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
저자는 철학적 사유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시를 들어 설명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시로 표현하는 사람은 생각과 시선의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나는 일반 사람들이 시는 어렵게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글쓰기를 추천한다. 비록 시만큼 압축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글쓰기도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일기로만 적지 않으면 되고, 여기에 남들과 다른 글을 써 보겠다는 노력 좀 더하면 된다.
일기로만 적지 않으면 된다는 말은, 내 글을 읽은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방법을 따라 할 수 있든, 가치관을 닮아가려 하든, 공감을 하든, 위로를 받든, 마음을 먹든. 글에서는 메시지라고 한다. 아마 우리가 책 읽으며 밑줄 긋는 문장이 이 부분일 가능성이 높다.
남들과 다른 글을 쓰겠다는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점으로 글을 쓰면 비슷하게 적는다.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좋았다. 이런 시간은 나에게 힐링이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다. 뻔한 글을 피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내가 적은 메모나 글을 보면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메시지다. 왜 좋았는지를 파고들어 가 본다. ‘아이 돌보느라 하루 종일 어른과 대화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오늘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 마시며 떠든 이 시간, 숨 좀 돌린 느낌이다. 엄마 말고, 아내 말고, ‘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적음으로써 나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로 글을 마무리할 수 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경험을 글로 남기더라도 나만 쓸 수 있는 글이 된다.
지속하면 생각 습관이 달라진다. 비록 저자가 말하는 만큼의 수준까지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3년 동안 글을 쓴 초보이지만 감히 말해 본다. 일정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고.
더 차원이 높은 시선을 갖기 위해서는 인문학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그때 그 경험이 나의 어떤 점을 성장시켰나?’
‘언제 가장 나다운가?’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의 하루는, 인생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여기에 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쓰기다. 내 생각을 적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런 질문을 평소에 하지 않던 사람이라면.
방법은 있다. 오늘, 어제, 과거에 한 경험 하나를 적는다. 그 경험에서 질문과 연결한다.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적은 이야기가 메시지도 있는 글이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과 글과는 다른 글이 된다. 이 작업을 계속하면 지금보다는 더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쓰기 전과 지금이 여전히 같은 사고의 수준이라면 나는 지금 쓰지 않고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오늘도 글을 쓴다.