬워 보였던 그 훈련을 하는 그 날이 온 건가 싶었다. 2주 전이었던가. 점점 나인도를 올린다고는 했지만 갑자기 올리는 느낌도 들었다. 첫 훈련부터 만만치 않겠다 싶었다. 한 발로 균형을 잡고 서 있으려니, 딱딱한 바닥이 아닌 고무라 그래도 아직 발목도 아프다. 지난주에는 훈련도 쉬워서 발목에 더 무리 가겠다며 미리 겁도 먹었다.

그냥 한 발씩 점프만 하는 거였다. 밸런스 볼 왼쪽 옆에 서서 오른발로 위에 올라갔다가 왼발로 바꾸고, 오른발을 땅에 디디면 된다. 왼쪽으로는 반대로 하면 되는 거였다. 괜히 졸았다. 이런 훈련이면 우리 수준에도 맞다. 그래도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집중하지 않으니까 다음 발에 영향이 갔다. 중심이 무너져서 상체가 흔들렸다. 그 모습을 코치님이 봤다. 이 때문에 밸런스 볼 위에서 연습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방금 상체와 양 팔이 앞과 옆으로 중심을 잡으려 했던 것처럼 내 삶의 밸런스가 무너진 적도 있었다. 그땐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해 고민했었다. 아이 둘을 낳고 독박 육아를 하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출장이 잦았다.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출장을 가지 않아 퇴근 후에 집에 오더라도 씻고 나면 침대로 가서 누웠다. 남편이 와서 요리나 설거지를 덜 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 밥 먹이는 일이 남편에게 넘어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위한 반찬을 만들어야 하니 평소보다 더 늦게 저녁을 먹었고, 더 늦은 시간에 잠자러 방에 들어갔다.

이때 난, 남편의 상황이 이해가 가면서도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지난주부터 아이들이랑 놀지도 않았으니까 오늘은 좀 놀겠지.' '내가 저녁 준비를 하니까 남편은 설거지를 하려나?' 세수하고 발 씻고 나면 그는 말한다.

"미안한데, 먹기 전까지만 좀 쉴게." 밥 먹은 후에는 "오늘 설거지 좀 부탁해."

또 아이들 보지 않는다. 그러고 그가 방에 들어가면 애 둘은 어느새 주방에 와서 내 이동 경로에 앉아 있다. 요리도 하며, 애들 신경 써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집에 일찍 오는 날의 대부분을 이렇게 보냈다. 속에서는 끓어오른다. 내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고 괜히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던 적도 있었다.

이 또한 내 삶이라 생각했다. 참기도 했지만 참아서는 불만이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쌓여만 가니 우리 둘 사이는 연애할 때만큼 달달하지 않았다. 결혼 날짜 잡았을 때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안동에서 대구에 와서 데이트도 했던 그였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일찍 들어오는 사람이 되었다. 그마저도 와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말이다.

지나고 돌아보니 나한테 문제도 있었다. '기대'였다. 일찍 들어오지 않을 때에는 퇴근하고 바로 집에 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7시에 집에 오면 같이 해 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뭘 해야 하는지 하나씩 얘기하기 전에 알아서 해주길 바랐다. 그러지 않으니 불평은 쌓여갔고, 입은 툭 튀어나왔다. 누워서 폰만 보고 있는 그에게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겠지라는 마음을 가진 게 문제였는지도 모르고. 이 희망 하나가 부부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걸 힘들게 했다. 알고 나서는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내가 속상한 일도 없겠지 싶었다.

그렇다면 기대하지 않기 위해 어찌해야 할까? 내 성향상 나는 아예 돌아서 버린다. 기대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는 내 눈에 그가 들어오지 않게 했다. 사실 뭐 큰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다. 출장을 가거나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 사람이니까. 오히려 적극적으로 보내주면 내가 그를 볼 일이 없을 테고, 그러면 내가 그에게 기대할 게 없었다. 다만 내가 힘들어서 일찍 왔으면 하는 날에는 미리 연락을 했다. 이런 이유로 이 기회는 아껴 썼다. 아이들이 크면서 말 듣지 않는 날도 많아졌고, 둘이 싸우는 날은 허다했다. 지금 내가 뭐 하고 이렇게 살고 있냐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버텼다. 매일 이런데 자주 연락하면 그의 신뢰를 잃어버릴까 봐.

이런 상태로 여러 날,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났다. 우리의 밸런스가 다시 맞춰지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내가 마음을 먹었을 땐, 애들도 내가 보고 집안일도 내가 할 거라 생각했었다. 육아하면서 누군가 희생해야 하는데 그거 내가 할 테니까 당신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마음이었다. 그는 재미나게 살고, 나는 그냥 버티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좁히려 할 때가 나았을까? 이제는 둘의 거리마저도 멀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모임을 줄였다. 나는 이미 가라고 했으나 그가 약속을 잡지 않은 것이다. 일부러 집에 왔다. 피곤해서도 아니었다. 내가 고생이 많다고 했다. 어떤 날은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말만 이렇게 하는 줄 알았는데 설거지, 분리수거도 한다. 주말에는 하루 세끼 다 준비한 적도 있었다. 결혼했으니 이전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 수 없다고 얘기할 때는 싸웠다. 싸우는 게 싫어서 입 다물고 혹시 하는 마음 갖고 있을 때도 변하지 않았다. 자꾸 집으로 오게 할 때보다 풀어놓으니 그가 달라졌다.

이유가 뭘까. 한 번씩 회사 직원들의 얘기를 들려줬다. 여직원들, 그들은 우리보다 결혼도 육아도 먼저 한 선배다. 그들은 얼굴도 보지 않은 나를 그렇게 칭찬한다고 한다. 결혼 잘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남자 직원들 중에서 기혼자는 눈치 보지 않고 약속을 잡는 그에게 아내가 뭐라 하지 않냐고 묻는다고 했다. 결혼 전인 남자 직원들은 형수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말했다. 난 포기한 거라고. 지금 모습을 보고 처음부터 좋았을 것이라 판단하지 말라고.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둘 다 좋은 상황은 아닌데 들으면서 슬프기도, 좋기도 했다. 좋아한 이유도 웃긴다. 주부로 지내며 내 존재 가치라는 걸 인정해 준 사람이 없는데, 그걸 느끼게 해 준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도 분명 달라진 이유는 되겠지. 들으면 생각이라는 걸 할 테니까.

나는 다르다. 희생, 포기를 좋은 말로 바꾸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태도'라 할 수 있겠다. 내가 한 건 실제로 희생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아이들도 보기로, 집안일도 하기로 한 거다. 반면 남편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모임에 가면 주위 사람들은 칭찬을 해준다. 집에서는 인정을 해주지 않으니 그 욕구를 밖에서 풀었다. 그러니 그는 집에 들어오기가 싫었던 거다.

희생, 포기, 무관심, 존중의 형태로 시간을 보냈더니 남편은 결국 가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우리 둘의 밸런스도 맞춰졌다. 중간에서 만나려고 싸우다가, 양극으로 보내고 보내졌다가, 중간 어디쯤에서 만났다.

밸런스 볼에서 균형을 유지할 때 적당한 통제와 훈련이 필요하다. 균형을 잡아야겠다고 몰입해 버리면 몸에 힘이 들어가 결국 무너진다. 공이 오는데도 균형만 생각하다가 찰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그렇다고 쉽게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균형을 유지해야 드리블, 패스, 슈팅 자세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상대 선수와 몸싸움도 밀리지 않는다.

부부 사이에도 균형은 중요하다. 누구 한 명이 희생하는 느낌을 받으면 그건 균형을 유지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대화도 중요하지만 강요나 의무가 아닌 자율적인 방법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존중이다.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말이 더 부드러워지고 싸움이 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배우자가 인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편도 외부에서 받고 싶었던 게 인정이니까. 내가 그를 존중함으로써 그는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밸런스 볼로 훈련하며 우리 부부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지낸지도 3년이 지났다. 마음이 조금 시들해질 수도 있겠다. 과거의 시간을 떠올려 보며 앞으로도 존중을 첫 번째 태도로 가져가려 한다. 축구를 통해 존중의 가치를 알아간다.

keyword
이전 16화소중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