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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치인

_나이만 먹은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by 벨리따

"이런 태도로 할 거면 축구하지 마!"

축구 수업을 다녀온 아이. 선수반에 들어가서 훈련한 지, 21개월째다. 주 4회 가고, 90분 수업을 들으면 체력도 좀 키워지지 않았을까? 축구를 시작하기 전보다 더 게으름을 피우는 요즘이다. 요즘도 아니다. 일 년 되었다. 축구 다녀오고 나면 바로 씻지 않는다거나, 숙제와 복습을 미루는 일이. 오늘은 샤워를 바로 하지 않는다. 나도 다른 날보다 더 힘든 훈련을 받는 날이 있어서 이해는 한다. 잔소리가 나올 뻔했지만 잔소리도, 소리 높이는 일도 참았다. 십 분이 지나도 씻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 축구 수업 갈 준비를 해야 해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또 십 분이 흘렀다. 그대로다.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서 쉬는 건 아니다. 훈련이 끝났으니까 스트레칭을 하지도 않는다. 폼 롤러로 근육을 풀지 않고 있다. 동생이 하는 두더지 게임을 보다가 번갈아가면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한다니까? 그런데 게임은 아니야. 훈련이 힘들어서 쉬는 것과 게임한다고 일어나지 않는 건 다른 이야기다. 결국, 아이에게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다녀와서 씻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힘들어서 쉬는 건 이해하겠는데 게임은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이 순간 나를 더 화나게 만드는 건, 눈과 손이 게임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했다. 엄마가 말하는데 게임 때문에 말하고 있는데 바로 안 끄고 뭐 하냐고. 그만두라고 했다. 계속 이렇게 할 거면 엄마는 축구 안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아이에게는 진짜 그만두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줬다. 나는 내뱉고 후회했고, 수업 가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땀 흘리고 와서 왜 집에 오면 바로 옷을 챙겨 씻으러 가지 않고 앉아 있을까. 이해는 하지만 적정 시간이라는 걸 넘어서지 않고 알아서 씻으러 갈 수는 없을까. 꼭 씻는 일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미루었다. 지금처럼 샤워든, 공부든. 그렇다고 모든 일을 마지못해 한 건 아니다. 지금 축구 중계해 줄 거라는 말에는 바로 티브이 리모컨을 켜서 채널을 찾는다. 그렇다고 축구에 환장을 한 건 아닌 것 같다. 주말에 축구하러 가자고 하는 건 대부분 나와 남편이기 때문이다. 축구하는 게 좋다면 주말에 집에 있을 때 아이가 나가자고, 운동장에 데려다 달라고 졸라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부탁한다. 나가서 연습하자고. 실력 키우자고.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는 많지 않으니까 미루고 싶은 마음 이해는 한다. 축구는 좋아하면서도 주말에 나가자고 하면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걸 봐서는 또 그리 간절하지 않은 건가 하는 이런 생각도 든다. 아직은 축구를 좋아하는 만큼 공부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공부가 하기 싫으니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도 좀 덜 보여주는 건가 혼자 오만가지 상상을 하며 축구 클럽에 도착했다.



십 분 늦었다. 애한테 한 마디 한다고 집에서부터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다. 오늘 수업은 스텝 후부터 계속 뛰었다. 전력 질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걷지도 않았다. 삼십 분 운동하고 나니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른 날은 한 줄로 서서 처음에 선 사람부터 한 명씩 훈련을 시작한다. 내 차례가 오면 드리블을 하면서 배운 기술을 연습한다. 오늘은 세 명이 동시에 시작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 하는 모습을 볼 시간, 숨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삼십 분을 이렇게 하고 나니 머릿속에서 '오늘 훈련 힘들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시환이가 생각났다. 좀 전까지만 해도 씻지 않는다고 뭐라 했었다. 시환이도 이런 날에는 집에 가면 쉬고 싶은 마음이 있겠다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뱉지 말아야 할 말을 한 점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언제 씻으러 갈 건지 질문할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내일 아침에 만나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겠다는 생각까지 이른다.

이어서 한 훈련도 쉴 틈은 없었다. 중간에 훈련하는 사람이 있고 양쪽에 있는 두 명은 공을 던져줬다. 공중에서 날아오는 공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던지지 않을 때 쉬는 시간이지만 길지 않았다. 빨리 진행하기 때문이다. 공 던지는 일도 집중해야 한다. 중간에서 공 받는 사람이 매번 다르게 오는 공을 예측해서 받아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을 막 던질 수는 없다. 상대가 잘 받을 수 있게 던져줘야 한다. 스텝 훈련 후 미니 경기하기 전까지 다른 날보다 움직이는 게 더 많았다는 뜻이다.

미니 경기는 십 분을 채 하지도 않았다. 중간에 숨이 차서 빨리 골키퍼로 가고 싶었다. 인원이 세 명이니까 누구든지 득점하면 골키퍼를 바꾼다. 번갈아가면서 하는데, 내가 뛰는 사람일 때는 빨리 공을 넣어버리고 싶었고, 골대 앞에서 막을 때는 먹히지 않으려고 공에 집중했다. 수업이 끝나는 호루라기가 울리고 나서는 호흡을 가다듬고 신발을 갈아 신으러 나와야 했다.

다시 시환이한테 미안함을 느낀다. 나도 훈련 이렇게 하면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시환이 마음은 왜 몰라줬을까 싶다. 나는 앉아서 사십 분을 스마트폰 쳐다보고 있을 때도 있었는데, 시환이가 이십오 분 두더지 게임하는 건 왜 참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나이만 먹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데 오늘 내 행동은 그냥 나이 먹은 어른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하면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해 본다.


첫째,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부터 해야겠다. 무슨 일이든, 설령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말로 또는 마음속으로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이해가 되기도 하고, 내가 비슷한 상황일 때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이들과 요즘 많이 부딪히는 게 공부, 남매 다툼, 습관, 축구인데 이럴 때마다 내 어릴 적을 돌아보려 한다. 내가 낳은 아이이니, 나와 남편의 공부, 습관 DNA도 물려받지 않았을까? 내가 어렸을 때 오빠와 싸운 일을 생각하면 지금 아이들에게 말 예쁘게 하자고 말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요, 그럴 수도 있는 거죠'라는 마음을 가지면서 흥분의 속도를 늦춰보려 한다.


둘째, 목소리를 낮춰야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가 큰 목소리로 말하면 눈이 커져서 쳐다본다. 그리고 엄마 말을 잘 듣는데, 그건 이해해서가 아니라 그런 엄마의 모습이 무섭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었다. 한데 난 변하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이 커가면 나보고 한마디 할 것 같다. "흥분하면 진다던데"라고. 시환이가 동생한테 답답해하면서 말할 때, 말 빨리하지 말고 목소리 높이지 말라고 한다. 차분하게 얘기하자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한다. 일단 목소리부터 깔고 가야겠다. 이렇게 하려고 하는 이유는 아이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면 평소와는 달라진 모습에 아이가 의아해할 것이고,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을까? 내가 흥분해서 목소리를 크게 낼 때는 내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좀 더 작게 이야기하면 아이의 말과 행동과 마음을 한 번 더 살펴보지 않을까 싶다.


셋째, 질문하기이다. 두더지 게임을 끄라고 말했다. 명령이다. 마지막에는 그럼 이제 씻으러 가라고 했다. 이 또한 명령이다. 부모는 아이가 자기 주도권을 쥐고 살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존재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내 말에는 내 생각이 더 많이 담겨 있다. 그래서 명령으로 나온다.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오지도 않았고, 들어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나를 위해서 바꿔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바른 모습이 되고 싶다. 뒷모습까지도 그러고 싶은데 엄마도 처음이고, 축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의 엄마로서도 처음이니 시행착오가 많다. 내가 축구를 배우면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느낀다.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오늘은 축구를 배우며 성장하고 발전하는, 지혜가 있는 어른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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