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내가 응원하는 팀은 졌지만, 축구 경기를 보러 온 목적에 맞춰 본다면 오늘 이 축구 경기 관람은 의미가 있는 하루였다. 린가드 선수가 뛰는 모습을 봤으니까. 3월 15일 토요일, 춘천 송암 스포츠타운 종합 경기장에 갔다. 강원 FC와 서울 FC의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다. 올해 K리그가 개막하고 홈경기 일정부터 살펴봤다. 그중, 작년부터 가고 싶었던 서울 FC와의 경기가 있었다. 남편도 보고 싶어 했다. 린가드 선수뿐만 아니라 기성용 선수도 보고 싶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2시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오전에 한 시간만 훈련하고 온다던 남편과 시환이는 1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리프팅, 골 연습을 했고 달리기 자세를 배웠다고 했다. 씻고, 점심도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무리 물 끓이고 면발을 넣으면 된다 하더라도 먹고 정리까지 다 해서 출발하려고 하니 2시 50분이었다. 내비게이션에는 4시 7분에 도착한다고 했다. 아무리 단축시킨다 하더라도 경기 시작 삼십 분 전에 도착할 듯하다. 바로 인근에는 주차할 곳이 없으니 주차하고 걸어가면 처음부터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남편은 티켓 발권하는 곳에 줄을 선다. 내가 예매할 때는 모바일 티켓으로 구매했는데 혹시나 싶어 물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모바일로 하지 않았냐고 했다. "표 사진 찍어서 자기 SNS에 올리라고." 옆에 있던 커플이 웃었다고 한다. 남편이 티켓 발권하는 동안 나는 줄을 서기로 했다. 시환이가 화장실이 급했기 때문이다. 밖에 찾아봐도 화장실은 보이지 않아 시간을 단축할 겸, 입장하는 곳 근처에 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본부석 W석으로 예매를 했는데, 생각보다 줄이 길었다. 발권한다고 해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전에는 일찍 와서 길게 줄 서지 않고 들어갔는데 임박해서 오니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중간중간에 시환이한테 참을 수 있냐고 몇 번 물어봤다. 그 사이 남편이 왔고, 얼마 있지 않아 한 줄이 더 생겼다. 마트에서 계산할 때 줄이 길면 옆에 계산대로 이동하는 것처럼. 지나가면서 뭐라 말을 했는데 제대로 듣지 못해 남편이 혼자 갔다. 오라는 손짓을 보낸다. 종이 티켓을 구매한 사람들은 별도의 줄에서 입장하게 했다. 덕분에 좀 더 빨리 입장했다. 처음부터 모바일 티켓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경기장에 오자마자 줄을 섰더라면 조금 더 빨리 입장했으리라 본다.
자리 찾아가는데 중계석에 익숙한 두 명의 얼굴이 보인다. 현영민 선수와 배성재 아나운서다. 이미 중계를 시작해서 지나가며 보기만 했다. 슈팅스타에서 현영민 선수를 봤기 때문에 여기서 보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축구 선수를 보다니. 다음에는 종이, 펜도 준비해 와야겠다.
자리 잡아 앉았다. 경기 시작 전이다. 시축 행사부터 봤다. 오늘은 아이돌 싸이커스가 왔다. 누군지 몰라 명수만 헤아렸다. 열 명이다. 멤버 중 한 명이 강원 FC의 팬인가 보다. 이들은 전반전이 끝나고 축하 공연도 했다.
경기를 처음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밖에서 기다릴 때 킥오프부터 보고 싶다는 생각했었기 때문에 더 감사하다. 오늘 우리 자리는 서울 FC 벤치의 뒤쪽에 있다.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끼리 동그랗게 모였을 때 린가드 선수를 봤다. 눈앞에 있다니 신기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EPL 출신의 선수 경기를 볼 수 있을까. 후반전에 공격 방향이 바뀌면서 린가드를 더 자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응원은 강원 FC를 하고 있지만 린가드가 코너킥을 찰 때는 동영상을 찍었다.
그가 처음 한국에서 뛴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사실 그때는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며칠 동안 신문 기사가 올라왔고, 대단한 선수가 오는구나 싶었다. 아쉬운 건 부상이다. 최근 1년 동안 경기 출전을 많이 하지 못했다. 본인의 사업 확장을 위해 일부러 한국으로 왔다는 말도 있었지만 린가드는 말했다. 본인이 뛸 수 있는 곳이 첫 번째 조건이라고. 영입 이후 초반에는 수술과 재활 훈련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이를 두고 연봉과 부상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오늘 축구를 보면서 린가드 선수는 축구에 진심이라는 점이 느껴졌다. 열심히 뛰었기 때문이다. 설렁설렁 뛰지를 않았다. 공격할 때는 공간에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가끔 거친 장면도, 감독에 항의하는 듯한 광경도 보이긴 했지만 이 역시도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자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보고 싶었던 선수이고, 또 기대한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니 그에게 고마웠다. 본인의 자리에서 멋지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린가드 선수의 경기를 보고 감명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 책임감이 있는 선수로 보였기 때문이다. 간혹 축구 팬들이 분노할 때가 있다. 유럽 축구팀이 프리시즌 투어로 한국에 왔을 때, 그 팀의 대표 선수가 벤치에 있을 때가 있다. 그 경기를 예매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특정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려고 구매하는 사람도 있다. 그 팀을 또는 그가 속한 나라의 국가대표 경기를 보러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한국에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옆 나라에서도 뛰었던 그 선수가 한국에서는 벤치를 지키는 것이다. '노쇼'라는 비난을 피하기가 힘들다. 자세한 내막을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선수도, 구단도, 에이전시도 알지 않을까. 린가드 영입 확정이 되고 나서 유니폼을 구매하려고 몇 시간 동안 줄을 섰다고 했다. 단순히 마케팅 용도도 아니었고, 선수도 그의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었다. 뛸 수 있는 곳에 가겠다고 했던 그는 그의 말에 책임을 졌다. 이 모습에 열정도 느껴졌다.
둘, 전문가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경기 때 저렇게 뛰고, 공을 찬다는 건 평소에 훈련을 얼마나 할까 싶었다. 성공의 맛을 본 사람 중에는 계속 성장해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꺾이는 사람도 있다. 일정 수준으로 실력을 갖춘 후에 노력을 덜 하고, 자만하면 후자에 속한다. 린가드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최고의 모습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겠지만 끝까지,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 보이는 모습이 이러하면, 훈련하는 동안에는 어떨까.
셋, 그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직접 보는 나는 감명 깊었다. 같이 뛰는 선수들은 어떨까. 그가 뜀으로써 다른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상대팀은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될 것이고.
책임감, 전문가, 긍정적인 영향. 이 세 가지로 인상 깊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를 돌아본다. 나는 내 자리에서 책임감 있게, 전문가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보이며 살았는가, 또 살고 있는가. 아쉬운 시절이 있다. 둘째 태어나고 나서부터이다. 17년 하반기부터 21년 하반기까지이니까 대략 4년이다. 육아와 집안일을 할 때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지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언제면 끝이 날까 시계만 쳐다봤다. 오늘은 언제 잘 수 있는지, 스무 살이 되면 아이들 다 독립시켜 버리겠다며 생각했던 날들이다. 아침에 눈 뜨면 아침밥을 차렸다, 정리하고 나면 놀고, 청소도 잠깐 하고, 재우기도 한다. 점심을 허겁지겁 먹고 나면 아이가 자는 동안 이유식을 만들고, 놀다 보면 첫째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때부터는 전쟁이다. 한 명은 놀아줘야 하고, 한 명은 마지막 낮잠을 재우는 시간이 있다. 저녁도 준비하고, 아이도 씻겨야 한다. 자기 전에는 그림책 읽기까지. 매일 같은 일을 하는데 회사 다닐 때처럼 뭔가 매듭짓는 느낌이 전혀 없다. 일하러 가고 싶었다. 안 할 수 있으면 그러고 싶었다. 부모라는 의무감으로 아이를 봤다. 남 탓과 세상 탓을 하는 초보처럼 지냈다. 한숨과 무표정으로 보내니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기도 했다. 린가드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책임감, 전문가, 선한 영향력에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우선 책임감, 일부러 환경을 설정했다.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내가 챌린지를 운영하거나, 참가하거나 또는 SNS에 인증하는 방식이다. 알아서 해야 할 일을 척척해나가면 좋겠지만 사람의 마음은 유약하다. 아직 나를 갈고닦아야 한다. 환경을 설정해 해내고 있다. 미루지 않기 위해 먼저 하고 집중해서 하려 한다. 전문가, 10년 육아하면서 육아와 관련해 할 말이 생겼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3년째 매일 쓰면서 기획, 주제, 쓰는 방법, 본질 등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이제 이를 정리하여 글과 말로 계속 전달할 일만 남았다. 선한 영향력, 매일 글을 쓰고, 다이어리를 써서 포스팅을 한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 여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모습 계속 보여주려 한다.
린가드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떠한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4년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4년 후에는 자신 있게 세 가지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