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앞에서 나는 어떤 내가 될까

위대한 유산

by 벨리따

한 사람의 시련. 나와 가까운 사람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면 나는 옆에 있을 수 있을까? 이뿐만 아니라 편하게 느낄 수 있게 대할 수 있을까?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작가의 경력은 화려하다. 소개를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중독자, 막노동꾼, 암 환자라고 소개한다. 과거에 돈 욕심을 부리다가 잘못을 저질렀다. 처벌도 받았다. 야반도주하듯 부모님 집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십 년 가까이 세 명이 살다가 부모님을 모시게 되었다. 망해서.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처음에는 아이도 있으니 같이 지낸다 하더라도 시간 조금 지나면 도망갈 생각도 할 법하다. 헤어지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아직 모시고 산다. 감옥에 가 있는 때부터 지금까지. 그때 어떻게 버텼는지 만나서 묻고 싶기도 하다.

남편이 없는 기간에 내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 수 있을까? 남편 출소 후부터 부부가 같이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내가 옆에서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에게 응원을 해줄 수 있을까? 다시 해보라는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을까?

독서모임 민음사피아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읽을 때였다. 이 책은 정신병원이 배경이다. 병원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의 병간호에 대해 나눠본 적 있다.

나는 오래 병원에서 환자 옆에 있기가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병원에 가 있으면 아이들을 챙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직접적으로 듣지는 않더라도 내심 바라는 모습 때문에 결국은 병원으로 출퇴근을 선택하긴 할 것 같다.

멤버 중 본인 이야기를 들려준 적 있다. 해보니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말이었다. 생각이 현실이 된다고 해서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면 어떡하지, 파킨슨병에 걸리면, 우리 아이들이 장애가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남은 평생을 내가 돌봐야 한다면, 상태가 썩 좋아지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수준이라면 글쎄 난 자신이 없다.

지금은 자신 없다고 말하지만, 언젠가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피하고 싶은 마음과 곁에 있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나는 어떤 내가 될까.

작가의 이전글짧은 글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