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필로소피
하늘을 보면, 우리가 우주의 한 존재라는 말을 알게 된다. 이 넓은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진짜 먼지가 맞네.' 그런 내가 욕심이 있고, 남과 비교하고, 타인을 비난하고, 자책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질투심을 느낀다. 재산과 사람에 대한 집착도 있으며 분노할 때도 있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쓰잘데기 없는 일인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살아도 하게 되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다스리기가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관계와 감정이 엮여 있으니까.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내 자존감은 저 밑바닥에 가 있었다. 욕심이 있었다. 바라는 건 있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 지나친 욕심 또는 헛된 욕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못 하는 이유를 가족에게서 찾았다. 남편은 타지 출장이 많아서, 아이들은 어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지금 난 이게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면서 못난 사람이라 여겼다. 그럴수록 더 남편에게 전화했다. 출장을 가지 않는 주가 한 달에 한 번 있었는데 그 기간만큼은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했다. 남편이 약속 있다고 하면 목소리는 힘이 빠졌고, 그냥 끊은 적도 많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 아이들에게 화를 낸 적도 여러 번이다. 남편을 기다렸다가 싸우기도 했다. 울면서 회식 자리에 갈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싫었다. 세상 탓을 한 거다. 이런 삶을 되풀이하며 지냈다. 이때는 생각과 말, 행동 이 모두 부정적이었다.
달라진 계기가 있었다. 남편이 모임을 편하게 보내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출장을 가지 않는 주여서 나는 또 집에 오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평일 5시에 남편에게서 오는 전화는, 약속이 생겼다는 걸 말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일단 받을 때부터 목소리에 힘이 없다. 한숨 쉬면서 받는다. 그날도 그랬다. 남편의 말이 예쁘게 나올 리가 없다. 전화를 끊고는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너만 꿈이 있냐, 나도 잘 났었다, 오늘 이 무시와 수모를 갚아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 집착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 행동에 뭐가 달라진 점도 없었다.
코로나 때 가족 네 명이 한 집에 지냈다. 얼음 물감 놀이를 하는데 남편의 눈치가 보인다. 집 어지럽히는 걸 싫어하는데 얼음 물감이라서 아이들은 얼음을 깨부수며 놀았다. 마루에 물이 고이면 나무가 썩는다고 물기 꼼꼼하게 닦으라는 말을 하면서 나갔다. 뭘 하나 하더라도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하는 내가 불쌍하기도 했다.
그러다 우린 왜 이렇게 다른가 싶었다.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 결혼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술 좋아하는 거 빼고는 다 달랐다. 그는 왜 집에 들어오지 않을까에 대해 생각하다가 왜 나는 집으로 계속 오라고 하는 걸까를 질문했다. 나는 집을 좋아한다.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다. 다른 이유 다 필요 없고, 집은 쉬는 공간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럼 남편은 집의 의미가 나와 같지 않을까? 남편이 좋아하는 건 뭘까? 인정이다. 사람들에게 '너뿐이야.' '너 덕분에' '네가 없으면 안 돼.' '네 선택이 옳아.'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신혼집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석 달 가까이 물었던 질문이 생각났다. "이 집 좋아? 어떤 점이 좋은 거 같아? 예전 아파트에서 이사 온 거 후회 안 해?"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네가 있어야 일이 제대로 처리돼." 이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걸 알고 나니 그동안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으려 했던 그가 이해가 되었다. 우리 삶의 변화가 시작된 진짜 계기다.
남편에게 집착하지 않으니 남 탓도 줄었다.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니 남의 집 남편과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회식도 해야 하고 인맥도 넓혀야 한다는 세상 탓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남편이 나가서 그들에게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스토아학파가 말하는 삶의 때를 벗겨내니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이전에는 남편이 새벽까지 오지 않고 있으면 별별 걱정을 했다. 누워서 소설도 썼었는데 이제는 걱정은 하지를 않는다. 부러운 점도 없으니 스트레스도 받지 않아서 마음이 안녕 그 자체다.
또, 누가 뭐라 해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도 있다. 사람 좋아하고 챙기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 자신의 험담을 말하는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동안 상대에게 해 준 게 생각나서 화가 났다. 이렇게 생각도 해본다. 험담하기 전에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아니면 그릇이 저 정도만 될 사람인가. 이 정도 선에서 생각하고 끝낸다. 이해하면 화낼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행복하다. 나는 돈도 재산도 직업도 내세울 건 없다. 하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니 고민이 덜 생긴다. 나한테 집중하게 된다. 내 삶이 좋다.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는데, 이것 말고 다른 걸 찾을 필요가 있을까.
남을,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내 삶의 때를 닦아낸다. 삶이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