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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 충실

_확정된 예고, 미래는 모르니까

by 벨리따

지난 주에 못한 수업을 보강한다고 한다. 갑자기 보강? 우리 결석해도 보강 얘기 한 번도 없었는데. 4월 5일이라고 한다. 4월에 금요일이 다섯 번 있었나 싶었다. 해가 바뀌면 1월부터 12월까지 달력을 넘기며 본다. 매주 들어야 하는 수업이 있는 요일인 월, 수, 목, 금요일이 한 달에 몇 번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 달에 네 번만 수업하는 과정이 있는데 축구 수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내 기억으로는 4월은 아니었는데. 이런 생각도 잠시, 성인 여성반 수업이 인원이 적어 보강을 마지막으로 수업 요일을 변경한다고 한다. 이는 별도로 통화해서 잡는다고 했다. 예상하는 변경 요일을 물어보니 아직 나온 요일이 없다고 한다.

23년 9월쯤, 여섯 명 정도였나. 그 뒤로 네 명, 다섯 명이 왔다 갔다 하다가 3월부터는 세 명이 듣는다. 이 인원으로 들은 지 이제 한 달째인데. 아이들 수업에서는 열 명 모집에 세 명만 모여도 개설이 가능한데 우리는 세 명이 있다고 없애버렸다. 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 수업 요일을 옮길 예정이고, 아직 그 요일일 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 아이가 선수반을 다니다가 3월 초에 그만두고 다른 클럽으로 옮겼는데 성인 여자반 수업을 바꾸는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아이가 그만둘 때 나 보고는 계속 다니라고 하지 않았나.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뭔가는 달라져야 한다는 말인데. 뭘 바꿀 건가. 찝찝한 마음이 있는 상태이지만 괜한 상상력 동원하는 일은 그만두고 남은 수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3월 마지막 수업 시간에 알려주지 않아서 고맙다. 이 수업은 금요일에 하고 있으니 대구를 2박 3일 일정으로 가는 날이 드물다. 내가 축구를 배운 후부터는 토요일 오전에 출발했다. 금요일에 모임이 있는 날이면 그 모임은 빠졌다. 이제 금요일 행사도, 대구로 2박 3일 일정으로도 다녀올 수 있다. 미리 알려준 덕분에 4월 주말 일정을 짜기도 수월해졌다.

예고는 미리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 예고와 관련된 일 다섯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 책의 결말을 알고 읽는 일에 대해 의견을 낸 일이다. 매주 목요일 새벽에 민음사피아 독서모임에 참여한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소설을 읽는 곳이다. 세계문학 전집에 있는 책을 주로 읽는다. 리더는, 책을 책장에 꽂아두면 인테리어 효과도 있기 때문에 민음사 책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모임은 3년이 되었고, 나는 작년 6월 중순부터 참여했으니 9개월째이다.

책 한 권이 끝나서 새로운 책을 읽어야 할 때면, 책과 관련한 영상을 본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소개이다. 어쩔 수 없이 결말을 알게 된다. 최근에 들어온 참여자가 내용 스포가 되어서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냐고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영화, 드라마도 그렇듯이 그 끝을 알고 보면 흥미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나도 처음에 들어왔을 때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의견을 냈다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바로 반대 의견이 떠오른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나는 작가가 설정한 장치를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이 글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끝낸 적도 있다. 영상을 보면 결과를 알게 되어 감정을 오롯이 느끼지 못한다는 건 맞다. 나는 이런 단점보다는 책에서 주는 의미,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추측하며 읽고 싶었다. 그리고, 보통 3주에 나눠 책을 읽는데 읽은 장수가 더 많아진 때가 되면 결말이 기억 속에서 흐릿하기 때문에도 괜찮다.

둘, 남편의 군대 동기를 만난 일이다. 지난 토요일 우리 가족은 여주 신세계 아웃렛에 갔다. 운동복과 운동화를 사기 위해서다. 앞서가던 남편이 누군가와 인사를 한다. 회사 직원인 줄 알고 나도 옆에 가서 인사도 하고 대화도 들었다. 남편이 육군 삼사관 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부상으로 중간에 나왔지만 6개월을 같이 지낸 동기 중 한 명이었다. 그도 지금 원주에 살고 있다. 여전히 군 생활을 하고 있고.

친구와 언제 만나기로 약속하고 볼 때도 즐겁다. 이번처럼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보면 반가운 마음이 크고 과거의 일까지 떠올려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언제부터인가 주위를 둘러보는 버릇이 생겼다. 원주에서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을 만나기란 드문 일이다. 그래도 카페나, 대학교 등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더 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쩌면 내가 낯익은 얼굴을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어울리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서울에 갈 때도 주위를 본다. 지하철 안에서, 지하철역에서 기다릴 때, 맛집이라고 간 식당에서 주로 그러하다. 아는 사람들이 있는 대구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구 칠곡에 살았으니 10년 넘게 지낸 곳이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은 칠곡을 많이 떠나긴 했으나 나처럼 엄마한테 가려고 올 때도 있을 터. 홈플러스를 가거나 술집에 갈 때면 주위를 둘러본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만남은 설레는 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셋, 예고 중 내가 가장 설레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이다. 디자인 변경하고 신차 출시하기 전에 고속도로에서 가림막 한 차를 볼 때이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은 이런 마음 있지 않은가. 남들이 보기 전에 내가 먼저 봤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랄까. 임시 번호판을 달고 전조등과 유리, 배기구를 제외하고 다 가린 차를 보면 스마트폰부터 꺼낸다. 전체를 봐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봤다는 그 사실이 좋다. 괜히 구매까지도 생각하기도 하고. 중앙고속도로에 차가 많이 없어서 테스트하러 온다고 듣긴 했다. 원주와 대구를 오가며 한 번 봤다.

이런 걸 보면 요즘은 출시 전에 과정을 공유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차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1분도 채 보지도 않은 차를 보고는 '나오면 살까?'를 고민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속속들이 보여줘야겠다는 생각, 다짐을 해본다.

넷, 강아지를 분양받은 일이다. 남편은 강아지를 집에서 키우는 건 반대한다. 마당 있는 집에 가면, 밖에 두고 키운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제까지 아파트에서 살아왔고, 우리 성향상 아파트가 맞는데 주택에 가면이라는 조건이 붙는다는 건 사실 거절의 의미로 봐야 한다.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마음을 비웠다. 아니, 오래 걸리더라도 주택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런데, 강아지를 키우게 될 줄은, 또 집 안에서 같이 생활하게 될 줄은 몰랐다.

딸은 강아지를 키우자고 2년 전부터 이야기했다. 매일 하지도 않았다. 그냥 생각나면 한 번씩. 그때마다 집요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 사이사이에 나는 거든 정도였다. 강아지를 키운 후에 남편의 마음이 바뀐 계기를 들어보니, 나는 요리할 때 소금의 역할과 같았다. 소금을 넣느냐 넣지 않느냐에 따라 맛의 깊이가 달라진다.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표현했던 말, 나는 강아지 키우면 물고 빨고 하지, 이 말이 남편이 결정 내리는 데 한 방을 날렸다.

지난 설날, 남편은 강아지 분양을 알아보고 분양 숍을 검색했다. 설날에 대구에 가면 가기로 했는데, 혹시 데리고 온다면 멀미할 수도 있으니 원주에 있는 곳을 가보자고 한다. 그때도 혹시를 강조했다. 나는 그가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건 마음에도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딸이 조르니까 가기는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아이들이 '힘들겠네'라는 걸 느끼게 해 주려고 가는 줄 알았다. 이게 아니었으면 나한테도 미리 말했을 텐데. 그날 우리는 세 군데 방문을 했고, 마지막으로 간 곳에서 포메라니안 '쏘니'를 데리고 왔다. 남편은 나에게 예고하지 않았다. 그 어떤 귀띔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불평하지 않았다.

다섯, 우리가 시환이에게 예고를 했다. 인생 역대급 축구 경기를 보여주는 날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를 가기로. 학교에서 친구들이 이 식당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나 보다. 우리는 이제까지 여기서 외식을 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시환이가 가보지 않은 건 아니다. 세 살이었나, 어렸을 때 가 본 적이 있다. 지금 기억을 하지 못할 뿐.

다시 시환이에게 예고한 그 이야기로 돌아간다. 클럽의 선수반을 다니고 있는 시환이, 새로운 곳에서 적응 중이다. 남편 말로는 그렇다. "다닌 지 2주 만에 이만큼 변화가 있다고?" 내가 수업을 듣는 금요일에 시환이가 훈련을 하고 왔다. 달리기도 빨랐으며, 몸싸움도 했고, 공간 이동도 잘했으며, 찔러주는 공도 차는 등 이제까지 보지 못한 모습에 남편은 이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집으로 오는 길에 그는 아이에게 토요일에 식당에 가서 고기를 먹자고 말했다. 토요일에는 돼지 고깃집을, 금요일과 같은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날에는 아웃백을. 언제가 됐든 열심히 하는 모습, 최선을 다하는 게 느껴지면 가까운 시일 내에 아웃백을 예약해야 한다. 동기부여가 되면서도,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 때 어떠한 선물을 줄 것인지를 예고했다. 아웃백으로 동력 삼아 좋은 모습을 보기를 바란다.

위에 적은 다섯 가지는 나한테는 좋은 의미로 다가오는 예고다. 살면서 꼭 긍정적인 예고만 있는 건 아니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질 수도 있고, 말도 없이 우리 가족에 큰일이 생기기도 한다. 준비하기도 벅찬 목돈이 들어가야 할 때도 있으며, 코로나와 같이 질병으로 일상을 위협받기도 한다. 이들은 다 예고 없이 만나는 거지만 우리에게 고통과 시련을 준다. 미리 신호를 주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역경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어지럽고, 구토를 하고, 잘 보이지 않고, 말이 어눌해진다면 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이를 큰일이 아니라 여기면 손을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는 경우가 계속된다면 우울증에 관해 검사를 받아 볼 수 있다. 아이가 신호를 보내는데도 부모가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이도 부모도 힘든 시간을 겪어야 한다. 예고가 있든 없든 좋은 형태로 또 그 반대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는 예고. 이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남편은 다른 운동을 알아보라고 한다. 예전부터 추천했던 필라테스를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활동적이고, 단합이 중요한 축구의 매력에 빠졌는데. 주말에 잠깐 찾아봤지만 나와 맞는 요일과 시간대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나도 야외 구장에서 훈련하는 곳에 가볼까 하는 마음도 있다. 다른 운동을 할지, 더 넓은 곳에서 뛸지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어떤 걸 선택하든, 내가 즐기고 내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반대로 이리저리 배회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미래의 결과는 알 수 없으므로 지금 나는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괜히 소설 쓰지 말고,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 쓰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남은 수업 충실히 듣고, 일정이 맞는 곳을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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