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밀렸다는 느낌 대신 내 사람
수업에 가지 않았다.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다. 그 유이는 서평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글쓰기 수업을 듣는 '자이언트 북 컨설팅'에서 금요일 밤 강의는 정해져 있다. 저자 특강이나 전자책 수업이 대부분이다. 축구를 배운 이후부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하지 않았다. 초반 30분 또는 마지막 30분 정도만 들었다. 이번에는 서평 특강이다. 내 기억으로는 처음 듣는 내용. 요즘 책 읽고 책에 적어놓거나 노트 한 장을 찢어 여기에 서평이라고 몇 줄 적고 있다. SNS에 남기지 않는다. 서평을 써야지 하는 마음은 있으나, 실제로 남기기가 쉽지 않았다. 동기부여도 받을 겸 축구 수업을 빠지기로 결정했다. 어찌 보면 축구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우선순위는 '중요성'과 '긴급성'에 따라 결정한다. 중요성은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행동이라 말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 독서가 축구보다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내가 서평 특강을 들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출간한 작가의 특강이나 전자책 수업이 있을 때는 왜 축구 수업에 간 것일까? 여기에 내 경험과 가치관이 반영되어 축구를 선택했다.
먼저 출간한 저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 느끼고 배우는 바가 있다.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야기는 강의로 들을 수도 있지만 책으로도 접할 수 있다. 대체 안이 있다는 게 그리고 축구 수업을 빠지면 배우지 못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줌 화면을 끄고 축구 수업을 들었다. 전자책 수업은 이전에 대여섯 번 들었다. 큰 틀이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필요하면 물어봐도 되고 이전에 강의 내용을 필기한 부분을 살피면 된다. 축구 수업 전에 강의가 시작하고, 축구 수업이 끝나도 강의는 계속하기 때문에 앞과 뒤만 듣는다. 서평 수업과 축구 수업 둘 다에 참여할 수는 없다. 둘 중에 하나는 배우지 못한다. 서평은 처음 듣는 수업이기도 하고, 서평 남기기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배우고, 자극받고, 필요성 느끼고 싶었다. 축구는 배우기는 하지만 즐거운 마음이 더 크다. 반면 서평은 자기 계발 분야이다. 이런 이유로 축구 수업은 결석했다.
긴급성은 마감 기한이 임박했다거나 지금 바로 처리해야 하는 일을 말한다. 오늘 수업 결석은 긴급성보다는 중요성이 더 크게 작용했다. 긴급성에 관한 경험을 떠올려보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아이들 일로 학교에 가는 것이다. 남편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있는데 출발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전화가 온다. 세탁한 실내화를 두고 갔다거나 주말에 악기를 집에 가지고 왔다가 다시 학교로 가지고 가지 않은 경우다. 아무리 내 할 일이 있어도, 챙겨서 학교에 간다. 한여름에 에어컨이 고장 나면 수리하는 곳에 전화를 하고 일정을 맞춘다. 수리 기사가 와서 작업하는 동안도 나한테 중요한 일을 하기보다는 이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린다. 상사가 오전까지 완료해야 하는 일이라며 보고서 작성을 지시할 때도, 업무 관련 자료를 만드는 일도 중요성보다는 긴급성에 따라 하는 일이다.
이렇게 적다 보니, 나 역시도 일상에서 중요한 일이 밀리는 상황이 있다.
가족을 챙기는 일이다. 첫 직장을 타지에서 생활했다. 입사 한 달 후부터 여섯 달 동안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회계 법인의 중간 감사가 있어 서류를 찾았고, 곧이어 시청 세무조사, 경찰청 조사, 국세청 조사를 받았다. 조사 때 요구하는 서류를 찾느라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또 조사 사이에는 회계 법인이 변경되어, 중간 감사를 새로 받았는데 이때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인터뷰를 하는 일도 추가했다. 일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는데 가서 업무 흐름을 설명했다. 서류를 찾는 일과 감사에 대응하는 일을 하다 보니, 퇴근하면 눕기 바빴다. 동기, 팀 회식도 있었는데 집에 오면 씻고 자야, 다음 날 업무가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께 연락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결혼 후에도 같았다. 육아하니 아이가 자기 전까지 애만 종일 보고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도 내 몸 충전하기 바빠 전화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가까운 사람을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뒤늦게 알게 될 거라고. 지금도 매일 연락하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주도 있다. 머리로는 양가 부모님께 번갈아가며 이틀 간격으로 안부를 여쭤봐야지 하지만 이 마음만큼 실행이 따르지 않는다. 매일 알람이라도 설정해야 하나 싶다.
건강 챙기는 일도 그렇다.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렇다고 해서 운동을 꾸준히 하고, 몸에 좋은 음식으로 구성한 식단을 준비하는 건 쉽지가 않다. 나는 과식하지 않고, 야채는 생으로 먹을 수 있게 하자는 주의다. 이게 그나마 내 몸을 챙기는 식단이다. 운동이 어렵다. 영향을 받는 게 많기 때문이다. 운동도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책 출간 계약 후부터 한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다. 마감 기한이 정해져 있는 출간 작업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나중으로 미루게 된다. 날씨도 한몫한다. 나는 걷고 달리기를 하는데 비가 오면 집에 있게 된다. 날이 추워지면 운동을 가지 않는다. 12월에 운동을 나간 적이 있는데 눈길이고, 인도에 있는 살얼음 때문에 새벽 공기가 춥다고 느끼면 나가지 않는다. 다치면 더 큰일이기 때문이다. 매일 하루 10분만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필요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나름 합리화해서 운동을 놓치게 된다.
휴식도 마찬가지다. 목표 달성도 중요하지만 이때 반드시 필요한 일은 휴식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쉬는 시간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기보다는 내가 알아서 챙겼다. 화장실 다녀올 때 허리 한 편 펼 수 있었고, 정수기에 물 뜨러 가서도 스트레칭했다. 직원들과 잠깐 수다 시간도 가졌다. 점심 후에는 낮잠을 자기도 했고. 엄마로 또 1인 기업인으로 지낸다. 집에서 집안일도, 육아도, 일도 한다. 쉴 시간이 없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 오기 전에 내 시간 가져야 아이들을 돌볼 에너지도, 마음의 여유도 있다. 글쓰기와 독서가 하루 10분만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적어도 하루에 두 시간은 들이고 있는 이 일과 그 외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쉴 틈이 없다. 이러다 몸이 아프다. 꼭 아파야 휴식의 중요성도 느낀다.
살다 보면 밀릴 때가 있다. 축구가 서평 특강 수업에서 밀린 것처럼, 내가 축구가 된 때가 있다. 서로 약속을 정하고도 일이 생겼다며 일정을 변경해야 할 때가 대표적일 것이다. 같은 사람에게 두세 번 당하면, 그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또, 나한테는 바쁘다고 말하면서 이 모임, 저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을 보면 밀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면에서든 그에게는 내가 덜 중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내 험담을 하지도 않았고, 직접적으로 잘못한 사건이 있지도 않은데 어느 순간 돌아서게 된다. 아뿔싸! 이러다가 축구가 나한테 토라지는 건 아니겠지. 작년 3월처럼 갑자기 부상을 입게 되지는 않겠지. 이번 축구 수업은 차례가 나중이어서 빠지게 된 건 맞지만 축구가 사람이라면 전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축구를 좋아한다고.
문득 지난주 주말이 생각난다. 고종사촌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 대구에 갔다. 결혼식 후에는 친정 식구들과 친정에서 술을 마시기로 계획을 했다. 대구에 가면 술 먹는 언니들이 있다. 혼자 대구에 갈 때는 주로 이 언니들을 만난다. 모두 모이면 네 명이다. 다 술을 좋아한다. 토요일에 대구에 간다고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만난다 하더라도 두 시간 남짓. 친정 식구들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만나러 가서도 일찍 간다고 양해를 구해서 만나는 자리가 될 거라면, 나는 마음 편하게 오래 만나게 다음에 보자 싶은 마음이었다. 결혼식 열흘 전에 우연히 대구에 간다고 말했다. 친정 식구들과 저녁도 같이 먹을 거라고 얘기도 했으나, 언니들은 바로 각자 일정부터 살폈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미리 얘기했는데, 그러니 그녀들은 친정집 근처에 왔다. 두 시간가량 얼굴을 보고 갔다. 물론 술과 함께다. 토요일 저녁 6시, 그녀들은 다른 일이 없기도 했으나 쉬거나 가족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도 된다. 아니면 자기만의 시간으로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 모임을 선택했다.
나는 그녀들을 만나면 에너지를 받고 온다. 그들과 술 마시기 위해 각자 할 일을 끝내고 만나는데, 그렇기에 우리는 술만 마시는 모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음주를 하기 위해 평소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최소 일주일 전부터는 더 열심히 보낸다. 이런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다르다. 웃고 떠들기도 하지만, 서로의 일을 지지하고, 일에 대한 고민을 듣고 응원도 한다. 이번에는 이 에너지도 받았지만 고마운 마음도 컸다. 두 시간 만나기 위해 적어도 30분은 걸려 온 언니들이,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달려온 그녀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다른 일에 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상처도 받고 실망도 하며 살아가지만 이 일 덕분에 앞으로의 내 행동에 대해 다짐을 하기도 한다. '당신,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라는 걸 알게끔 말과 그 말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되자며 말이다.
오늘 축구 수업에 빠진 이유를 생각해 보며,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을, 내가 가져야 할 태도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